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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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브라이언트: 오늘의 인용-설명적 환원과 존재론적 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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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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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적 환원(ER, explanatory reduction)과 존재론적 환원(OR, ontological reduction)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 존재론적 환원을 예시하기 위해 피터 반 인와겐(Peter van Inwagen)의 유물론을 택하자. 내가 인와겐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면, 기본 입자들(그것들이 무엇으로 판명되든 간에)과 동물 개체들만이 정말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예를 들면, 야구공이 유리를 산산조각 낼 때, 유리도 야구공도 정말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들은 우리의 조잡한 지각적 장치의 구성물들에 불과하다. 정말로 일어난 일은 다수의 상이한 기본 입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유리도 야구공도 존재하지 않으며, 기본 입자들만이 존재한다. 야구공과 유리는 존재하지 않고 기본 입자들만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기본적으로 제시하는 한 이것은 존재론적 환원이다. 존재론적 환원은 어떤 종류의 존재자들의 존재를 부정한다.

 

설명적 환원은 전적으로 다르다. 설명적 환원은 설명되는 존재자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성하는 존재자들의 능력들 때문에 설명되는 존재자가 자체의 능력들을 갖는다고 말할 뿐이다. [...] [물 분자] H2O는 수소와 산소의 능력들과 함께 이 원소들이 결합할 때 일어나는 것 때문에 자체의 능력들을 갖는다. 왜 이것은 H2O의 소거가 아닌가? H2O를 구성하는 부분들이 서로 분리되어 있을 때에는 이런 능력들을 갖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어떤 온도에서의 결빙과 기화, 소화 등과 같은 능력들이 창발하기 위해서는 이런 원소들 사이의 관계들이 있어야 한다. 말하고자 하는 전부는, 이런 부분들이 없다면 이 존재자는 이런 능력들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아무튼 이것은 물의 존재를 소거하지 않는다.

 

[...] 내가 보기에, 한 사물을 더 기본적인 원소들과 법칙들로 거슬러 올라가 조사한다는 의미에서 모든 설명은 환원이다. [...]

 

개인적으로 나는 라투르가 설명적 환원주의자라기보다 인와겐 같은 존재론적 환원주의자에 훨씬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인와겐의 정말로 실재적인 존재자들은 기본 입자들인 반면에, 라투르의 경향은 스테이플러, 메모, 사람, 과속 방지턱 등과 같은 중간 규모의 존재자들에 특권을 부여하는 것일 뿐이다. 나는 라투르가 자신은 법인 기업, 정부 기관, 교회 등과 같은 존재자들은 실재적 행위자들이라고 믿는다고 말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마르크스에 대한 그의 비판 사례를 생각하자. 몇 번이고 그는 마르크스의 계급 개념 같은 것들을 비판하는데, 사실상 그는 그런 것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정말로 실재적인 것들은 개체들과 인간들의 연결망들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존재론적 환원이다. 그것이 존재론적 환원이 아니라면,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이 행위자 연결망 이론에 매우 부합되는 듯 보인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에 대한 라투르의 적대심을 설명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

 

당연히, 이 두 극 사이에 극단적인 견해들과 모든 종류의 중간 변양태들이 존재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창발적 존재자들의 존재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듯 보이는 인와겐 같은 급진적인 존재론적 환원주의자들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창발적 존재자들을 그것들의 더 기본적인 부분들의 능력들의 견지에서 설명될 수 없는 일종의 마법적 도약으로 여기는 듯 보이는 급진적인 반환원주의자들이 있다. 우리들 대부분의 견해는 존재론적 환원과 설명적 환원의 조합일 것이다. 예를 들면, 내 경우에, 무지개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존재론적 환원주의자다. 무지개는 자체의 실질적인 존재론적 존재를 전혀 지니고 있지 않으며, 올바른 지각적 배선을 구성하는 유기체들이 부재할 때 무지개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할 뿐이다. 무지개는 광학적 환영의 변양태다. 무지개는 물질적 조건(물방울과 빛의 특성)이 있지만, 무지개는 "저쪽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존재한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나무와 법인 기업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설명적 환원주의자일 뿐이다. 나무는 자체의 세포들, 분자들, 원자들 등의 견지에서 설명될 수 있지만, 집합체로서의 나무는 이런 것들이 이런 특수한 방식들로 조합될 때에만 존재하는 능력들을 지니고 있다. "기본 입자들이 정말로 실재하는 것들이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나무는 소거될 수 없다.

 

[...] 때때로 나는 사람들이 제 삼의 존재자의 존재를 확립하는 데 두 존재자 사이의 관계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내가 보기에, 새로운 능력들이 창발해야만 다른 존재자들 사이의 관계로부터 새로운 존재자를 얻게 된다. 화이드헤드를 좇아서, 석양 같은 것들은 누군가가 그것들을 지각하든 지각하지 않든 간에 고유하게 아름답다고 말한 사람들이 있다. 내게 아름다움 같은 것들은 지각 있는 존재자와 다른 존재자들의 결합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관계적 성질인 듯 느껴지기 때문에 이것은 맞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 고양이는 내 신발 냄새를 즐기는 듯 보이지만, 나는 대단히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이런 종류들의 논변들을 사용하여 신 같은 존재자들이 존재한다고 말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신을 진정한 독립적인 실체로서 다루지 않고 사람들의 믿음의 견지에서 설명한다면 의도적으로 신을 환원시키고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렇지만, 이런 종류의 존재론적 환원들이 금지된다면, 무언가에 관해 상상하고 생각한다는 사실만으로 그것이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충분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공산주의자의 계략, 대학 룸메이트의 존재, 장군, 그리고 소녀에 대한 존 내쉬의 믿음이 그의 마음의 창조물들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실제적인 것들을 가리킨다고 말해야 한다. [...] 라투르는 환원이 불가능하거나 항상 그르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행위자가 일단의 다른 행위자들의 견지에서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작업을 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학에서처럼, 여러분은 "권력", "사회적 세력", "자본주의" 등에 대한 모호한 호소를 통해서 사물들을 불쑥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작업, 일련의 변환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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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