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애덤 로버트: 오늘의 에세이-물질, 매체, 그리고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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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1.

 

 

물질, 매체, 그리고 마음

MATTER, MEDIA, AND MIND

 

―― 애덤 로버트(Adam Robbert)

 

일반적으로 생태학은 유기체와 환경 사이의 관계들과 유기체들 사이의 관계들에 관한 연구로 규정된다. 이 에세이는 다른 한 방식―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사변 철학의 맥락에서 생태학을 다시 보기―을 제시한다. 화이트헤드와 함께 생태학을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단순하고 놀라운 한 가지 진실을 예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종류이든 모든 관계들―말미잘과 산호초의 관계든 철학자와 세계 사이의 관계든―은 본질적으로 생태적이다. 종류에 상관없이 관계들을 포함하도록 생태학의 규정을 일반화함으로써 우리는 생태학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에 대한 우리의 관념들을 확장하며, 코스모폴리틱스―지구 생태계를 위한 전지구적 사유―를 발제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 대단히 향상된다. 그런데 사변 철학은 생태학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연과학의 경험적 세계와 한 철학자의 환상의 주관적 세계를 혼합하고 있지 않는가? 나는 생태(학)의 의미를―그리고 특히 생태적 윤리(학)의 가능성―을 실제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최선의 과학들과 최선의 상상력을 사용하여 사색해야 한다고 제안할 것이다.

 

1. 사변 철학

 

사변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알고 있는지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고려하는 것과 함께 어떤 주어진 상황이 요구하는 것들에 대해 대응하기 위해 그 모든 것을 사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변은 깊고도 넓은 관점을 취하는 것, 즉 우리 자신의 육체들이 어떻게 사변의 주체이자 사변의 수단인지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와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또한 사변은 경계 설정, 즉 누군가가 어딘가에 경계를 설정하게 되는 바로 그 실천을 의문시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사변은 주체가 어떻게 아는지에 관해 주체가 어떻게 아는지에 관해 알고 있는 주체의 무한 퇴행이 너무 진행되어버린 때를 결정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변은 그것이 주목하는 바로 그 상황의 내부에서 그 상황에 관해 주장하는 한편, 그것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로 선택함으로써 자체의 위험도 인정한다. "나는 이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시도해 보자."

 

그런데 사변은 생태학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생태학이 살아 있는 존재자들과 그것들의 세계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한, 그리고 사변이 타자들의 실재에 관한 주장을 제시하는 것을 포함하는 한, 사변 철학과 생태학은 동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생태학은 지구를 구성하는 서로 얽힌 다중의 세계들이 배치되는 공간들을 조정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포함한다. 생태학적 구성 요소들―예컨대, 토지 사용, 윤리, 식습관, 영성적 실천, 자원, 그리고 사회적 정의에 관한 의문들을 비롯한―과 관련된 그 어떤 의문도 다양한 사람들뿐 아니라 그들의 세계들과 정치적 의사 결정의 인간 드라마에 휘말리는 모든 비인간적 존재자들에 대한 고려를 반드시 동반한다.

 

이런 양식의 사변 철학은 이사벨 스탕제가 코스모폴리틱스라고 부르는 것, 브뤼노 라투르가 사물들의 의회라고 부르는 것, 발 플럼우드가 종들 사이의 대화적 윤리("지구의 타자들")이라고 부르는 것,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가 동료 생물체들의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 도너 해러웨이가 동반자 종들이라고 부르는 것, 토머스 베리가 주체들의 교감이라고 부르는 것, 티모시 모턴이 생태적 공존주의라고 부르는 것, 그리고 가장 최근에 이언 보고스트가 에일리언 현상학―여기서 우리는 사물의 입장에서 경험한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사변 철학의 정신으로 나는 우리가 생태학에 관해 생각하는 데 사용하는 사유의 양태들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우리는 의미 만들기의미 드러내기 사이의 전쟁에 빠지지 않은 채 우리의 심리학, 기술, 그리고 경제학을 함축하는 생태학에 관한 관념이 필요하다. 생태학은 과학과 관련된 것이지만, 또한 그것은 생태학적 지식이 생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는 진실과 관련된 것이다. 기술적 세부사항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예컨대, 예를 들면, 공기 속 이산화탄소의 안전한 한계―였다면, 우리는 이미 생태적으로 건전한 문명에 이르는 도상에 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우리는 생태학 연구를 수행할 때 더 나은 방법론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하나의 생태학 대신에 나는 세 개의 생태학―물질생태학, 매체생태학, 지식생태학, 또는 물질, 매체, 그리고 마음의 통합생태학―을 제시한다. 여기서 나는 매체생태학과 지식생태학에 집중할 것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진화과학자과 환경과학자들에 의해 잘 서술된 물질생태학에 익숙할 것이기 때문이다.

 

2. 지식생태학

 

먼저 지식생태계들에 관해 말하자. 지식생태계들은 인간보다 최소한 지구에서 생명이 존재한 세월인 40억 년을 앞서며, 훨씬 더 오래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지식생태학은 "생태기호학(ecosemiotics)"으로 알려져 있는 더 넓은 연구 분야의 하위분야로 여겨질 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바라보면, 우리는 의미의 세계들을 발제하는 데 있어서 지구에서 인간들이 유일하지 않다는 점을 깨닫는다. 오히려, 이미 정착되고, 살아 있으며, 찬란히 빛나는 다른 존재자들과 그들의 세계들의 활기 속에서 발생하는 것은 인간들이다. 난초, 국화, 그리고 보노보들의 선재하는 지식생태계들 가운데서 인간의 마음은 부분적으로 배치되고 외부로 확장되어 사유, 언어, 그리고 의례로 주변 풍경들과 접촉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마음 공간은 지구의 생물권을 가로질러 펼쳐지는 훨씬 더 큰 마음들의 생태계의 작은 부분일 뿐이며, 그리고 이것은 생태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생각할 때 중요하다.

 

인지동물행동학 연구가 보여 주듯이, 아메바에서 수염고래까지 모든 유기체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독특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지식생태계들은 모든 유기체들이 자신의 주변 세계와 자신이 만나는 타자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구성하게 되는 내면적 차원, 즉 심리학적 삶(그것이 인간들의 심리학적 삶에 대해서 아무리 이질적인 듯 보일지라도)을 갖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지식생태계는 인간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닌 반면에, 세계에 자체의 인력을 실행하는 많은 새로운 지식생태계들(예를 들면, 세계관, 패러다임, 이데올로기, 신화, 그리고 다른 미묘한 생태계들)의 폭발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인간적인 것들의 맥락 속에서 그렇다. 확실히, 관념은 망치나 잠수함의 물리적 실체성을 지니고 있지는 않을 것이지만, 관념이 주변 존재자들의 물질적 조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많은 경우에 인간들과 비인간들 사이의 관계들을 생성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인자는 관념(예를 들면, 신자유주의 경제학)이다. 그러므로 지식생태계들에 관한 연구는, 인간 세계와 비인간 세계들을 공동으로 형성하는 데 있어서 관념, 세계관, 패러다임, 또는 이데올로기들이 수행하는 역할을 포함할 것이다.

 

3. 매체생태학

 

지식생태계들은 매체생태계들에 대한 복잡한 관계를 공유한다. 닐 포스트먼에 의해 최초로 도입된 술어인 매체생태학은 마셜 매클루언과 에릭 매클루언이 최초로 윤곽을 그린 "매체의 법칙들" 또는 이른바 "테트라드(tetrad)"를 가리킨다. 매체생태학은 단순하고 직관적인 정의가 있다. 매체생태학은 생태계로서의 매체에 관한 연구다. 매클루언 부자의 경우에, 매체에 관한 연구는 인간들이 구체화된 기술들을 통해서 자신의 인지 및 지각 능력들을 확장하는 방식들에 대한 이해를 포함한다. 테트라드는 매체 상호작용들을 연구하는 방법론적 장치로 구성되었고 네 가지 관련된 의문들에 기반을 두었다. 매체는 무엇을 강화시키거나, 쇠퇴하게 만들거나, 재생하거나, 또는 반전시키는가? 첫 번째 두 가지 측면―강화와 재생―는 특정 매체에 의해 전경이 되는 것을 탐구한다. 나머지 두 가지 의문―쇠퇴와 반전―은 특정 매체에 의해 배경이 되는 것을 강조한다. 이런 매체 확장들은 구술 사회에서 연설의 역할, 문자 사회에서 텍스트의 역할, 그리고 근대 사회에서 전자통신의 역할을 비롯한 많은 형식들을 취한다. 이런 매체생태계들 각각은 상이한 감각적 조직 유형들을 강화시키고, 재생하고, 반전시키며, 쇠퇴하게 만든다(예를 들면, 문자 기술은 시각을 전경화하지만 청각은 배경화한다. 구술 기술은 청각을 전경화하지만 시각을 배경화한다.)

 

자크 엘륄과 루이스 멈포드도 다른 종류이지만 매체생태학자로 간주된다. 엘륄은 (산업혁명 이후) 사회의 기술화가 산업혁명 이후 시대에 인간 사회들이 기계들의 논리에 따라 조직화되도록 인간의 노동과 사회적 관계들의 재조직화를 초래한 방식을 비판한다. 기계 기술이 계속 번성하기 위해서는 효율성, 합리성, 자동화, 기술화, 그리고 비인간 생태계들의 종속 같은 요구들이 명령되기 때문이다. 멈포드는 기술의 역사를 분석함으로써,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는 인간 거주의 양태로서 도시의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비슷한 비판을 전개한다. 이런 맥락에서 매체생태계들은 산업 기술, 도시, 생산양식, 그리고 이런 인자들 모두가 인간의 사회적 조직과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들도 포함한다.

 

그런데 매클루언 부자와 매체생태학자들이 부족한 점은 매체생태계라는 관념을 인간들에게 한정하는 것이다. 비버들이 둑을 건설하고, 개미들이 수백만 마리가 거주하는 군체를 이루며(그리고 복잡한 농경 체제에 관여하며), 그리고 사실상 모든 유기체들이 "적소를 구성하는" 유기체들, 즉 자신의 "환경"을 부분적으로 건설하고 자신의 행동으로 자신의 특수한 육화를 확장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불가사의한 이유 때문에 매클루언 부자는 매체의 법칙들이 다른 종들에게도 적용된다는 관념을 거부했다. 모든 유기체들을 포함하도록 매체생태계를 확대하는 것은 취해야 할 중요한 조치다. 그런데 왜 거기서 멈추는가? 화이트헤드적 의미에서 매체생태계를 훨씬 더 확대하는 것이 가능한데, 그래서 그 개념은 존재자라면 무엇이든 포함하도록 일반화된다.

 

매체생태계가 일반화되었을 때 매체생태학은 훨씬 더 흥미로워지고 전적으로 존재론적인 특성을 띠게 된다. 그렇다면 매클루언 부자에 의해 서술된 매체의 법칙들 모두는 인간들뿐 아니라 모든 형태와 크기의 존재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의 경우에, 포장도로는 자동차의 매체생태계의 일부다. MP3의 경우에, 아이포드는 MP3의 매체생태계의 주요 성분이다. 그리고 다양한 식물 품종들―가장 잘 알려진 것들에 속하는 것으로서 튤립, 사과, 마리화나, 그리고 감자―의 경우에, 인간들 자체가 이런 유기체들의 매체생태계의 기능적 특징을 구성한다. 다시 말해서, 매체생태학은 인간들이 스스로를 자신들의 세계로 확장하는 방식들에 결코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엇이든 어떤 유기체가 자체를 세계로 확장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이런 의미에서, 화이트헤드적 매체생태학은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관념을 생물학적 영역을 벗어나도록 확대하여 모든 행위자들이 올바른 조건이 주어지면 다른 행위자들을 번성하게 하고 변형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생태계가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4. 결론

 

생태학 연구를 세 가지 층위에 집중함으로써 우리는 생태계가 인간과 세계 사이(또는 무엇이든 어떤 유기체와 자체 세계 사이)의 상관관계의 안과 밖 모두에 존재하며,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생태는 유기체와 자체의 발제된 생활세계(들) 사이의 관계로 환원될 수 없다는 결론에도 이르게 된다. 오히려 생태학은, 사냥개, 유산균, 그리고 자연공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육체들의 살로 그 존재를 펼쳐서 우리에게 방사능 동위원소, 항성간 감마선, 그리고 프랙탈 수학을 퍼붓는 불가사의하게 깊은 우주에게 말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생태는 환경과 같지 않다. 생태는 유기체들과 환경들 사이의 관계와 같지 않다. 생태는 우주의 분출하는 진화적 현실태를 가리키는 별칭이며, 음악, 철학, 그리고 건축의 구성을 포함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초신성 중심 근처에서 회전하는 은하들의 격렬한 힘도 포함한다.

 

생태의 맥락에서 코스모폴리틱스는 행성 지구의 내부와 외부가 내파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한다. 우리가 호흡하는 스모그가 가득찬 공기는 기술적으로 강력한 생산자와 소비자들의 전지구적 연합에 의해 배출되고 있는 이산화탄소만큼이나 인간들이 발제한 사회적 및 정치적 사유의 산물이다. 특히 지식의 생태학은 인간의 사유, 언어, 그리고 문화 사이의 밀접한 연결을 상기시키며, 그리고 인간들은 지구라는 훨씬 더 큰 생태계의 내부에서 살고, 숨쉬며, 소멸하는 다양한 존재자들―인간 피부의 안과 밖 모두에서 존재하는―의 사회 속에서 하나의 행위자일 뿐이라는 가장 중요한 현실을 상기시킨다. 여기서 간략하게 묘사된 개정 생태학의 전망은 생태학을 세 가지 층위―물질, 매체, 그리고 마음―에서 고려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모두가 일부인 복잡한 중층적인 세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 실천들을 더 잘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