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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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코스: 오늘의 에세이-양자역학에 관한 오해: 디팩 초프라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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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7.

 

디팩 초프라 대 양자역학

Deepak Chopra vs. Quantum Mechanics

 

―― <<데일리 코스(Daily Kos)>>

 

과학에 대한 반대는 그 어떤 정당의 경계도 모르는 듯 보인다. 우파의 경우에는, 지구온난화 회의주의가 규칙이고, 진화가 소수 '의견'이며, [...] 콩이 여러분의 아이들을 동성애자로 만든다.

 

좌파의 경우에는, 최근에 디팩 초프라에게 지면을 내어준 <<헌핑턴 포스트>>가 있는데, 가장 최근에 그 온라인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초프라는 자신의 마음의 철학[...]을 설명하면서 명백히 양자역학으로 그것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시도는 그것에 보증되지 않은 정당성을 부여하며, 더 나쁜 점은 과학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퍼뜨린다는 것이다. 이것을 반박할 자격을 얼마간 갖추고 있는 나는 반박을 시도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헌핑턴 포스트>>가 나쁜 과학, 사이비 과학, 또는 노골적인 거짓말을 고무시킨 적이 결코 처음이 아닌데, 예를 들면, 백신의 "위험한 점들"을 설교하는 짐 캐리[...]에게 지면을 내어주었다. 최근에 내가 그것들이 점점 더 반과학적[...]일 뿐 아니라 감각주의적으로 되어 버렸다고 생각하는 듯하는 유일한 사람은 아니다.

[...]

여기서 내가 비교적 자격이 있는 이유는 내가 생화학적 체계들을 연구한 양자화학자라는 점이다. 요약하면, 나는 화학, 특히 생화학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파악하는 데 양자역학을 적용한다. 그래서 나는 그 주제에 관해 무언가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희망한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권위에만 호소하는 것을 정말 바라지 않는다. [...]

 

"양자 의식"

양자 의식이 기본적으로 그가 말하고 있는 대상이다. 인간 뇌의 작동들은 아무튼 직접적으로 양자역학적이라는 관념. 이와는 대조적으로, 나는 그런 작동들이 본질적으로 "화학적"이라고 추정할 것이다.

 

초프라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양자 의식이라는 관념의 유명한 보급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간주되곤 한다. 이런 사유 노선의 가장 잘 알려진 옹호자는 수학자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일 것이다. '비주류 인물'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결코 알지 못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옹호자들은 상이한 관념들을 지니고 있다. 펜로즈는 전자 집단에 속하고, 초프라는 후자 집단에 속한다. 나는 내 분야에서 이런 관념들을 진지하게 여기는 사람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점이 매우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

 

양자역학에 관하여

그런데 양자역학은 '기묘한' 것이며 '어려운' 것으로 악명이 높다. 어느 정도는 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주제는 자체의 명성에 의해 약간 지체되었다. 양자역학의 초기 선구자들(보어 등)은 그것이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큰 논쟁을 벌였는데, 그 이후로 그 논의는 많은 입문적 교과서(그리고 사실상 모든 대중과학 해설서)에 삽입되었다. 작년에 <<어메리컨 저널 오브 피직스>>에 투고한 편지에서 N. G. 반 캄펜(N. G. van Kampen)은 그것을 "양자역학의 추문"이라고 불렀다. [...] 그래서 대중과학적 서술들에서 사람들은 흔히 실제 양자역학과 이런 "해석적" 쟁점들을 혼동하곤 했다.

 

여기서 나는 양자역학을 둘러싸고 있는 매우 많은 오해들을 교정한다거나, 또는 대중과학적 설명을 제시하는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한 가지 간단한 주장만 할 것이다.

 

이것은 이 논의와 관련되어 있는 한 가지 양자역학적 특성인데, 그것은 양자역학에서 사물들은 여러 상태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른바 중첩이다). 객체들은 명확한 위치들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걸쳐 '퍼져 있다'. 객체들이 더 가벼울수록, 그리고 더 빨리 움직일수록, 그것들은 더 넓게 '퍼져 있을" 수 있다. [이른바 불확정성 원리다.]

 

그런데 어떤 객체에 대해 측정이 이루어지면, 그것은 특정한 값을 가질 것이다. 이것이 '기묘함'의 일부다. 양자역학은 어떤 갑이 측정될지 예측할 수 없으며, 모든 가능한 측정 결과들의 확률을 예측할 수 있다. 양자역학은 많은 횟수의 측정들의 평균을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수소 원자의 전자는 핵에서 53피코미터[1조분의 1미터] 떨어져 있을 확률이 가장 높다. 그런데 단일한 측정은 영에서 무한대까지 어느 결과나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더 무겁고, 더 큰 사물들은 점점 덜 "퍼져 있게" 되고, 결국 '고전적' 상황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서는 사물들이 자체의 위치와 속도 등에 대해 명확한 값들을 지닌다.

 

여기서 초프라(그리고 매우 많은 다른 사람들)는 '측정'이 의미하는 바를 오해하여 그것이 인간 활동과 관련되어 있다고 가정함으로써 인간의(또는 의식적인) 지각이 '측정'이 의미하는 것이라는 잘못된 결론뿐 아니라, 사실상 측정되고 있지 않다면 사물들은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결론을 도출한다. 이렇게 말한다. "사실상, 여러분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모든 것은 존재하기 위해 여러분에게 의존한다."

 

이것은 반복적으로 폭로되었던 기본적인 오해다[...]. 양자역학적 측정은 '측정' 자체와 아무 관계도 없는데, 특히 인간 활동과 아무 관계도 없다. 또한 그것은 양자역학에 대한 초기의 많은 혼동뿐 아니라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의 근저에 놓여 있다.

 

요약하면, 그것은 결풀림(decoherence)으로 알려져 있는 과정이다. 그것은 아직 완전히 이해되고 있지는 않다[...]. 결풀림은 양자 체계가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상이한 상태들의 중첩에서 단일한 명확한 상태로 이행하는 과정이다. 그런 변화와 관련된 엔트로피(무질서)의 증가가 있기 때문에 양자 체계는 이런 상태로 '고정'되며 되돌아 갈 수 없게 된다(열역학 제2 법칙). 그것은 아직 완전히 이해되고 있지는 않지만, 초프라가 채택한 듯 보이는 버컬리적 관념과는 확실히 유사하지 않다.

 

초프라의 판본은 이렇다.

 

빛은 파동 또는 입자처럼 작용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럴 수는 없다. 그것은 일반적인 논리를 거역하지만, 아인슈타인과 그의 동료들은 빛이 관찰자에 의존하여 파동 아니면 입자처럼 작용할지를 "결정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가 삽입했어야 했던 것은 "이중 슬릿 실험의 맥락에서"라는 구절인데, 실제로 '파동처럼 작용하는" 그리고 "입자처럼 작용하는" 상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중과학적 설명들이 이중 슬릿 실험을 제시하는 방식을 고려하면 나는 그가 어떻게 그런 인상을 얻게 되었는지 이해하지만 말이다.

 

그것은 일반적인 논리를 거역하지 않는다. 모든 물리학과 마찬가지로, 양자역학은 일반적인 수학적 논리에 전적으로 정초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발달과 거의 아무 관계도 없으며(기본적으로 그의 기여는 1905년 발표된 광전효과에 관한 초기 논문이다), 그것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입자는 관찰자에 의존하여 '결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중 슬릿 실험에서는 측정할 때 개입되는 상호작용이 결풀림을 유발하여 입자가 불명확한 위치를 갖는 상태(그것이 '파동처럼' 작용하는―중첩을 형성하는―원인이 된다)에서 명확한 위치를 나타내는 상태(우리가 '입자처럼 작용하는 것'과 관련시키는 것)로 이행하게 된다. 

 

초프라가 서술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뇌는 결풀림을 유발하는 데 있어서 무엇이든 그 어떤 독특한 역할도 주어지지 않으며,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물리학자들(또는 정말로 누구든지)이 그런 터무니없는 인간중심주의적인 관념을 고수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꽤 어리석다.

 

그것이 틀린 이유

기본적으로 초프라, 펜로즈, 그리고 다른 옹호자들은 모두 뇌 속의 무언가가 양자역학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즉 상태들이 중첩된 채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가정하고 작업한다. 덧붙여, 그들 중 일부는, 그러므로 뇌는 양자 컴퓨터(이런 중첩들을 활용하여 어떤 유형들의 계산들을 매우 빠르게 수행하는 '컴퓨터')라고 주장한다.

 

주류적 견해는 이 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주류적 견해는, 육체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모든 것들과 꼭 마찬가지로 뇌도 화학에 의해 지배되고 통제된다고 간주한다. 사실상 화학은 본성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양자역학적이다. 실제로 양자역학은 이중 슬릿 실험 문제가 아니라, 원자들을 설명하기 위해 주로 발달되었다. 고전물리학에 관한 한, 원자들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래서 화학 이론―화학결합은 무엇인가? 화학 반응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등―을 알고 싶다면, 여러분은 양자역학(그리고 오직 양자역학)이 해답을 제시하는 의문들을 다루고 있는 셈이다.

 

학교에서 원자와 분자들이 전자들로 둘러싸인 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배운다. 핵은 대부분의 질량을 차지하고[...] 양의 전하를 띠지만, 화학은 전자들의 거동에 의해 전적으로 좌우된다. 핵은 그냥 머물러 있는데, 그것의 전하가 전자들에 미치는 효과가 그것이 기여하는 것이다.

 

전자들은 거의 전적으로 양자역학적으로 작용하며, 이런 이유 때문에 화학을 서술하는 데 양자역학이 필요하다. 그런데 핵은 그다지 양자역학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데, 핵은 너무 무겁다.

 

그래서, 분자 속 전자들은 양자역학적으로 작용하는 반면에, 분자 전체는 그렇지 않다. 상이한 상태들이 중첩된 채로 분자의 원자들이 존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만약에 그럴 수 있다면, 많은 분자와 화합물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안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들은 자체를 재배열할 것이다. 여러분 육체 속 많은 분자들이 자발적으로 연소하여 더 낮은 에너지 형태로 재배열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초프라는 이렇게 주장한다. "그런데, 우리의 모든 행위가 DNA를 바꾼다." 정말로 그러한가? 어떤 식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의 일부)는 분자들이 격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분자들은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한다(양자역학에서 이것이 '측정'을 구성한다). 그것들은 결풀림을 겪으며 현재의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이것은 꽤 놀랍지 않은데, 분자 전체가 그처럼 양자역학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이미 화학에서 그것에 관해 알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양자역학이 화학 이론을 구성하는 반면에, 실제로 그것은 많은 새로운 발견들을 낳지 못했다(아직까지는). [...]

 

게다가 나는 생화학적 반대 결과들도 있다. 여태까지 우리는 잘 알려져 있는 생화학의 어디에서도 그런 양자역학적인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전혀 없다. 생화학적 규모에서 사물들이 정말로, 정말로 다르다면 이상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DNA의 실질적인 부분을 가장 하등한 박테리와와 공유한다. 우리의 세포 대사 작용은 아메바와 다르지 않다. 진화를 거쳐 자연은 자체의 설계들을 '재활용'한다. 매우 다른 기능들을 갖는 효소들은 공통 진화 때문에 매우 비슷한 구조들을 지닐 수 있다. 진화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아무튼 우리 뇌가 완전히 독특한 물리적 현상을 활용하기 시작했다면 꽤 이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물리학자 막스 테그마크[...]는 이런 양자 의식 모형들 가운데 몇 가지에 대해 계산을 하여 우리 대부분이 예상한 결과를 얻었다. 체계들은 너무나 빨리(10^(-20)초의 규모로) 결이 풀려서 화학에 아무 영향도 미칠 수 없으며, 생물학에는 훨씬 더 그렇다(신경세포 발화는 밀리초 규모에서 일어난다).

 

<<결풀림과 양자에서 고전으로의 전환>>(2008)의 한 부분에서 쉴로스하우어는 이런 논란을 다루며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현재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뇌 속의 생물학적 구조들에서 결풀림이 일어날 확률이 너무나 높아서 그 어떤 양자적 결맞음도 인지적 및 의식적 과정들에 대한 시간 규모 동안 지속될 수 없다는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공정하다. 그러므로 고전적 뇌 모형들이 지금까지 여전히 대체로 도전받지 않고 있다. 테그마크의 수치 계산과 거시적 규모에서의 결풀림에 대한 일반적인 직관들에 근거하여, 이 상황은 언젠가 곧 바뀔 가능성은 없다.

 

철학적 반대

이런 논박이 양자 의식 이론들의 옹호자들을 실제로 저지한 적은 없으며, 그들은 아무튼 뇌와 양자역학을 연결하는 새로운 방식들을 계속 찾았다. 사실상 그것은 거의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은 그것 때문에 그만두지 않을 것인데, 그들은 애초에 그런 이론을 구성하는 데 특별한 과학적 이유가 사실상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문제 탐색에 있어서 하나의 해결책이다.

 

우리가 의식이 작동하는 방식을 모른다는 사실은 결국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모른다는 사실의 일부일 뿐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우리는 비장이 작동하는 방식도 모른다. 우리는 유전체의 지도를 그렸지만, 어느 유전자들이 어느 조직들과 관련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특히 현존하는 패러다임이 상당히 잘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풀리지 않은 의문에 대한 해답을 현존하는 생물학과 화학의 바깥에서 찾아볼 이유는 자체적으로는 없다.

 

그렇게 행하기 위한 아무런 특별한 근거도 없이 이론을 구성한 다음에 증거를 찾아 나서는 것은 나쁜 과학과 사이비 과학의 전형적인 표식이다. 그래서 그것이 반증되더라도 계속 고수하게 된다.

 

초프라의 경우에, 최소한 그는 L. 론 허버드보다는 과학을 잘 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