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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그리드 로베인스: 오늘의 에세이-대중 철학서를 양서로 만드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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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26.

 

대중 철학서를 양서로 만드는 것들

What makes a popular philosophy book a good book?

 

―― 잉그리드 로베인스(Ingrid Robeyns)

 

최근에 나는 대중 철학서를 양서로 만드는 것들에 관한 문제를 곰곰히 생각했다. [...] 그런 책은 어떤 질적 기준들을 충족해야 하는가? 몇 가지 생각은 다음과 같다.

 

1. 신뢰성. 독자는 저자가 이런 주제에 관한 책을 쓸 수 있는 데 필요한 연구를 수행했다는 것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학술서가 아니라 대중서이기 때문에 저자는 필요한 예비 조사를 제대로 했다는 점을 공들여서 예증할(예를 들면, 참고문헌과 문헌에 대한 주의 깊은 요약/개요를 통해서) 필요는 없지만, 예비 조사를 반드시 수행했어야 한다. 독자는 저자가 자신이 무엇에 관하여 쓰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기준의 경우에, 나는 저자가 교수인지 여부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데, 일반 대중은 교수들에게 자신이 쓰고 있는 주제에 관한 전문가라는 지위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철학 교수가 대중서를 적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학술문헌도 잘 알고 있으며, 그 대중서가 그런 문헌을 반영한다고 가정할 것이다. 독자들은 교수들이 자신이 쓰고 있는 것에 관한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신뢰하는 것이 기본적 입장이라는 것을 교수들은 알고 있고, 그래서 대중서를 적는 교수는 그런 신뢰를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2. 가독성. 전문 철학서와 대중 철학서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은 틀림없이 가독성일 것이다. 전문 철학서가 동료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쓰여지고, 그래서 전문화되고,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기술적인' 듯 보이는 것은 괜찮다. 반면에, 대중서는 기껏해야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관심과 아마도 약간의 기본적인 철학적 배경을 가정할 수 있을 뿐이다. 대중 철학서는 가독성이 좋아야 하는데, 가독성은 덜 난해하고 생생한 예들이 풍부한 문체뿐만 아니라 많은 전문지식을 전제하지 않은 점에서 드러날 것이다.

 

3. 논변. 대중서는 그저 수사법, 직관, 그리고 정서적 호소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교양 있는 초심자가 좇을 수 있는 논변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가독성 기준을 충족하는 데 필요할 예들이나 다른 문체적 장치들이 온갖 일을 다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예들이 불러 일으키는 직관적인 결론들을 설명하거나 정당화하는 논변이 여전히 있어야 한다. 결론들은 그저 정서적 호소나 예들에 의해 결코 도출되지 말아야 하며, 논변에 근거하여 도출되어야 한다.

 

4. 비영리성. 대중 철학서는 더 광범위한 독자층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논변의 질이 다를 것이다. 나는 의도적으로 "더 빈약한"이라는 형용사가 아니라 "다른"이라는 형용사를 적고 있는데, 학술서에 대한 질 기준이 대중서에 대한 질 기준과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 권의 대중 철학서가 양서이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가독성이 좋을 필요가 있는 반면에, 전문 철학서에서 가독성은 일반적으로 질적인 측면이 아니다. 그런데 그건 그렇다 치고, 대중 철학서는 저자나 출판사의 수익 동기를 위해 책의 질을 희생하지 말아야 한다. 또는 사실상  저자의 허영이나 주목을 받고 싶은 욕구나 자신의 명사 지위의 확인 같은, 책의 질을 훼손할 수 있는 그 어떤 다른 동기들을 위해서도 책의 질을 희생하지 말아야 한다.

 

5. 표절. 표절은 학문성에 있어서 대죄인데, 아마도 유일한 대죄일 것이다. 전문 철학서에서 표절은 무슨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대중 철학서의 경우에, 독자들이 참고문헌의 견지에서 같은 양의 세부 내용을 제공받을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여전히 그렇다. 더 광범위한 독자층을 대상으로 책이 쓰여진다는 사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작업에 의존하고 그것을 사용한 방식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정말로 행하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통찰력과 분석을 재구성하거나 재적용하는 것일 때에는 자신이 새로운 작업을 만들어냈다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

 

6. 양식. 사회적 지위와 지적 지위, 그리고 부수적인 권력과 함께 어떤 의무와 책임들이 따른다. 철학자들(그리고 책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은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 [...] 대중 철학서의 저자는 어떤 논쟁에 현저하게 기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런 논쟁의 분위기를 흐리거나 훼손할 수도 있다. [...] 물론, 그 어떤 보통 인간도 성인처럼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규범적 요구를 옹호하고 그런 규범에 맞게 사는 데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여섯 번째 기준은 맥락에 더 의존하고, 그래서 (하나의 기준으로서) 여타의 기준들보다 더 모호하지만, 여전히 어떤 양식의 요소들이 때때로 대중 철학서를 양서로 만드는 것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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