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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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슐링크: 오늘의 인용-살인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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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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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인에서 모든 부가적 요소, 즉 범행의 계획성, 음흉성, 잔인성을 빼버리면 당사자의 의지 없이 이루어진 한 목숨의 종결만 남는다. 여기서 당사자의 의지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의지 없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상대의 의지를 기만하거나 꺾는 것은 그 자체로 음흉하거나 잔인하다. 그러므로 순수한 형태의 살인은 잠잘 때 한 인간의 목숨을 종결시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목숨을 잃고, 어떤 사람은 목숨을 바치고, 어떤 사람은 목숨을 거는 미친 짓이나 절망적인 행동, 혹은 용감무쌍한 행동을 하고, 살인자는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마치 사람이 죽은 뒤에도 생명 없이 저기 서 있는 것처럼 들린다. 마치 어이없는 표정으로 눈을 비비고 서 있는 것처럼, 목숨을 빼앗긴 것이 황당한 것처럼, 목숨을 빼앗긴 데 격분하는 것처럼, 자신의 죽음을 슬퍼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죽은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어이없어하지도 않고, 격분하고 슬퍼할 수도 없다. 그는 살면서 괴로워했던 것, 즉 외로움이나 질병, 가난, 어리석음 따위로 더 이상 괴로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죽음으로도 괴로워하지 않는다. 인간이 자신의 죽음으로 아파하는 일은 없다. 죽음 전에는 아직 살아 있기 때문에 그렇고, 죽음 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살해당하는 것으로도 고통받지 않는다. 살해당하기 전에는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고, 살해당한 후에는 더 이상 살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과 살해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한 상태에서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또 다른 상태로 넘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잘못이니 고통이니 따질 일은 없기 때문이다. 주어가 없으면 술어는 고향을 잃고 의미도 없다.

 

우리가 살인자가 당사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 사람의 목숨을 종결시켰다고 해서 처벌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살인자를 처벌할 근거는 무엇일까? 그가 저지른 음흉함과 잔혹성이다. 다시 말해서 죽기 전의 희생자에게 안긴 실망감과 고통 때문에 살인자를 처벌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가해 행위가 없는 살인, 즉 순수한 형태의 살인까지 처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희생자 때문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들 때문이다. 남편을 잃은 아내, 아버지를 잃은 아이, 친구를 잃은 사람들 때문이다. 희생자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고 그런 기대를 빼앗긴 모든 사람들 때문이다. 또한 우리에게 필요하고 우리가 믿는 세계의 질서 때문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에는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그 때문에 자살도 죄악이 되고 자살 시도도 범행으로 간주될 수 있다. 자살 역시 살인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기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과거에는 남은 사람들에 대한 희생자의 값어치에 비례해서 살인을 처벌했다. 아버지에게 있어서 아들이나 딸의 값어치, 주인에게 있어서의 노예의 값어치가 그것이다. 오랫동안 흑인을 살해한 백인이 백인을 살해한 흑인보다 경미한 처벌을 받은 것도 그래서이다. 살인자로서의 행위가 더 관대한 처분을 받은 것이 아니라 희생자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종 청소의 경우 별다른 양심의 가책 없이 편하게 살인을 저지를 때가 많다. 희생자들의 죽음에 슬퍼할 사람들을 아예 하나도 남겨놓지 않기 때문이다. 인종 청소의 전제는 이렇다. 청소할 민족을 고립시키고, 그들을 다른 민족들과 함께 이루는 세계의 질서 속으로 편입시키지 않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그들의 뿌리까지 뽑아버려야 한다.

 

한 세계에는 얼마나 많은 민족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포함될 수 있을까? 우리가 사는 세계를 어떤 크기로 자르고 어떤 질서로 구축할지는 우리의 일이지 살인자들의 일이 아니다. 따라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살인자가 아니라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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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른하르트 슐링크(Bernhard Schlink), <<귀향(Die Heimkehr)>>(박종대 옮김, 시공사, 2013), pp. 3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