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알렉스 로젠버그: 오늘의 인용-과학적 허무주의

댓글 1

카테고리 없음

2013. 8. 29.

 

"

이것들은 불이 꺼진 후에 천정을 응시할 때 항상 나를 괴롭혔던 의문들이다. 그것들은 여러분이 불면의 시기에 품었던 동일한 의문들일 것이다.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만인이 선호하는 것) 외에 실재의 본성, 우주의 목적, 삶의 의미, 자아의 본성, 우리가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자유의지는 존재하는지, 또는 도대체 의지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존재한다면 그것은 검인을 받아야 하는지라는 것들과 관련된 다른 지속적인 의문들이 많이 존재한다. [...]

 

불멸성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과 거의 마찬가지로 비도덕성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 우리가 바라는 만큼 많은 사람들이 비도덕성으로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옳음과 그름, 선과 악의 본질, 우리는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낙태, 안락사, 복제, 또는 즐기는 것이 금지되는지, 허용되는지, 또는 때때로 의무적인지 여부를 알고 싶어한다.

 

이 책은 지속하는 의문들 대부분에 대한 올바른 해답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나는, 오래된 교과서들이 말하곤 했듯이, 무엇이든 남게 되는 의문들에 대한 해답들은 "독자들의 연습문제로 남겨질 수 있도록" 실재에 관해 충분히 설명하고 싶다.

 

그런 의문들 가운데 일부와 그것들에 대한 간단한 대답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은 그 대답들을 더 자세히 설명한다. 우리가 과학으로부터 알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그 대답들은 대단히 명백하다. 과학이 그 대답들을 제공한다는 점을 확신한다면, 흥미로운 일은 그것들이 어떻게 전적으로 불가피한지 인식하는 것이다.

 

신은 존재하는가? 아니오.

실재의 본성은 무엇인가? 물리학이 그렇다고 말하는 것.

우주의 목적은 무엇인가? 전혀 없다.

삶(생명)의 의미는 무엇인가? 전혀 없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뜻밖의 행운일 뿐이다.

기도는 작동하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영혼은 존재하는가? 영혼은 불멸인가? 농담이지?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천만에!

우리가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를 제외하고 만사가 거의 이전처럼 진행된다.

옳음과 그름, 좋음과 나쁨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것들 사이에는 아무런 도덕적 차이점도 없다.

내가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도덕적인 것이 비도덕적인 것보다 당신의 기분을 나아지게 하기 때문이다.

낙태, 안락사, 자살, 세금 납부, 외국 구호, 또는 여러분이 좋아하지 않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것은 금지되어 있는가, 허용되어 있는가, 또는 의무적인가? 뭐든지 상관없다.

사랑은 무엇이며, 나는 그것을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는가? 사랑은 전략적 상호작용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다. 그것을 추구하지 마라. 사랑은 당신이 필요로 할 때 당신을 찾아올 것이다.

역사는 어떤 의미나 목적이 있는가? 역사는 음향과 분노로 가득 차 있지만 아무 의미도 없다.

인간의 과거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어떤 교훈들을 제시하는가? 애초에 무엇이든 어떤 교훈이 있었더라도 점점 더 드물어진다.

 

이어지는 글에서 직접 다루어지지 않는 지속적인 한 의문은 [..[ 바로 첫 번째 의문―신은 존재하는가?―이다. 우리는 이미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다.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서 우리는 무신론에 대한 최선의 이유―과학―를 취하고 그것이 무신론자들로 하여금 어떤 다른 것들을 믿게 하는지 보여줄 것이다. 신의 존재를 부정할 설득력 있는 이유들이 존재하지만, 이런 이유들은 결코 부정적인 결론―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끝난다―을 뒷받침하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신 문제와 더불어 불가피하게 동반하는 여타의 의문들에 대답할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을 제공한다.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에 더 이상 시간을 소비하지 않는 것에 대한 많은 이유들이 존재한다. 세 가지 좋은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지금까지 그 의문에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너무 많아서 대부분의 직업적 무신론자들은 오래 전부터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견고한 논변들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흄이 그의 계획에 따라 그가 사망한 뒤 삼년 후인 1779년에 최초로 출판되었던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Dialogues Concerning Natural Religion)>>를 저술한 이래로 정말 다른 논변은 필요하지 않았다. [...]

 

두 번째 이유는 무신론적 글들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신의 존재를 지지하는 표준적 논변들이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신의 존재를 반대하는 결정적 논변들도 잘 알려져 있다. 신의 존재를 지지하는 긍정적 논변들의 실패가 명백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에 반대하는 부정적 논변들의 힘이 유신론자를 설득하지 못한다는 점도 명백하다. 유신론자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만큼이나 강력한 논변들을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신의 존재를 믿는다. 우리는 그들을 설득하지 않을 것이다.

 

유신론을 반박하는 성가신 일을 하지 않을 세 번째 이유는 더 나은 할 일들―신 없는 실재에 관해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과 같은―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무신론자가 되면, 많은 의문들이 유신론자들의 경우보다 더욱 더 가차없어진다. 결국 유신론자들은 신에게 의탁하여 그것이 이런 의문들에 대답하는 데 작동하는지 여부를 살필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최소한 일부 신자들에게 최소한 얼마 동안 작동한다. 그런데 무신론자들의 경우에는 뭐라고, 내가 걱정해?라는 대답이 멈추는 지점이 아니다.

 

꽤 잘 확립되어 가장 본원적인 새로운 발견 결과들에 의해서도 수정될 가능성이 없는 과학의 부분을 믿는다면, 열성적인 무신론자의 경우에는 실제로 단 하나의 난제만 남는데, 그것은 지속하는 의문들에 대한 명백하고 반박할 수 없는 올바른 해답들을 제공하는 과학을 이해하는 일이다. 과학을 이해하는 것이 난제인 까닭은 과학이 자체의 발견 결과들을 포장하는 방식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그 포장을 쉽게 벗겨낼 수 있도록 결코 진화되지 않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코 과학을 다룰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신자들보다 무신론자들의 수가 항상 훨씬 더 적었던 주요한 이유다.

"

―― 알렉스 로젠버그(Alex Rosenberg),  <<실재에 대한 무신론자의 안내서: 환상 없는 삶을 즐기기(The Athesit's Guide to Reality: Enjoying Life without Illusions)>>(2011), pp.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