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앨런 와이즈먼: 오늘의 인용-인간 없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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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 20.

 

- 아래 글은 미합중국의 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Alan Weisman)이 "인간이 사라진 이후 지구의 미래 풍경"을 통찰력 있게 그려낸 <<인간 없는 세상(The World Without Us)>>(이한중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의 338-342쪽에 실린 부분을 옮겨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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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인류멸종운동VHEMT의 창립자인 레스 나이트는 사려 깊고, 말씨가 부드럽고 조리 있으며, 아주 진지한 사람이다. 능멸당한 지구로부터 인류를 추방하자는 주장을 아주 거슬리는 방식으로 펼치는 다른 단체들[...]과 달리, 나이트는 전쟁, 질병, 고난에 대해 인류혐오적 쾌감을 느낄 줄 모른다. 학교 선생인 그는 같은 수학 문제를 풀어 늘 같은 답을 얻어낸다.

 

"어떤 바이러스도 60억 인구를 다 죽일 수는 없습니다. 99.99퍼센트가 죽는다 해도 65만 명이라는 자연 면역을 갖춘 생존자가 남게 됩니다. 유행병은 사실상 종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5만 년만 있으면 지금의 상태로 쉽게 돌아올 수 있겠지요."

 

전쟁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전쟁에서 수백만 명이 죽어도 인간은 계속해서 수를 늘려나갑니다. 대부분 인류사에서 전쟁은 결국 승자와 패자의 수를 늘려나갑니다. 게다가 살인은 부도덕한 것입니다. 대량학살은 지구상의 삶을 향상시키는 방법으로 절대 고려되어서는 안 됩니다."

[...]

'오래 살다가 깨끗이 사라지기를'이라는 모토를 내건 자벌적인류멸종운동은 그가 예측하건대 우리 모두가 지구를 소유하는 동시에 소비한다는 생각이 순진했다는 사실이 확연해질 무렵 일어날 처참한 대량 소멸을 피하자고 주장한다. 우리와 다른 거의 모든 생명체의 목숨을 대대적으로 앗아갈 끔찍한 자원 전쟁과 아사를 목격하느니 차라리 인류를 고이 잠재우자는 것이다.

[...]

"마지막 남은 인류는  마지막 석양을 평화로이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자기들이 에덴동산에 가장 근접한 지구로 되돌아왔다는 사실을 알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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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자연 현실의 쇠퇴와 가상 현실의 부상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자발적인류멸종운동의 정반대는 [...] 멸종이 호모사피엔스를 위한 발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는 일군의 존경받는 사상가와 저명한 발명가들이다. 자칭 트랜스휴머니스트인 그들은 우리의 머릿속에 든 것을 회로 속으로 업로드하여 여러 면에서 [...] 우리의 뇌와 몸보다 뛰어나도록 해줄 소프트웨어를 개발함으로써 가상공간을 개척할 꿈을 꾸고 있다.

[...]

아무리 파우스트적이라 해도 그들의 주장에서는 불멸과 초자연적 힘에 대한 유혹이 너무 강하게 느껴진다(아울러 지금의 모순을 초월할 완벽한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신념을 보면 사뭇 찡해지기까지 한다).

[...]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스스로를 회로 속으로 옮겨놓는 작업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당장은 아닐 것이다. 그들과 달리 탄소를 기초로 하는 인간의 본질에 애착을 느끼는 우리 같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발적 멸종을 주장하며 황혼을 말하는 레스 나이트의 예언이 아픈 데를 찌른다. 그것은 진정 인간다운 존재라면 수많은 생명과 아름다움의 사멸을 목격하면서 느끼게 마련인 피로감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때문에 지는 부담을 덜어버린 세상, 사방에 야생 동식물이 멋지게 자라는 세상을 생각하면 우선 마음이 솔깃해진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이 끼친 온갖 경이로움의 상실을 생각하면 금세 아픔이 되살아난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에 가장 놀라운 존재인 '아이'가 다시는 푸른 대지에서 뛰어놀 수 없게 된다면 과연 무엇이 우리 뒤에 남을 것인가? 우리 영혼 가운데 진정으로 불멸한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