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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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산드라 로페즈 이 로요: 오피니언-나는 왜 강단을 떠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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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

 

나는 왜 강단을 떠나는가

Why I'm quitting the academy

 

―― 알레산드라 로페즈 이 로요(Alessandra Lopez y Royo)

 

거의 이십오 년 전에 예술 및 고고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나는 내가 강단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될 것이라고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대학 내에서 나의 존엄성과 진실성을 더 이상 희생시킬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강단의 월급의 안정성을 독립적 학문 생활―이런 개념이 여전히 존재한다면―의 불안정성과 교환할 참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뒤 나의 삶은 어지러울 정도로 계속되는 시간강사직, 연구원직과 장학금이었다. 이것들에는 평생에 한 번 받는 게티 협동연구 자금이 포함되는데, 그것 덕분에 나는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 선임 학자들과 협동으로 연기 행위들을 연구하기 위해 아시아로 자주 여행할 수 있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거의 오 년을 보낸 후에 나는 2001년 연구업적평가(research assement exercise)에 때맞춰 로햄튼 대학에 무용 프로그램에 관해 가르치도록 고용되었다. 나는 무용 전문가가 아니었지만, 그 학과는 내가 그들의 야심만만한 새로운 무용 프로그램이 찾고 있었던 그런 종류의 "비서구적"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믿었다.

 

나는 강단인들이 해야하는 일을 수행했다. 나는 가르치고, 연구하고, 박사과정 학생들을 지도하며, 그리고 행정 업무를 수행했다. 나는 끊임 없이 연구비를 신청하여 지원받는 데 성공하였으며, 2007년에 준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런데 임용받은 직후에 내가 느끼기 시작했었던 불편한 감각은 점점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나는 매 학기의 시작을 두려워했다. 나는, 대학원 과정에서조차도, 강의할 때 나의 전공 관련 전문지식에 의존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 대신에 나는 만물박사이어야 했는데, 처음 몇 년 동안 자주 영어 보충 강좌을 수강해야 하고 거의 모두가 내가 꼼꼼히 덧붙인 문헌목록을 무시하며 강의록 외에는 아무것도 읽지 않는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펼쳤다.

 

우리는 그들을 검열할 수도 없었다. 우리 모두는 그들을 만족시켜야 하는 고객으로 취급해야 하는 경영적 정언 명령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은 아무 제재도 받지 않은 채 짜증과 존중의 결여를 나타낼 수 있었다. 그리고 학위를 위해 공부하는 것이 함축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무능력(또는 이해하기를 꺼리는 그들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부풀어진 학위들이 만연했다.

 

그런데 우리도 여러가지 면에서 학생들을 속였다. 예를 들면, 우리는 그들의 취업 전망과 관련하여 그들에게 결코 전적으로 정직하지는 않았는데, 상당한 수의 학생들이 현재 실업 상태이고 빚을 지고 있으며, 많은 학생들이 완전히 다른 분야들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을 나는 안다. 몇몇 학생들의 경우에, 그들의 무용학 학위는 여전히 줌바 선생 같은 직업들을 위해 그들의 이력서를 강화할 뿐이다. 로햄튼의 무용학과는 2008년 연구업적평가에서 영국 최고의 학과로 평가되었지만(결국 그렇게 많지 않다), 이것은 내가 보기에 전적으로 부당한 듯 보이는 자기만족을 유발할 뿐이었다.

[...]

그런데, 현재 연구 의제를 추동하는 "영향력" 의제는 자유로운 비도구주의적인 비판적 사유의 공간으로서의 강단으로 나를 끌어당겼던 인문주의적 가치들과 무관한다. 나는 주형에 맞추기 위해 개성과 창의성의 훼손을 요구하는 억압적이고 위계적인 구조의 일부임를 느낀다.

 

로햄튼 대학의 가장 최근의 연구 수월성 틀에 의해 고무된 채용 정책 때문에 나는 내가 여전히 이 체계의 일부이기를 바라는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대학이 세계를 선도하는 출판물들을 쫓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해 동안 기한부 고용 계약으로 학과에서 가르쳤던 젊은 유망한 학자들은 아무 기회도 받지 못했고, 그래서 학과는 준교수와 교수들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내 경험은 독특하지 않다. 중하위 대학의 어느 학과라도 방문하면 비슷한 비참한 이야기들을 들을 것이다. 마거릿 대처가 기술대학들은 4년제 대학이 되어야 한다는 점과 자유시장의 원리가 고등교육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결심했을 때, 그는 대학들의 새로운 운명을 결정했다. 그런 불평등한 경기장에서 대학들은 무슨 수를 쓰든지 유리한 입장에 서야 하고, 그래서 엄밀성이 흔히 첫 번째 희생자다.

 

"엘리트" 연구중심 대학들에 재직하고 있지 않는 강단인들이 연구비를 획득하기는 대단히 불가능해졌다. 예술과 인문학 전공자들은 과학자들과의 협력을 강화하여 연구비를 획득하고 자신들의 작업에 더 큰 신뢰성을 부가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연구재단들의 예산은 빠듯하고, 그래서 강단인들은 서로 다투게 되며 흔히 경쟁자의 제안서에 대해 가혹한 동료평가 의견을 제시하게 되는데, 그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무엇보다도 수익에 대한 기업들의 최악의 강박을 모방하여 학생들이나 분과학문들의 미래를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석사학위자와 박사학위자들을 대량으로 배출하고 있다. 나는 현재 박사과정에 진학하고 있는 학생들에 대해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데, 그들은 강단이 더 이상 자신들을 흡수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은 다음에 주류 직업시장에 진입할 때 그들의 전문지식은 이해받지도 못하고 가치있게 평가받지도 못한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강단을 떠나겠다는 내 결심은 어떤 이상주의적인 젊은 강단인들―연구업적평가에 제출하기에 충분한 출판물들을 갖춘―이 그들 최초의 정규직을 제안받는 것을 보게 되는 연쇄 반응을 낳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게 조언을 요청한다면, 나는 그들에게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 전에 길게 그리고 신중히 생각하라고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