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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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노에: 오늘의 에세이-물리학자의 실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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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4.

 

물리학자의 실재관

The Physicist's View of Reality

 

―― 알바 노에(Alva Noe)

 

과학은 한 마을이 아니라 국제연합을 닮았다. 과학자들의 상이한 공동체들은 나름의 방법, 언어, 그리고 양식들을 사용하여 연구를 수행한다. 상이한 분야들의 과학자들은 서로 소통할 수 있으려면 해석자들이 필요하다. 과학의 국제어는 존재하지 않는데, 수학도 국제어가 아니다. 

 

그래서, 물리학이 세계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과 우리가 생물학으로부터 알게 되는 것 사이에 그 어떤 양립불가능성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늘날 생물학을 물리학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생물학을 소거하는 것을 진지하게 제시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여러분은 물리학의 언어로 생물학 연구를 수행할 수 없으며, 생물학의 문제들을 규정하고 그것들의 해답들을 탐구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사태에도 불구하고, 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많은 과학자들―그들이 도대체 이것에 관해 생각하는 데 시간을 보내든 보내지 않든 간에―이 내가 물리학자의 실재관이라고 부르는 것을 신봉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물리학자의 견해에 따르면, 사물들을 실제로 있는 그대로 연구하고 있는 것은 물리학뿐이다. 물리학은 근본적인 실재를 탐구한다. 우주의 아래로 내려갈 때, 무엇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우주는 실제로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의문들이 물리학이 연구하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면, 그것은 모두 입자들―더 작은 것들로 이루어진 더 작은 것들로 이루어진 더 작은 것들로 이루어진 것들―이다. (또는 그것은 모두 장들일 것이다.)

 

물리학의 견해를 취하면, 생물학과 관련된 것은 그것이 대단히 편협하다는 점이다. 살아 있는 물리적 체계들과 살아 있지 않는 물리적 체계들 사이의 차이, 또는 유기적인 화학적 과정들과 유기적이지 않는 화학적 과정들 사이의 차이는 물리학에 쓰여져 있지 않다. 물리학으로 전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외부에서 자체적으로 순전히 물리적인 과정들에 부과하거나 투사하는 것이다.

 

물리학자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생물학이 생명에 대한 우리의 독특하게 인간적인 관심에 의해 형성된 분야라면, 심리학, 인지과학, 언어학, 인류학, 그리고 경제학 같은 다른 과학들―근본적으로 지각, 언어, 문화, 교역, 가치 등과 같은 관념들에 의존하는―은 정말로 가공의 것처럼 보임에 틀림없다. 물리학자들이 알고 있는 대로의 세계에서는 지각, 언어, 문화, 교역, 가치 같은 것들은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정말로 실재적이지 않다!

 

그런데 내가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많은 과학자들이 물리학자의 실재관―물리학만이 가공의 인간적 관심사와 가치들과 별개로 사물들을 실제로 있는 그래로 서술한다는 관념―을 신봉한다고 말할 때 내가 의미하는 바는, 만약 압박을 받는다면 우리는 정말로 물리학자의 견해가 틀림없이 옳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존재하든, 또는 여태까지 존재했든 아니든 간에, 원자번호가 79번인 원소는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이 원소가 황금색인 듯 보이고, 금속에 관한 한, 촉감이 부드러운 점, 희귀하거나 매력이 있거나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점은 모두 신경계와 사회적 조직들을 갖춘 우리 같은 생명체들의 존재에 의존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대로, 물리학자들이 알고 있는 대로 정말로 금은 존재하며, 그리고 그것은 우리와 아무 관계도 없다.

 

그런데, 지금 제기할 가치가 있는 의문은 이럴 것이다. 물리학자의 실재관은 정말로 옳은가?

 

이 의문에는 두 가지 부분이 있다. 첫째, 우리의 이해관계, 가치, 그리고 지각적이고 인지적인 한계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사물들을 실제로 있는 그래로 만나는, 세계를 아는 방법이 존재하는가? 이른바, 초월적 관점(view from nowhere)이 존재하는가? 둘째, 물리학은 이것을 전달하는가, 또는 심지어 목표로 삼고 있는가?

 

우리는 그것을 더 멀리 끌고 갈 수 있다. 압박을 받을 때 많은 사람들이 물리학자의 견해가 옳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하자. 그런데 우리는 정말로 물리학자의 실재관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결국, 우리는 초월적 관점을 갖추고 있는 신이 아니다. 우리는 살과 피다. 우리의 관심사들은 감정적이고 의학적이고 정치적이다. 우리는 흥분하고 냉정하다. 우리는 우리 육체에 가해지는 지구의 인력을 경험한다. 우리는 사랑하고 가치를 평가한다. 우리들 가운데 어느 누구가 이 모든 것이 비실재적일 것이라고 진지하게, 정말로 간주할 수 있는가?

 

그리고 물리학자들은 좋은 설명들을 추구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하지 않는 물리학을 상상조차 할 수 있는가? 도대체, 물리학자의 실재관에 따르면, 어떤 설명을 좋은 설명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