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그렉 헨릭스: 오늘의 인용-앎의 나무(ToK) 체계의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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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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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나무(Tree of Knowledge, ToK) 체계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과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흥미로운 새로운 접근방식이다. 옆의 그림을 바라보면, 금방 눈에 뛸 가능성이 높은 것은 복잡성의 진화가 구별할 수 있는 네 가지 창발적 차원들―회색, 녹색, 적색, 그리고 청색―로 드러나는 방식이다. 복잡성에 대한 이 새로운 표상은 과학이 실재의 지도를 그리는 방식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데 필요한 시각의 변화를 제시한다. 그림의 오른쪽 부분에서 보이듯이, 과학의 네 가지 넓은 영역들은 복잡성의 네 가지 차원들에 대응한다(물리과학은 물질에, 생물과학은 생명에, 심리과학은 마음에, 그리고 사회과학은 문화에 대응된다).

 

그 차원들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앎의 나무 체계에서는 이론적 "연결점들"이 그것들을 연결하고 더 높은 차원이 창발하는 방식에 대한 이론을 제시한다. 네 가지 연결점들이 존재한다. 1)에너지와 물질을 연결하는 양자중력, 2)물질과 생명을 연결하는 현대적 종합, 3)생명과 마음을 연결하는 행동 투자 이론, 4)마음과 문화를 연결하는 정당화 가설. 왜 단 하나의 차원이 아니라 네 가지 별개의 복잡성의 차원들이 존재하는가? 간단히 대답하면, 각각 새로운 차원(유전자적 차원/생명, 신경세포적 차원/마음, 그리고 상징적 차원/문화)을 낳은 참신한 정보처리 체계들이 창발했다는 것이다.

 

네 가지 차원들은 객체와 원인들의 존재론적으로 상이한 범주들이고, 그래서 이것은 꽤 깊은 철학적 논변이다. 르네 데카르트의 철학적 분석은 이원론 때문에 유명하다는 점을 생각하자. 데카르트에 의하면 물질과 마음은 전적으로 별개인 실체의 영역들로 간주되었다. 물론, 현대 과학의 견해들은 일원론적 입장을 옹호해 왔다. 비물질적 인과성의 문제는 철학적으로 극복될 수 없기 때문에 마음은 어떤 물질 형식이어야 한다. 에너지를 궁극적인 공통분모로 간주한다는 의미에서 앎의 나무 체계는 일원론적이고, 복잡성의 더 높은 차원들은 더 나은 차원들에 수반된다.

 

그렇지만, 또한 앎의 나무 체계는 모든 것이 왜 단지 에너지와 물질만은 아닌지 보여주고, 그래서 환원론이라는 고전적 문제를 피한다. 사실상 앎의 나무 체계는 객체와 원인들의 분리할 수 있는 네 가지 집합들이 존재한다고 상정한다. 1)물질적인 것(원자, 바위, 그리고 항성 같은 것들의 행동), 2)유기적인 것(세포와 식물들의 행동), 3)심적인 것(벌, 쥐, 그리고 개 같은 동물들의 행동), 4)문화적인 것(사람들의 행동). 중요한 점은, 이런 범주 체계가 수천 년 동안의 상식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문화가 시작된 이래로,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을 비롯하여, 인간들은 자연 속에서 이 네 가지 범주를 관찰해 왔다. 마지막으로 앎의 나무 체계는 이유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시한다.

―― 그렉 헨릭스(Gregg Henriqu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