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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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드리언 이바키브: 오늘의 인용-140억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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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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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우주는 140억 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말할 때, 그들은 이 말이 전혀 참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차릴까?

 

그것이 참이 아닌 까닭은 그들이 정확히 측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참이 아닌 까닭은 측정 잣대가 그런 기간에 걸쳐 변하지 않은 채로 있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칠게 서술하면, 이것은 그 당시로 돌아가면 년(年)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년이 존재하지 않았던 까닭은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도 없었고, 태양도 없었고, 은하계도 없었고...우리도 없었으며, 그리고 우리가 인식할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년이 우주와 태양계에 선행한다거나, 또는 년이 우주가 (우주로서) 존재하기도 전에 우주에 적용될 수 있는 추상적 척도를 구성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시간이 그 속에서 사물들이 움직이는 용기이며, 그리고 용기와 그 속의 사물들이 근본적으로 안정하고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공간이 그 속에서 사물들이 움직이는 용기이며, 모든 것이 안정하고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만큼이나 문제가 있다. 현대 과학에 따르면―그리고 더 적절한 철학적 체계들의 가정들에 따르면[...]―이런 가정들은 모두 참이지 않다.

 

시간과 공간은 함께 펼쳐진다. (과정관계적 접근방식은 그것들이 경험과 함께 펼쳐진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데 거기까지 갈 필요가 없다.) 모든 것이 매우 작은, 엄청나게 밀도가 높은 한 특이점이었을 때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의 공간도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인정하자. 우리가 측정하는 대로의 시간은 우리가 거주해온 우주, 성장하고 진화하면서 습관들을 발달시켜온 우주의 일부다. 우리는 그런 습관들 속에 처해 있으며, 그것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일단의 특수한 습관들에 내재하고, 우리가 (상상력, 언어, 기술 등의 도움으로) 새로운 습관들을 발달시킴에 따라, 우리가 다른 존재가 됨에 따라 우리의 제약을 넘어서 존재하게 된다.

 

이것은 "우리(인간들)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과 전혀 같지 않다. (그것은 인간중심적 형태의 존재론적 "사회 구성주의"일 것이다.) 정반대로, 우리가 알고 경험하는 대로의 시간은 시간 자체가 아닐 뿐이다. "시간 자체"라는 것이 존재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에 관한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그것에 관한 것을 알 뿐이고, 그래서 그런 한정된 경험으로부터 여태까지 발생하였거나 앞으로 발생할 모든 존재자들에 대해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고 가정하는 것은 내게는 오만한 듯 보인다.

 

[...] 나는 약간 굴복하여 이 점에 동의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측정할 다른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에, 우주는 매우 오래 전에 시작되었는데, 우리의 지구 년으로 그것을 측정한다면 140억이라는 수가 우리가 부여할 수 있는 나름대로 괜찮은 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게 우주에 거주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좋다, 그렇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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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드리언 이바키브(Adrian Ivakh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