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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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노에: 오늘의 에세이-사실과 가치의 얽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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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30.

 

사실과 가치의 얽힘에 관하여

 

―― 알바 노에(Alva Noe)

 

1. 과학은 가치중립적인가?

 

과학과 과학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지위에 관해 생각하는 유서 깊은 한 방식에 따르면,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다. 과학은 사실들을 주시한다. 과학은 세계가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해석 문제들과 별개로 존재하는 방식에 관심을 갖는다. 과학은 가치들에 입장을 확실히 할 필요가 없이 사실들을 알아낼 수 있다. 과학은 가치 문제와 관련된 지루하고 결정 불가능한 논쟁들에 관여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것은 참인가?

 

나는 일부 과학자들이 편향되어 있다거나, 부정직하다거나, 또는 연구 경로가 때때로 연구비를 지원하는 기관이나 기업들에 의해 부당하게 영향을 받는지 여부에 관심이 없다. 이것들은 중요한 문제들이지만, 그것들은 과학이 최소한 외부로부터 부패시키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자체의 작동에 있어서 가지중립적이라는 점을 당연히 여긴다.

 

그렇지 않다. 내 의문은 이렇다. 과학이 자체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에 가치중립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이 정녕 참인가?

 

회의적인 이유는 이렇다. 철학자 힐러리 퍼트넘(Hilary Putnum)이 오랫동안 주장했듯이, 과학은 인식적 가치들에 의존한다. 훌륭한 탐정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과학자는 자신의 판단을 사용한다. 가능한 모든 것들이 고려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 까닭은 그것들이 불가능하거나, 또는 입수한 증거가 그것들을 배제하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가 일반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것들이 무관하고 당치 않은 듯 보이기 때문이다. 당치 않은 가능한 것들에 관해 걱정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과학자들은 예측하고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과학자들은 많은 정보를 조직하는 이론들을 세우며, 그리고 그들은 단순하고 정합적이고 믿을 수 있는 방식으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여러분은 자신이 진리에 이르렀음을 어떻게 결정하는가? 진리는 자체의 불변하는 특징들을 지닌 황금과 같지 않다. 여러분은 증거의 무게에 비추어 그것에 관해 의심하는 것이 부조리할 진리를 인정한다.

 

합당성, 설명적 적절성, 예측력, 단순성, 정합성. 이것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가치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과학의 질료다. 과학자들 사이의 의견 불일치는 가치들에까지 내려갈 수 있다. 그것은 과학자들이 이야기가 바르게 되었다고 만족감을 느끼는지 여부에까지 내려갈 수 있다.

 

게다가 외부로부터의 과학에 관한 회의주의가 개입할 때 더욱 더 그렇다. 과학자들이 기후변화 부정자들이나 이른바 "지적 설계" 옹호자들과 논쟁을 벌이고자 할 때, 사실들에 못지 않게 가치들이 걸려 있다. 회의주의자들은 과학의 인식적 가치들을 그냥 거부한다. 그들의 입장은 터무니없고 근거도 없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가치의 문제다!

 

도덕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나는, 퍼트넘이 사실과 가치의 얽힘이라고 부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과학을 기껏해야 "우리"가 생각하는 것에 관한 결말이 정해지지 않은 설교적 주장들에 불과하다고 간주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잘못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요점은 가치 영역에서의 갈등들의 본성에 대한 우리의 평가를 고양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갈등들을 단박에 해결할 방식들이 없다는 사실이 그것들을 함께 생각하면서 이루어지는 진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 과학과 가치는 왜 떼어놓을 수 없는가?

 

과학에서 사실과 가치는 얽혀 있다. 그것은 과학자들이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다른 종류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편파적이거나 영향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 이유, 일관성, 정합성, 개연성, 그리고 재현 가능성에 대한 신념 때문이다. 이것들은 가치 신념이다.

 

이것을 명백히 하는 한 가지 방법. 우리가 틀림없이 합리적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더 많은 과학을 수행하지는 않는다. 과학을 수행하는 것은 합리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합리적이라는 것은 사실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가치다.

 

그런데, 이런 사실과 가치의 얽힘―이것은 철학자 힐러리 퍼트넘의 어구다―은 과학을 자체의 고귀한 지위에서 강등시키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도 주관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과학은 또 하나의 실천일 뿐이야!

 

그 다음에 멈칫하기 시작한다. 하나의 실천에 불과한 것이 어떻게 그렇게 효과적일 수 있을까? 낡은 일례를 들면, 인간을 달에 보냈잖아!

 

그런데 요점은 과학의 콧대를 꺾는 것이 아닐 것이다. 정말로 요점은 가치들과 그것들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몇 단계 더 위로 향상시키는 것일 것이다.

 

언제나 우리의 실수는, 가치들은 주관적이라는 것, 즉 의견 또는 해석 또는 취향 또는 성향의 문제일 뿐이라는 관념, 가치들은 상대적일 뿐이라는 관념이었을 것이다.

 

사랑의 가치, 또는 생명 자체의 가치와 관련하여 상대적이거나, 구성되었거나, 또는 문화적으로 구속된 어떤 것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합당성 또는 공정성이라는 가치는 어떠한가?

 

이것들은 실재적 가치들이 아닌가? 그것들을 판별하는 것은 성취가 아닌가? 예를 들어, 건강은 좋다는 점을 인식하게 될 때 우리는 세계에 관한 무언가를 알게 되지 않는가?

 

그런데 가치들이 실재적이라면 그것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가치들에 대하여 논쟁들을 해결하는 것이 가능한 듯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어떠한가? 결국 우리는 다원론적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일단 가치들을 진지하게 여긴다면 여러분은 그것들이 어떻게 세계에 맞게 변화하는지, 어떻게 우리 세상에 맞게 변화하는지 파악하게 되는데, 이것은 쉽지 않다.

 

사실상 나는 그것이 우리 시대의 근본적인 문제들 가운데 하나라고 추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