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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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첼로 글라이저: 오늘의 에세이-선을 위한 과학이냐 악을 위한 과학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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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0. 3.

 

선을 위한 과학이냐 악을 위한 과학이냐?

Science: For Good or Evil?

 

―― 마르첼로 글라이저(Marcelo Gleiser)

 

1818년에 21살의 메리 셸리(Mary Shelley)는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라는 고딕 문학의 위대한(아마도 가장 위대한) 고전을 발표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것은 당대의 첨단 과학―전기와 근육 운동 사이의 관계―을 사용하여 사자를 되살리기를 원하는 고뇌에 찬 뛰어난 의사에 관한 이야기다. 셸리의 소설이 발표되기 이십 년 전에 이탈리아인 루이기 갈바니(Luigi Galvani)는 전기 자극을 가함으로써 죽은 근육이 경련이 일으키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었다. 심지어 그는 금속 줄에 매달린 개구리들이 전기 폭풍 동안 미친 듯이 춤추는 것을 시연했었다. 그것은 볼만한 광경이었음에 틀림없다.

 

생명이 움직임이라면, 그리고 전기 때문에 근육이 움직인다면, 그 둘을 결합하여 사자를 과학을 통해서 부활시키려고 시도하지 않겠는가? 그때 인간은 신과 같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그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는지 안다. 비극으로 끝난다. 아담이 이브를 원했듯이, 그 "피조물"은 나머지 인류로부터 격리되어―그렇지만 외롭지는 않게―살 수 있도록 여성 동반자를 요구한다. 공포에 휩싸인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거절한다. 그는 인간 종의 미래를 위협할 수 있는 괴물들의 인종을 창조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 소설은 과학의 윤리적 경계를 검토한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를 추구할 완전한 자유를 가져야 하는가? 금기가 되는, 그래서 검열받아야 하는 어떤 주제들이 있는가? 그런 금기 주제들이 있다면, 누가 그것들을 결정하는가? 과학자들에게 어떤 제약들이 부과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누가 그것들을 부과하는가?

 

이것들은 윤리와 과학의 핵심에 이르는 거대한 복잡한 의문들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노화를 질병으로 다루어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리고 우리가 "치료법"을 얻게 되거나, 또는 최소한 실질적인 수명 연장을 이루게 된다고 가정한다면, 누가 그것의 혜택을 받을 권리를 가질 것인가? 그 "치료법"이 비싸고, 확실히 초기 단계에 있을 것이라면, 사회의 소수자만이 그것에 대한 접근권을 가질 것이다. 이 경우에 사회는 인위적으로 분리될 것인데, 접근권이 있는 사람들이 접근권이 없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오래 살 것이다.(이것은 이미 어느 정도는 일어나고 있는데, 많은 나라의 빈자들은 선진국들의 빈자들보다 수명이 훨씬 더 짧다. 이런 가상적 상황에서는 문제가 더 악화될 뿐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상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일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오래 산다면, 그들은 많은 이들이 죽는 것을 볼 것이다. 이것은 삶의 질의 개선인가? 수명 연장이 인구 사이에 균등하게 분배되어 소수에게 특권이 부여되지 않을 때에만 그럴 것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면, 오바마케어처럼 의료에 대한 보편적인 접근권을 갖는 것은 틀림없이 평등화를 향한 힘이다. 우리는 모두 동일한 양질의 의료에 대한 접근권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향상된 삶의 질과 수명에 대한 접근권도 가질 것이다.

 

또 하나의 예는 인간 복제 영역이다. 인간 복제의 목적은 무엇일까? 부부가 아이를 낳을 수 없다면, 입양을 비롯하여 이미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들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 복제는 수명 연장 프로그램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육체와 기억이 무한정 재생산될 수 있다고 상상하자. 이 경우에, 어떤 사람은 사실상 매우 긴 시간 동안 계속 존재할 것이다. 현재 이것은 과학소설적이지만, 자연법칙들이 선험적으로 금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니다.

 

물론, 현재 우리는 인간을 복제할 수 없으며, 그리고 뇌 사이에 기억을 이전하는 방법에 대한 그 어떤 실마리도 없다. 그런데 과학에서 "결코"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이것들과 같은 사례들에서 우리가 느끼는 최초의 충동은 이런저런 것을 금지하고, 특수한 종류의 과학이 결코 수행되지 않도록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판도라의 상자를 개봉하는 두려움 속에 산다. 그런데 이런 접근 방식은 기껏해야 순진하다.

 

여기서 수행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선을 위해서든 악을 위해서든 어딘가 다른 곳에서 수행될 것이다. 본질적인 요점은 이렇다. 선하거나 악한 것은 과학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내리는 선택들을 통해서 선과 악을 만들어내는 존재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