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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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코츠코: 오늘의 논평-학술서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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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15.

 

비평과 비판: 학술서에 관하여

Criticism and critique: on academic books

 

―― 애덤 코츠코(Adam Kotsko)

 

나는 내가 속해 있는 학계의 구석에 널리 퍼진 경향―책을 자체의 성취가 아니라 장래성으로 판단하는 것―에 점점 더 짜증나게 되었다.  그 현상은 지젝과 밀뱅크의 <<예수는 괴물이다(Monstrosity of Christ)>>라는 책으로 인해 가장 강력하게 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지젝과 밀뱅크 사이의 논쟁이라는 바로 그 생각에 매우 흥분하여 그 책 자체가 부실하게 편집된, 거의 읽을 수 없는 괴물이라는 사실을 무시했다. 아니야, 아니야. 이 책은 흥미진진한 획기적인 작업이야! 나는 그런 논쟁이 벌어지는 장면을 내가 어떻게 상상하는지에 관해,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할 것인지에 관해 말하겠다....

 

아감벤의 <<왕국과 영광(Kindom and the Glory)>>이라는 책의 수용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아감벤이 경제의 신학적 근원을 증명해 버렸다, 이상 끝(그리고 그것은 신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기 때문에 흥미롭지 않습니까!)이거나, 아니면 비마르크스주의적 방식으로 경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아감벤은 틀렸음에 틀림없다. 그 반응은 거의 전적으로 외부적이다. 그런데, 책으로서의 책에 관해 제기되는 매우 진지한 의문들이 존재한다. 그 책의 구조는 혼란스러워서 식별하기 매우 어렵다. 슈미트-페테르센 논쟁을 둘러싼 틀은 다양한 이유 때문에 미심쩍다. 기타 등등. 그 책에서는 대단히 많은 것이 제시되고 있을 뿐이어서 아감벤이 무엇을 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이해하기 어려우며, 그가 실제로 그것을 해냈는지 여부와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는 훨씬 더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는, 아마도 대학원의 고급 세미나 강좌를 제외하고는, 그 책을 강의에 사용하는 것을 결코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예는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부채(Debt)>>라는 책이다. 그것은 정말 흥미로운 책이지만, 그것의 인기는 외부 인자들에 의해 결정되는 듯 보인다. 현재 부채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며, 그리고 그레이버는 점거하라 운동을 고무하는 데 도움을 준 좌파 정치 활동가다. 그 책과 관련된 좋은 것은 부채에 관한 좌파 책으로서의 순전한 현존이다. 그 책 자체는 어떠한가? 정말 왜 이래요, 하찮은 일로 트집을 잡지 맙시다.

 

나는 외부 인자들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또는 책을 순전히 "자체의 장점들에 의거하여" 판단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강단에서 우리는 대단히 드물게 책을 책으로 판단하는 듯 보인다. 책은 사유를 불러 일으키는 관념의 전달 매체이거나, 또는 우리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방법론에 관한 사례이거나, 또는 우리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정치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아무튼 책 자체―개념들, 증거, 그리고 논변들의 공들인 짜깁기에서 비롯되는 인공물―는 사라져 버린다.

 

보수적인 비판가는 이것이 강단이 탈근대적인 상대주의적 정체성 정치나 그 비슷한 것에 어떻게 빠져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지만, 나는 미학적 함의들에 관해 더 우려한다. 아마도 우리는 글쓰기 기술―그래서 또한, 감히 말하자면, 읽기 기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책으로서의 책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간단히 처분할 수 있는 텍스트의 껍데기를 건너뛰어 관념들과 전제들과 정치를 파악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것은, 텍스트에 대한 끊임없는 주석만 만들어내고 있다고 매우 흔히 비난받는, 내가 속해 있는 강단의 구석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는 이상한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