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존 프로테비: 오늘의 인용-생산의 존재론

댓글 0

카테고리 없음

2013. 12. 14.

 

"

[...] 프린즈의 책[<<인간 본성을 넘어서(Beyond Human Nature)>>]의 주요한 논의 주제들 가운데 하나는 사회적 구성주의와 생물학적 환원주의/결정주의의 대립을 넘어서 "생물문화적" 입장 같은 것을 지향하려는 시도다. <<인간 본성을 넘어서>>의 마지막 문단은 이런 입장을 제시한다. "양육은 그것 자체만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모든 문화적 특질은 실제로 생물문화적 특질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을 연구할 때 우리는 결코 생물학을 버릴 수 없다... 우리가 경험함에 따라 변화할 수 있게 하는 일련의 메커니즘들로서의 우리의 생물학적인 천부적 재능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자연적 구성에 대한 탐구는 인간의 가소성을 설명하는 쪽으로 정향되어야 한다"[367].

 

그래서 그 어떤 하나의 생산도 미래의 다양한 생산들에 대한 능력을 소진하지 않는 것처럼, 생물문화적 가소성이라는 관념에서 알게 되는 것은 그것들 자체가 어떤 고정된 규정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규정된 특질들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들이다. 즉, 메커니즘들은 특질들의 생산 뒤에 물러서 있다. 우리는 생산된 다양한 특질들로부터 메커니즘들의 존재를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물러서 있는 메커니즘들에 생산된 특질들과는 다른 존재론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 우리는 다양한 특질들은 만나지만, 그것들을 생성하는 메커니즘들은 결코 만나지 못한다. [...]

[...]

그래서 [...] 문제는 물러서 있는 생성 매트릭스와 생성된 특질들[...] 사이의 존재론적 차이는 무엇인가이다. 매트릭스와 특질[...] 둘 다 실재적이지만 동일한 양태적 지위를 지니고 있지 않다. 들뢰즈는 이것을 잠재태와 현실태 사이의 차이라고 부르곤 했다. 현실태는 현존하지만, 잠재태는 주장한다. 그런데 그런 특수한 용어는 사실상 명확히 표현될 필요가 있는 존재론적 지위의 어떤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

―― 존 프로테비(John Protev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