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존 프로테비: 오늘의 인용-어린이의 뇌와 성인의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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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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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에 따르면] 인간들은 그 어떤 초자연적 보충물도 없이 전적으로 자연의 일부이며, 그리고 본질은 사물들을 개체화하는 방식이 아니다. [...]

 

나는 브루스 웩슬러(Bruce Wexler)의 <<뇌와 문화(Brain and Culture)>>(MIT, 2006), 특히 인간들은 사회적으로 매개된 신경가소성(socially mediated neuroplasticity)의 긴 어린 시절 동안 진화했다는 그의 주장을 참조함으로써 이 점을 이해할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인간 본성이란, 우리는 우리의 독특한 사회-육체적 상호작용의 유형들에 의해 개체화된다는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들뢰즈적 의미에서 "유목적(nomadic)"인데, 인간 본성은 양육에 대단히 개방되어 있어서 양육이 제2의 본성이 된다. [...] 가장 "유목적"인 것, 가장 조형적인 것은 어린이들이다. 대부분의 성인들은 유목주의(nomardism)에서 멀어져서 토착적으로 되는데, 그들은 동일한 것들을 더 많이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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웩슬러의 경우에, 우리는 격렬한 사회적으로 매개된 신경가소성의 긴 시기[...] 동안 진화했지만, 이런 신경가소성은 성인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축소된다. 한 마디로, 어린이들은 신경심리적 구조들을 구성하는 데 감각운동적 자극과 사회적 자극이 필요한 반면에, 성인들은 자신의 세계를 형성하거나 최소한 이전에 생성된 구조들을 강화하는 입력을 선택하는 데 유의한다. 신경가소성에 있어서의 이런 차이는 세대 간 갈등, 사별과 이민 경험, 그리고 사회적 갈등을 조명한다.

[...]

웩슬러는 흔히 "유물론적"이라고 잘못 명명되는 환원주의적/기계론적인 조잡한 시각과 육체적/정동적/사회적 관계들의 환원 불가능성을 포함하는 시각 사이에 중요한 구별짓기를 행한다. 다시 말해서, 연구에 따르면, 어떤 생화학적 의미에서 유아는 "근본적으로" 젖을 먹고 자라며, 육체적/정동적/사회적 관계들은 이른바 근본적인 생화학적인 것에 덧붙여진 부차적이고 부가적인 덤이 아니라, 젖만으로는 발달을 조장할 수 없을 것이라는 보여준다(89). 나아가서 젖은 "엄마와 유아 사이의 접촉이 발달에 필수적이기 때문에 이런 접촉을 확보하는 수단"일 뿐이라고까지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86). 물론, 어떤 생화학적으로 환원적인 일반적 의미에서 젖은 발달을 위한 필요조건이지만, 육체적/정동적/사회적 관계들도 마찬가지로 필요하고, 마찬가지로 근본적이다. 생화학적인 것은 근본적이고 육체적/정동적/사회적인 것은 부차적이라는 그런 위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상, 옥시토신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호르몬이다. [...] 옥시토신의 생산은 그것이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그런 종류들의 사회적 관계들에 의해 촉발될 뿐이다. 우리 육체의 사회적 본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포유류 동물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또 다시, 생화학적 환원주의를 "유물론적"이라고 명명하면 틀린 까닭은, 발달의 신경심리학을 형성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우리 존재에 근본적이라는 의미에서, 육체적/정동적/사회적인 것도 생화학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유물론적이기 떄문이다. 인간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포유류 동물들은 생물-신경-사회적 동물이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론이며, 그리고 그것은 상호작용적 과정으로 가장 잘 간주된다. 다시 한 번, 우리는 [...] 우리를 구별짓는 본질을 구성하는 일련의 특성들이 아니라, 우리의 상호작용 유형의 특이성에 의해 개체화된다.

[...]

명심해야 할 중요한 것은 [개체에] 내재화되는 것은 어떤 독립적인 실체의 특성들이 아니라 상호작용의 유형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상호작용의 유형들이다. 그것이 우리 존재이다. [...] 우리는 바로 관계들을 형성하고 재형성하는 과정들의 유형들이다. [...]

 

우리는 먼저 유아기, 어린 시절, 그리고 사춘기의 사회적으로 매개된 신경가소성을 논의한 결과, 개체화란 사회적 상호작용의 유형을 특이화하는 과정이라는 결론을 제시했다. 이번에는 세계에 대해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거나 세계를 적극적으로 구성함으로써 성숙한 유형들(내부 세계와 외부 세계의 "조화")을 보존하려고 노력하는 성인 과정들을 논의하는 데 집중하자. 첫 번째 성인 과정은 현존하는 세계에 대한 지각을 바꾸는데, 즉 그것은 과거의 시각에서 현재에 대해 작용한다. 두 번째 과정은 "후속 사건들이 선재하는 내적 구조들과 일치할 확률을 증가시키기" 위해 세계를 바꾸는데(143), 즉 그것은 미래를 과거에 일치하도록 하기 위해 현재에 대해 작용한다. 웩슬러는 어린 시절에서 성인 시절로의 전환을 학습과 작용 능력의 관계에 있어서의 변화로 서술한다. "우리는 작용할 수 없을 때 가장 많이 배운다. 우리가 세계에 대해 작용할 수 있는 무렵이 되면 우리의 학습 능력은 급격하게 감소해버린다"(143). 나는 이런 생물-신경-문화적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 개체군 가변성을 조금 더 강조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 웩슬러가 강조하는 성인의 신경생리학적 보수주의는 사람에 따라 가변적이고, 그래서 어떤 성인들은 여전히 참신한 경험들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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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프로테비(John Protev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