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로저 펜로즈: 오늘의 인용-세 가지 세계와 세 개의 미스터리

댓글 3

카테고리 없음

2014. 1. 11.

 

"

수학적 존재는 물리적 존재나 인간의 의식(마음)이 만들어 낸 존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존재들은 신비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

 

각 세계를 연결하는 세 개의 다리 중에서 플라톤 세계와 물리적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부터 살펴보자. [...] 이 다리는 한쪽 끝(물리적 세계에 접한 부분)이 넓고 다른 쪽 끝(플라톤의 세계에 접한 부분)은 좁은 형상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수학세계의 일부만이 물리적 세계에 투영된다는 뜻이다. 순수수학이 물리적 세계에 적용되는 사례가 가끔 나오지만, 사실 수학자들이 연구하는 방대한 내용은 물리학이나 그밖의 과학[...]과 별다른 관계가 없다. 이것이 첫 번째 미스터리이다. 또한, 물리적 구조물[...]로부터 인간의 정신(지성)이 창출되는 과정도 커다란 미스터리이다. 물론, 모든 물리적 구조가 지성을 낳는다는 뜻은 아니다. 고양이의 두뇌는 정신적 세계를 창출할 수 있지만, 바위는 그렇지 못하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미스터리는 인간의 정신활동 중 극히 일부만이 수학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

 

[가운데 그림]에 의하면, 물리적 세계는 전적으로 수학법칙이 좌우한다. [...] 이런 관점대로라면, 수학적 원리[...]의 지배력이 닿지 않는 부분은 물리적 우주를 통틀어 존재하지 않는다. 즉, 수학적 원리가 물리계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행하는 물리적 행위도 궁극적으로는 수학의 통제를 받는 셈이며, 이 '통제'가 엄격한 확률적 원리를 따르는 몇몇 무작위 사건에도 관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논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 역시 글을 쓰면서도 마음이 별로 편치 않다. 그러나 내 논리는 그저 자연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을 보완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수학의 통제를 받는 물리적 행동과 통제를 넘어선 물리적 행동을 구별하는 선이 무엇인자 잘 모르기 때문이다. [...]

 

[...] 나와 내 친구들의 모든 행동이 결국 그런 수학적 원리의 지배 아래였음이 사실로 밝혀질 때 내가 느낄 감정이 궁금한가? 난 나름 괜찮겠다고 본다. 나의 행동이 쾌락을 추구하는 마음이나 탐욕, 폭력 등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기보다[...], '플라톤의 이상향에 있는 무언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그럴듯하지 않은가? [...]

 

수학에 익숙한 독자들도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은 전적으로 수학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가운데 그림]에 나와 있는 다른 두 세계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나와 의견이 다른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개중에는 "아니, 인간의 정신과 관련된 모든 행동이 물리적 세계에 뿌리를 둔다고? 이 사람, 과학을 너무 신봉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나올지 모른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나의 편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물리적 세계와 전혀 무관한 '마음'이 별개로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으로 증명 가능할까? 증명이 없는 한, 확신을 할 수도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물리계와 상관없이 정신세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증거를 일상적인 과학에서 찾으려 애쓰고 있다.

 

내가 가진 또 하나의 편견은 [가운데 그림]에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다. 이 그림은 플라톤의 수학세계 전체가 정신세계에 포함되는 것처럼 묘사하는 데, 그 이유는 [...] 수학적 진리가 인간의 이성을 초월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 앞에서 나는 플라톤 세계의 '일부'가 물리적 세계의 '전체'에 투영된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을 "플라톤 세계의 일부가 물리적 세계의 일부에 투영된다"고 수정하면  [오른쪽 그림]과 같은 상호관계가 얻어진다. [...] 이렇게 하면 '수학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물리적 행동'이 허용되고, 물리적 세계에 뿌리를 두지 않은 정신세계도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또한 [...] 논리나 직관으로도 진위 판단이 불가능한 수학적 주장도 존재할 수 있다.

 

[...] 수정된 그림[..]을 수용하면 또 다른 미스터리가 등장한다――"왜 수학법칙이 현실세계에 놀라울 정도로 잘 들어맞는가?" [...] 신기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옳은 것으로 판명된 물리학이론들은 자연현상을 정확하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복잡 미묘하고 아름다운' 수학체계를 이루고 있다. 또한, 적절하게 구성된 물리적 물체(예를 들어, 인간의 두뇌)로부터 정신(의식)세계가 창출되는 과정과 수학적 진실을 인식하는 과정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인간의 두뇌가 단순히 계산기 역할만 할 뿐이라면, 위와 같은 과정들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 [...] 우리의 두뇌는 단순한 계산기가 아니라 무언가 심오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

――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 <<실체에 이르는 길(The Road to Reality)>>(박병철 옮김, 승산, 2010), pp. 5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