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레비 브라이언트: 오늘의 인용-과학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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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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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철학이란 우리를 둘러싼 주변 세계,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방식 그리고 최선의 통치 형식에 대한 탐구를 인도하는 기본 개념들에 대한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탐구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두 인물을 비교하자. 과학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우울증의 원인은 무엇인가?

 

[...] 철학자는 과학자에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인과성이란 무엇인가?

 

탐구할 때 과학자는 인과성이라는 개념을 전제하고 있다. 탐구할 때 그는 이 개념을 사용한다. 그런데 그는 정교한 인과성 개념을 지니고 을 수도 있거나, 아니면 예를 들면, 에우티프론 같은 사람이 경건함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플라톤이 비난했던 그런 종류의 일상적이고 무반성적인 방식으로 인과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그 개념에 대해 많이 생각해본 적이 결코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인과성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의문을 제기하면 의문들의 사태가 일어난다. 도대체 인과성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물을 수 있다. 상관관계, 즉 단지 서로 동반하는 두 사건과 진정한 인과관계를 어떻게 구별짓는지 물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이것은 흄의 의문이다. 그런데 아마도 가장 중요하게도, 오직 한 가지 형식의 인과성이 존재하는지, 아니면 다양한 형식의 인과성이 존재하는지 물을 수 있다. 일대일 인과관계만 존재할 뿐인가, 즉 하나의 원인에 하나의 결과만 있을 뿐인가? 일대다(多) 인과관계가 존재하는가, 즉 한 사건이 다양한 상이한 결과를 초래하는가? 심지어 인과성은 반드시 과거에서 현재로 작용하는지, 아니면 미래에서 과거로 작용하는 인과성 형식들이 존재하지 않는지도 물을 수 있다!

 

이런 개념적 의문들에 대한 대답들이 어떻게 우리의 탐구에 영향을 미치는지 인식하자. 어떤 과학자가 일대일 인과성만이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 연구를 수행하면, 그는 화학적 불균형 같은 우울증에 대한 단일한 원인을 찾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치료법에 대한 그의 제안들을 결정할 것이다. 그런데 그가 다대일 인과성 개념을 품고 있다면, 그는 뇌화학, 식습관, 작업 환경, 의미, 운동, 음주 등과 같은 사건들의 결합체나 집합체를 찾을 것이다. 이것은 매우 상이한 치료 모형으로 이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프로이트는 과거에서 현재로 움직이는 인과성 개념으로 작업한다. 현재 우리가 겪는 정신 질환은 어린시절 경험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하이데거가 주장했듯이, 인간이 미래적인 종류의 체계라면, 현재 우리가 겪는 정신 질환은 과거 어린시절 경험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앞에 미래를 기투하는 방식의 결과물일 것이다. 여기에 매우 다른 두 가지 심리적 모형이 있다.

 

개념은 렌즈와 비슷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개념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한편, 그 개념 밖에 속하는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게 어둠 속으로 밀어넣는다. 우리는 개념의 내용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면서 무반성적이고 무의식적인 방식으로 개념을 사용할 수 있거나, 또는 그것이 적절한지 아닌지, 그것은 무엇을 포함해야 하는지 등을 결정하려고 노력하면서 [...] 그것을 명시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무언가를 정의롭지 못하다고 비난하는 대신에 "정의란 무엇인가?"라고 물을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정의와 관련하여 평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무들―처벌을 훌쩍 넘어서는 의무들―이 있다는 점을 발견할 것이다.

 

여기서 나는 철학이 하나의 분과학문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사유 양식 또는 활동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운이 좋게도, 이런 종류의 개념적 반성에 관여하는 사람들을 수용하고, 이런 반성을 위한 현장을 제공하며, 기본 개념들에 대해 반성한 사람들의 사유를 보존하는 분과학문이 있다. 그렇지만 나는, 확실히 과학자도 "인과성이란 무엇인가?"과 같은 의문들을 제기할 수 있다(그리고 제기한다!)고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다. 확실히 그렇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일을 수행할 때 그는 과학이 아니라 오히려 철학을 행하고 있다. 철학은 철학과에서 일어날 필요가 없으며, 서점의 특수한 구역에 존재할 필요도 없다. 이런 종류의 반성적 활동에 관여하기 위해 철학 학위를 받을 필요는 없다. 그것은 어느 곳에서나 어느 때나 일어날 수 있다.

 

이해해야 할 중요한 것은 철학자가 이런 개념적 반성에 관여할 때 과학의 탐구와는 다른 종류의 탐구에 관여한다는 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나는 이것이 철학이 무엇인지를 망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철학의 핵심 요소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형식의 탐구는 과학적 탐구에 모순되거나 대립적인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른바 세계에서 일어나는 어떤 현상에 대한 관찰적 설명에 앞서는 상이한 것을 탐구하고 있다. 나는 개념적 반성이 필요하지 않는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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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