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노엄 촘스키: 오늘의 인용-대학의 죽음

댓글 0

카테고리 없음

2014. 3. 24.

 

"

착상은 사회를 두 집단으로 나누는 것이다. 한 집단은 때떄로 "플루토노미(plutonomy)"(시티뱅크가 투자자들에게 자금 투자처에 대해 권고할 때 사용한 술어)라고 불리는데, 그것은 전지구적이지만 대체로 미합중국 같은 지역들에 집중되어 있는 부의 최상층이다. 나머지 인구로 채워진 다른 한 집단은 "프레카리아트(precariat)"인데, 그들은 불안정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 착상은 때때로 상당히 노골화된다. 그래서 1997년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이 의회에서 자신이 운영하고 있던 경제의 놀라운 일들에 관해 증언하고 있었을 때, 그는 직설적으로 경제적 성공에 대한 기초들 가운데 하나는 그가 "더 큰 노동자 불안정"이라고 부르던 것을 부과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이 더 불안정해지면, 그것은 사회에 대해 매우 "건전한" 것인데, 노동자들이 불안정해지면 그들은 임금 인상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고, 파업을 하지 않을 것이고, 수당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기꺼이 그리고 수동적으로 주인을 섬길 것이기 떄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기업들의 경제적 건전성에 최적이다.

 

그 당시에, 반발이 없었다는 점과 그가 누렸던 큰 찬사로 판단하건대, 모든 사람이 그린스펀의 논평을 매우 합당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런데 그것을 대학으로 옮겨보자. "더 큰 노동자 불안정"을 어떻게 보증하는가? 노동자들이 입을 다물고, 매우 적은 임금을 받으며, 자기 일을 수행하도록 고용을 보장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을 어느 때나 잘릴 수 있는 가지에 계속 매달아 둠으로써 보증한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 비참한 조건에서 복무할 수 있게 되는 선물을 받으면 그들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더 이상 아무것도 요청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기업의 관점에서 사회를 효율적이고 건전하게 유지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대학들이 기업의 사업 모형을 향해 움직임에 따라 부과되고 있는 것은 바로 불안정성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과 관련하여 더 많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 노엄 촘스키(Noam Choms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