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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노에: 오늘의 에세이-'로보캅'의 철학들을 해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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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4. 6.

 

'로보캅'의 철학들을 해체하기

Deconstructing The Philosophies of 'RoboCop'

 

―― 알바 노에(Alva Noe)

 

어느 날 나는 내 동료 휴버트 드레이퍼스(Hubert Dreyfus)와 함께 <로보캅> 신작을 보러 갔다. 공교롭게도 그 영화에는 휴버트 드레이퍼스라는 이름의 등장인물이 출연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은 드레이퍼스 교수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 그것은 그에 대한 오마주이다.

 

영화 속 드레이퍼스는 경찰 로봇에 의해 제기되는 위험으로부터 미합중국 인민들을 보호하는 일에 열중하는 상원의원이다. 현실의 드레이퍼스 교수는 인공 지능에 대한 비판으로 유명하다. 그는 <<컴퓨터가 할 수 없는 것(What Computers Can't Do)>>이라는 책뿐 아니라 마찬가지로 영향력이 있는 <<컴퓨터가 여전히 할 수 없는 것(What Computers Still Can't Do)>>이라는 책의 저자이다. 드레이퍼스는 인공 지능이 오류에 근거하고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로봇이 아니며, 우리 삶은 합리적 계산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가치들의 풍경 속에서 살아간다. 사물들은 우리에게 중요하고, 특이한 점들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의 주의와 관심을 포착한다. 우리는 우리가 순전히 합리적이라면 그러했을 방식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타고난 로봇이 아니다.

 

상원의원 드레이퍼스와 그 영화의 제작자들은 철학자 드레이퍼스의 입장을 제시하는 작업을 매우 잘 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들은 기본적인 요지는 올바르게 이해한다. 우리는 삶과 죽음의 결정을 로봇에 맡길 수 없다. 로봇은 어려운 결정을 내릴 지혜가 없다. 로봇은 아무 느낌도 익히지 못했다.

 

드레이퍼스 교수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을 것이다. 추리 능력과 세계의 모든 정보에 대한 온라인 접근 능력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어려운 사례들을 다루기 위한 알고리즘은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명한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이다. 좋은 재판관이 된다는 것은 규칙을 맹목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말해주는 규칙이 부재할 때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상원의원 드레이퍼스라는 등장인물이 인공 지능의 한계점들에 대한 회의주의를 가리킨다면, 그 영화의 영리한 공학자 데닛 노턴(Dennett Norton)은 인간은 정보처리 장치일 뿐이라는 가정과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의 역능에 대한 낙관주의적 신념 둘 다를 나타낸다. 어느 누구보다도 더 심대하게 인공 지능의 전망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옹호해온, 그와 이름이 같은 사람인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과 마찬가지로, 데닛 노턴은 진보적 인사이고 좋은 사람들에 속한다. 그는 무기를 탑재한 드론보다 손을 잃은 기타 연주자가 다시 연주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로보캅>에서 이편 또는 저편을 지지하는 논변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표면적으로 그 영화는 이성적 정신과 감정적 영혼 사이의 대립에 관여하는 듯 보이는데, 후자는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반면에 전자는 인간과 기계가 공유한다. 그렇지만 데닛도 드레이퍼스도 그런 대립과 대체로 관계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영화를 그런 단순한 사고방식의 대립 아래에서 깔개를 끌어내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영웅 로보캅인 알렉스는 프로그램에 따라 자동적으로 행동하는 무감각한 드론으로 실험실에서 출시된다. 그런데 그는 점차적으로 가치, 기억, 예상 그리고 느낌을 지닌 사람으로 형성된다.

 

그렇다면 그 영화를 결국에는 인간 영혼이 승리한다는 관념을 얼마간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알렉스는 한때 건강한 살아 있는 인간이었다.

 

그런데 줄거리를 이해할 더 좋은 방식이 있다. 그것은 데닛과 드레이퍼스의 견해를 화해시킨다.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마음을 얻지 못한다는 점에서 드레이퍼스는 언제나 옳았다. 알렉스가 그저 컴퓨터인 한에 있어서는, 그만큼 그는 기계일 뿐이다.

 

그런데 데닛도 옳다. 로봇은 그냥 컴퓨터인 것은 아니다. 알렉스는 육체가 있고, 그래서 문제들을 대면한다. 그는 세계 속에 던져진 상태이다. 그의 내부 상태는 프로그램뿐 아니라 로봇과 세계가 결부되는 방식 덕분에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역설적인 요점이지만, 놀랍도록 그럴듯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기계에 불과하더라도 우리는 그냥 기계인 것은 아니라는 관념을 올바르게 평가한다. 사람은 세계와 관여하는 현장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글쎄, 우리는 기계일 뿐이지만 그냥 기계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인공 지능이 성공적일지라도 그것은 심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것을 제작한다는 것이 그것을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아마도 그 영화의 진짜 초점은, 그것이 리메이크하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기업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무기를 탑재한 드론의 배후 기업인 옴니코프(OmniCorp)는 선한 일을 행하거나 평화를 유지하는 것에 아무 관심도 없다. 그것은 시장 지배를 추구한다. 그래서 그 영화는, 특히 자본주의 환경에서는, 더 철학적인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하든 간에 기술에 결부된 위험들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제시한다.

 

이 영화의 명백한 악당은 옴니코프의 경영자로서 군사화된 인공 지능의 비인간적 관리의 배후에 있는 인물인 레이먼드 셀라스(Raymond Sellars)이다. 그는 사악하고 그는 사기꾼이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 나와 드레이퍼스의 의문이 있다.

 

왜 그 악역의 이름이 셀라스로 명명되었는가?

 

윌프리드 셀라스(Wilfrid Sellars)는 20세기 철학의 거장들 가운데 일인이었다.

 

<로보캅>에서 드레이퍼스와 데닛이 다른 한 저명한 철학자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악당에 맞서 대결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그런데 둘 다 철학 교수인 현실의 휴버트 드레이퍼스도 나도, 그리고 그날 영화를 함께 감상한 친구와 학생들도 악역의 셀라스와 동명의 위대한 철학자의 작업 사이에 놓인 그럴듯한 연결점을 생각해낼 수 없었다.

 

무슨 아이디어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