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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칼슨: 서평-새로운 경제의 지도 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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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5. 17.

 

새로운 경제의 지도 그리기

Mapping a New Economy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는 불평등 해결은 어설픈 땜질 이상의 작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 스캇 칼슨(Scott Carlson)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주의 없는 삶을 상상하라고 간청할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월 스트리트에서의 허깨비 돈(phantom money)의 조작에 당황하거나, 사회의 불평등 증가에 괴롭거나, 기업 경영자들의 백금 낙하산에 분통이 터지더라도,  여전히 이윤, 사유재산 그리 항상 보이지 않는 손이 조종하고 있는 자유시장의 견지에서 세상을 가늠할 확률이 크다.

 

뉴욕 시립대학의 인류학 및 지리학 교수인 하비에게 그런 세계는 끝나가고 있다. <<자본주의 열일곱 가지 모순과 종말(Seventeen Contraductions and the End of Capitalism)>>(2014)에서 하비는 자본의 옹호될 수 없는 요소들로 간주하는 것을 검토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불평등하고 파괴적이며 위기를 일으키기 쉬운 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분석한다. 이 책은 칼 마르크스(Karl Marx)에 대한 하비의 40년 공부의 정수를 나타내며, 그리고 특히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를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넣어버린 때에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과 가능한 것에 대한 대화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나름대로의 노력을 나타낸다.

 

"저는 완전히 틀린 듯한 방식으로 마르크스가 인용되는 것을 듣는 것에 넌더리가 납니다." [...] 하비는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마르크스라는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가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저의 글쓰기 대상입니다. 저는 지나치게 단순화하지는 않은 채, 사람들이 시작할 수 있기에는 충분히 단순하게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그 신간은 지리학 연구를 규정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다른 분과학문들도 아우렀던 학문 경력을 좇는다. 클라크 대학의 지리학 교수 J. 리처드 피트(Richard Peet)는, 하비가 1960년대와 70년대에 "노쇠한" 분과학문을 활기 있게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고, 그래서 지리학을 가장 좌경적인 학문 분야들 가운데 하나로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한다. 하비의 <<지리학 해설(Explanation in Geography)>>(1969)은 그 분야의 "주요한 실증주의적 교과서"였다고 피티는 말한다. 그 다음에, 널리 번역되고 재판된 분석서인 <<자본의 한계(The Limits of Capital)>>(1982)와 그를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현대의 감성과 실천들에 대한 다학제적 검토서인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The Condition of Postmodernity)>>(1989)이 이어졌다.

 

1950년대와 60년대 초에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지리학을 수학했던 하비는 1970년대에 볼티모어에 도착한 이후에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마르크스를 발견했다. 이미 그는 자신이 수학했던 전통적인 사회과학 이론에 갖혀 있다고 느꼈으며, 그리고 볼티모어―여전히 1968년 소요로부터 회복 중에 있었던, 인종적으로 분리된, 빈곤한 공장 도시―는 각성을 위한 환경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제가 영국에서 볼티모어로 왔을 때, 그 도시에 진행되고 있던 것에 뛰어들게 된 것은 약간의 충격이었습니다." 그가 말한다. "저는 그것을 바라보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기법들을 고려하면,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이해할지 알 수 없고, 그래서 무언가 다른 것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 때가 바로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제가 마르크스를 읽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그는 볼티모어의 주택 문제를 분석하는 대학 위원회의 일원으로서 도시 지도자들을 위한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자본론>>의 관념들을 차용하였다. 그는 사용가치(말하자면, 거주지로서의 집의 가치)와 교환가치(구매하여 넘기는 자산으로서의 집의 가치) 사이의 갈등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과 자본은 문제점들을 떠넘길(황폐화와 고급 주택지화가 주변 지역들로 두루 이동할 때처럼) 뿐 결코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관념에서 공명하는 힘을 찾아내었다. 도시 지도자들―그들의 정치에 무관하게―은 그 보고서가 통찰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비는 말한다. "저는 그들에게 마르크스로부터 그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말한다. "그것이 저와 더불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욱 더 먹힐수록, 저는 이것이 무분별한 체계가 아니라 사실상 전적으로 흥미로운 체계라는 확신을 더욱 더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래로 하비의 작업은 도시 문제, 정치, 경제 그리고 자본주의에 집중되었다. 앰허스트 소재 메사추세츠 대학의 경제학 교수 로버트 폴린(Robert Pollin)은 자신의 학생들에게 하비의 <<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A Brief History of Neoliberalism)>>(2005)을 필독서로 지정했는데, 그 책은 케인즈주의 경제학과 공공 부문의 사기업 제한이라는 그것의 관념을 오늘날 널리 퍼져 있는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로 대체하는 40년에 걸친 정치적 기획을 해설한다.

 

"제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는 거인입니다"라고 폴린은 말한다. 그런데 하비에 대한 그의 존중은 경제학이라는 더 보수적인 분과학문에서는 이례적이다. 내가 접촉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하비의 작업에 대해 물었을 때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의 반응을 나타내었다. 그들은 하비가 중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결코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거나, 또는 그들은 그에 대해 결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경제학자들의 내향적 집중의 징표이지 하비의 작업에 대한 비난의 근거가 아니라고 폴린은 말한다. "하비가 주요한 사상가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미합중국의 한층 강화된 자본주의 문화에서 마르크스주의자 지식인―톰슨 로이터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일지라도―이라는 것은 공론장에서 흔히 무시당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유럽과 남미에서 출연하는 동안 하비는 많은 대중과 주류 뉴스 매체의 관심을 끌지만, 미합중국에서 그의 이름은 주로 소규모 좌파 방송국에서 나타난다.

 

"저는 BBC에는 출연하지만, NPR에는 출연하지 못합니다." 그가 말한다. "주류 매체에서는 이것을 진지하게 여기는 것을 금제하는 일종의 금기가 존재합니다."

 

<<자본주의 열일곱 가지 모순과 종말>>은 더 넓은 독자층에 하비를 소개하는 책일 것이다. 결국 그것은 때마침 좋은 순간에 놓이게 된다. 소득 불평등을 다루는 것은 올해 오바마 대통령의 최상위 의제이다. 뉴욕 주코티 파크에서 점거하라 운동이 일어났던 이래로 공중은 "1퍼센트"―시위대들이 대중화시켰던 술어―의 권력 강화에 대해 더 자각하게 되었다. 경제 붕괴 동안 성인이 된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마르크스가 복귀했는데, 현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새로운 탐색서인 <<유토피아 아니면 파산(Utopia or Bust)>>(2014)에서 벤자민 쿤켈(Benjamin Kunkel)은 제1장을 하비를 논의하는 데 바친다.

 

"이 세대를 위한 마르크스 해설자 한 사람을 꼽아야 한다면, 그것은 데이비드 하비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을 연구했으며 최근에 <<네이션(The Nation)>>에 "새천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에 관한 글을 기고한 컬럼비아 대학의 역사학 박사과정 학생인 티모시 솅크(Timothy Shenk)가 말한다. "그를 구별짓는 것은 바로 명쾌한 산문에 대한 타고난 재능입니다. 저는 마르크스에 대한 뛰어난 해석을 명료하고 활기차게 제시하는 데 더 능숙한 사람은 아무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최근에 당대 강단의 록스타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미합중국 순회로 자본주의를 의문시하기 위한 미합중국 무대가 세워졌다. 프랑스 경제학자의 <<21세기의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은 불평등을 향한 자본주의의 경향을 조명하고 순수 이론에 대한 경제학자의 주의집중을 비판했다.

 

하비는 피케티가 경제학에서 "인문주의적 전통의 일부를 회복시킨" 방식을 높이 평가하는 한편, 그 책이 자본의 문제점들의 복잡한 근본 원인들이 아니라, 자본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불평등에 과도하게 집중하고 있다고 믿는다.

 

"피케티는 부와 소득의 불평등의 역사에 대한 멋진 정보의 원천이 있으며, 그리고 그것은 매우 유용합니다만, 당신은 그 책을 읽고나서 2007년과 2008년에 일어난 일―리만 브라더스가 왜 파산했는지, 위기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을 전혀 알지 못할 것입니다." 하만이 말한다. "<<열일곱 가지 모순>>에서 제가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은, 자본은 매우 다양한 모순들이 얽혀 있는 다면적인 체계라는 것입니다."

 

그 책은 2008년 위기를 촉발했던 바로 그것에서 시작하는데, 그것은 특히 주택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사이의 갈등이며, 그리고 부동산이 투기적 투자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이 집을 박탈당하게 된 방식이다. 자본주의가 돈을 걸 새로운 분야들을 찾음에 따라 점점 더 많은 필수품들이 교환가치에 의해 규정되고 지배당한다고 하비는 지적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금까지 국가에 의해 무상으로 공급되었던 사용가치의 많은 범주들이 사유화되고 상품화되었는데,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주택, 교육, 보건 그리고 공공 시설들이 이런 방향으로 진행된 바가 있습니다." 하비가 적고 있다. "정치적 선택은 부자들에게 충분히 잘 복무하는 상품화 체계와 시장의 전혀 개입하지 않은 채 만인을 위한 사용가치의 생산과 민주적 공급에 집중하는 체계 사이에서 이루어집니다."

 

나머지 모순들이 거기서부터 차례로 펼쳐진다. 예를 들면, 화폐의 가치, 특히 화폐가 그 어떤 유형의 금속 본위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을 때의 가치. 자본은 이윤과 생산성을 증가시키려고 노력하는 반면에 노동은 생활 수준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관계. 자본이 노동과 빈자들을 지배하는 현실 대 자유라는 자본의 수사법.

 

결말 부분에서 하비는 "위험한 모순들"을 탐구하는데, 그것들은 끝없는 복리 성장에 대한 자본의 요구, 그것이 초래하는 생태 파괴, 그리고 의미 있는 작업을 방해하고 맥빠진 소비주의를 고무하는 힘들을 탐구하는 마지막 장에서 검토되는 "보편적 소외"이다. 더 많은 부담을 이미 자본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사람과 기관들에 지우는 한―계급 불평등, 환경 파괴 그리고 인간 자유의 축소 같은 형태로―에 있어서 자본은 자체의 모순들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비는 적고 있다.

 

핵심적인 의문은 이것이다. 상황은 여기서 어디로 가는가? 하비는 "다양한 형태로 소외에 맞서기 위해 그리고 세계를 자본주의적 방식으로부터 본원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 종교에 기반을 둔 인간주의들과 제휴할 수 있는 혁명적 인간주의"를 요청한다. 그는 독자들에게 식량, 주택 그리고 교육 같은 필수품들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시장 체계를 거치지 않는 경제를 상상하라고 요청한다. 여기에서는 돈이 "썩고", 그래서 축척될 수 없다. 여기에서는 창의적 노력과 사회적 삶을 도모할 수 있도록 작업 속도가 감속된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제로 성장" 경제가 국가적 위기가 아니라 바람직한 정체이다.

 

그것은 당치 않은 듯 들릴 것이며, 그리고 하비는 그런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는다. 경제학자 폴린은 이것이 하비의 저작에 대한 자신의 주요한 불만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실행 가능한 전진 경로를 생각하는 것보다 비판하는 것에 훨씬 더 강하다는 점에서 하비는 칼 마르크스와 대체로 비슷합니다. 정말로 해결책에 관심이 있다면, 전문 서적을 저술할 뿐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한편, 하비는 그 어떤 혁명도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심적 관념들을 변화시킴"으로써 시작해야 할 것이고, 그래서 부분적으로 언어를 바꿈으로써 그렇게 한다고 말한다. 점거 운동은 "1퍼센트"를 규정함으로써 이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는 그것을 시민권 운동과 동성에자 운동에서 보았습니다." 그는 말한다. "언어를 바꾸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그들의 심적 관념들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뀌면 새로운 정치를 추진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비는 다양한 난제들을 인식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신자유주의화"되어 버렸다고 그는 말하는데, 우리는 개인적인 것들을 숭상하고, 사회적 부문과 공적 기관들을 사유화하며, 정부의 잠재력을 비난하는, 재정 지원이 탄탄한 운동의 교리를 믿게 되었다. 좌파는 연대를 촉발하지 않는 "희생화의 서사에 의존하는 정치"에 관여한다. 현재 불평등을 다루는 데 사용되는 주요한 도구인 비정부 기구들은 부자들의 후원을 받고 있고, 그래서 그들을 먹여 살리는 부와 부의 축적을 비판할 수 없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주요한 부담으로 출현한 개인적 부채가 가장 중요한 난제일 것이다. "부채와 관련된 것들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미래를 담보로 잡는 경향이 있다는 점입니다. 당신은 이미 미래를 소비해 버렸습니다." 하비가 말한다. "당신의 미래가 이미 자본의 어떤 연속에 붙잡혀 있다면 본원적으로 다른 것을 상상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어떤 시점에 그 체계는 지속될 수 없다고 하비는 믿는다. <<열일곱 가지 모순>>의 마지막 페이지들에서 그는 폭력이라는 유령을 자본의 불평등에 대한 유력한 대응책으로 제기하는데, 작년에 터키, 이집트, 브라질 그리고 스웨덴에서의 소요와 시위는 "1960년대의 탈식민주의적 혁명 투쟁들을 어린이 놀이처럼 보이게 만들, 도래하는 지진에 대한 사전 진동처럼 더욱 더 보인다."

 

뉴욕 사무실에서 하비는 조용히 말한다. "그것이 더 오래 지속할수록 평화롭게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더욱 더 하지 않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