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마르첼로 글라이저: 오늘의 에세이-우리의 뇌,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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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5. 29.

 

우리의 뇌, 마술사

Our Brain, The Trickster

 

―― 마르첼로 글라이저(Marcelo Gleiser)

 

"지금 여기." 우리는 이 낱말들이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처럼 그것들을 전적으로 태연자약하게 말한다. 우리는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우리 삶에 있어서 명백한 목적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우리는 "여기"와 관련하여 더 많은 자유가 있지만―우리가 공간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며 공간에서 부피를 채우고 있는 객체를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지금"은 정말 실존하지 않는다. 우리 마음이 둘 다에 대한 표상을 만들어 내고, 그래서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서 헤쳐나갈 수 있다.

 

우리가 실재라고 부르는 것은 외부 자극들―풍경, 소리, 맛, 접촉 그리고 냄새―에 대해 우리 뇌가 수행하는 매우 복잡한 통합의 결과이다.

 

"저쪽"은 우리의 감각 기관들에 의해 수집되어 처리를 위해 우리 뇌의 적절한 부분들로 전달된 다음에 아무튼 이 모든 것이 실재 감각으로 통합된다. "지금 여기"는 이런 통합물들, 우리를 작동하게 만드는 근사물들 가운데 하나이다. 여기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지금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과거와 미래를 연결할 것인가?

 

뇌가 실재를 구성한다는 점은 아무에게도 새로운 소식이 아닐 것이다. 여러분이 해야 하는 모든 것은 그것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인데, 술에 취하거나 약물을 복용하거나 며칠 동안 잠을 자지 않으면, 여러분의 실재 지각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여러분이 누구인지, 그리고 여러분이 세계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는 여러분의 뇌가 감각적 자극들을 여러분이 환기해내는 기억들과 어떻게 통합하는지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과거 사건들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매우 결함이 많고 파편적이지만, 우리의 자기 의식은 날마다 여전히 강하다는 것은 흥미로운 역설이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거나, 또는 우리가 그렇게 지각한다. 그런데 우리 머리 속에는 시계가 없다. 우리는, 폭포, 심장 박동 그리고 끝없는 사유의 흐름, "의식의 흐름" 같은 "이쪽" 사건들과 "저쪽" 사건들에 대한 지각을 갖는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간에, 이른바 "자아의 극장"―우리 머리 속에서 영화가 끊임없이 상영된다는 관념―과 관련하여 인지과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쟁들이 존재한다.)

 

공간과 관련하여 우리가 갖는 자유, 즉 의지대로 돌아다니는 자유는 시간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나름의 방식대로 우리를 붙잡고,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여러분이 도덕에 관심이 있다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시간이 더 열심히 작업하게 만드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 볼 때 우리는 객체들을 과거의 모습대로 본다. 그리고 그것들이, 예를 들면 구름과 태양이 우리로부터 상이한 거리에 있더라도, 현재 우리는 그것들을 동시에 본다. 그런데 더 멀리 있는 객체는 더 먼 과거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것을 현재의 모습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모습대로 본다. 그리고 그것이 더 멀리 있을수록 더욱 더 먼 과거의 그것을 보는데, 8분 전 모습의 태양을 보고, 여러분의 랩톱 스크린은 대략 십억 분의 일 초 전 모습이다. 이것들은 빛이 객체에서 여러분의 눈에 닿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우리를 속여 "실재적"인 것들에 대한 감각을 구성하게 만드는 점에 대해 뇌에 감사할 수 있다.

 

우리는 현실적 현재 속의 그 어떤 것도 지각하지 못한다. 우리가 "현재"라고 부르는 것은 많은 과거 역사들의 통합으로 구성된다. 마치 삶이 거대한 영화인 것처럼 시간의 흐름은 개별적이지만 연속적인 듯 보이는 이런 통합물들의 연쇄이다. 영화도 불연속적이기 때문에 이 유비는 적절하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 해야 하는 모든 것은 프레임 속도를 바꾸는 것이다, 아무튼, 쇼를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