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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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프랜시스: 오늘의 에세이-양자와 의식은 흔히 넌센스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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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1.

 

양자의식은 흔히 넌센스 의미한다

Quantum and Consciousness Often Mean Nonsense

 

많은 것들이 불가사의하다. 그 점이 그런 것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매튜 R. 프랜시스(Mattew R. Francis)

 

과학에서 양자역학보다 더 많은 넌센스를 불러 일으키는 주제는 없을 것이다. 확실히, 양자역학은 복잡한 연구 분야인데, 연구한지 거의 일 세기가 지난 후에도 모든 사람이 만족할 만큼 해결되지 않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측면들이 몇 가지 있다. 그런데 동시에, "우리는 모를 뿐이다"라는 점을 의미하기 위해 양자라는 낱말을 사용하는 것은 터무니없으며, 그리고 틀렸을 뿐이다. 양자역학은 스마트폰에서 형광등, 디지털 카메라와 광섬유 통신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거의 모든 현대 기술의 기초이다.

 

내가 넌센스 경주의 주자를 뽑아야 한다면, 그것은 많은 불가사의한 측면들을 지닌 다른 한 주제인 인간 의식일 것이다. 우리는 보통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지만, 자각하고, 자신에 관해 추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타자들(비인간들을 비롯한)을 자체의 욕구를 지닌 별개의 존재자들로 인식할 수 있다. 물리학자로서 나는 우리 의식이 우리 자신과는 다른 실재적인 것들을 상상할 수 있다는 관념에 매혹당한다. 우주는 일방적이지만, 우리는 전적으로 즐겁게 그것이 어떻게 다를 수 있었을지 생각한다.

 

나는 물리학 학위를 소지하고 있으며 양자역학을 배우고 가르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물리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양자물리학이 정말로 난해하고,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실재의 본성에 대해 논쟁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인상을 품고 있는 듯 보인다. 사실상, 대부분의 양자역학 수업은 많고 많은 수학인데, 그것들은 한 입자의 양자 상태―위치, 에너지, 스핀 등과 같은 물리적 특성들의 다발―를 사용하여 실험 결과들을 서술하는 데 쓸모가 있다. 확실히, 어떤 기묘한 것이 존재하고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즐겁지만, 양자역학은 실용적인 것을 목표로 삼는다(최소한 이상적으로는).

 

그런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양자역학과 의식의 불가사의한 측면들에 고무되어 자유롭게 추측하였다. 심지어 최악의 범죄자들은, 우리가 두 분야를 전적으로 이해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관련된 문제들임에 틀림없다고 말할 것이다. 처음에 그것은 그럴 듯 하게 들리는데, 우리는 양자물리학에서 어떤 것들이 정확히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하고, 뇌에서 의식으로 정확히 어떻게 진전되는지 모르며, 그래서 의식은 양자일 것이다.

 

이런 착상과 관련된 문제? 그것은 거의 확실히 틀렸다는 것이다.

 

확실히 그렇다. 어떤 의미에서 뇌는 양자인데, 모든 물질은 양자역학에 의해 서술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양자가 의미하는 것은 뇌 세포들이 소통하게 만드는 분자들과 같은 평범한 것이 아니다. 그 대신에, 양자라는 술어는 일반적으로 양자 상태에 의존하는 더 깊은 과정들에 대해 유보되어 있다. 양자 상태는 얽힘, 즉 단일한 체계의 부분들처럼 작동하는 두 개의 멀리 떨어진 입자들의 결합 같은 흥미로운 것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그런 분석 층위는 뇌 속 세포들 사이의 간극을 가로지르는 분자들의 운동을 서술하는 데 일반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생물학에서 양자 효과가 전적으로 배제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광합성이나 심지어 인간의 시각과 후각이 부분적으로는 양자 상태들을 조작함으로써 작동할지도 모르는 방식을 탐구하고 있다. 눈의 망막은 소수의 광자―빛 입자―들에 민감하고 광자의 양자 상태는 망막 세포의 양자 상태와 상호작용한다. 그런데 일단 그런 신호들이 뇌가 처리할 수 있는 것으로 변환되고 나면, 원래의 양자 상태는 무관한 듯 보인다.

 

나는 내 추측의 위험을 분산할 것이다. 뇌 속에는 어떤 작은 양자 효과를 위한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진심으로 나는 그런 효과가 의식과 직접 관련이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개별적 양자 상태들을 포함하는 것이 거의 대체로 기묘함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환경의 간섭으로부터 격리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입자들은 그 어떤 유의미한 방식으로도 얽혀 있지 않은데, 다른 입자들과의 상호작용들이 그것들의 양자 상태를 바꾸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은 결풀림(decoherence)으로 알려져 있다. (결풀림에 기반을 둔 마음 이론을 제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특히 정신이 산만한 날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런데, 훨씬 더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1989년의 베스트셀러 <<황제의 새마음(The Emperor's New Mind)>>에서 수리물리학자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는, 양자 상태의 해석과 관련된 문제들은 의식 있는 마음이 자체를 서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종류의 물리학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고 제시했다. 펜로즈는 자신의 전문 영역(공교롭게도 내 전문 영역이기도 한 상대성의 수학)에서 전혀 괴짜가 아니지만, 마음과 의식에 대한 그의 시도는 교훈적인 이야기이다.

 

과학의 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전문가라는 바로 그 사실이 여느 다른 분과학문에 대한 자격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자흐 와이너스미스(Zach Weinersmith)의 매우 웃기는 만화가 가리키듯이, 이것은 물리학자들의 특히 나쁜 습관이다.

 

일부 물리학자들은 현대물리학의 압도적인 성공이 언어학에서 고생물학까지 다른 과학들에 대한 판단을 공표할 능력을 자신들에게 부여한다고 생각한다. 명사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Michio Kaku)가 특히 어처구니없는 사례인데, 그는 진화를 완전히 오해하며(이 비판을 보라), 그리고 악명 높은 괴짜 디팩 초프라(Deepak Chopra)에게 우리 행위가 멀리 떨어진 은하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다음에 자체의 전문성을 갖춘 기후과학자들에 이의를 제기하는 물리학자들―빛과 물질의 상호작용들을 서술하는 양자 이론의 개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을 비롯한―이 있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이 유일한 범인들은 아니다. 신경과학자 W. R. 클렘(Klemm)의 새 책은 첨단 물리학이 인간 의식에 대한 해답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시사한다. 역설적으로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물리학자들이 생물학에 대해 글을 쓰면 나는 그것이 정말 싫다. 때때로 그들은 무식하고 어처구니없는 것들을 말한다. 그런데 내가 물리학에 대해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로 나는 그것이 정말 싫은데, 나 역시 무식하고 어처구니없는 것들을 말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여기서 내가 그렇듯이 말이다." 그 책의 발췌문에서 이어지는 거의 모든 것은 틀렸거나 오해를 낳을 소지가 있다. 나는 조목조목 대응하는 글을 쓸 수 있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양자역학과 관련하여 그가 인용하는 문제들과 불완전성은 과장되었고 순전히 틀린 것이다.

 

되돌아가서, 나는 그의 주장들 가운데 두 가지에 대해 간략히 꾸짖을 것이다. 첫째, 클렘은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런데 질량은 정말 에너지와 동일한가? 참으로, 원자폭탄이 입증하듯이, 질량은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고, 에너지도 질량으로 변환될 수 있다. 그래도 그것들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불필요한 혼란시키는 글이다.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E = mc^2은 근본적이고 전적으로 불가사의하지 않은 방식으로 질량과 에너지를 연결한다. 그 어떤 다른 단일한 방정식도 그렇게 많은 대중적 설명을 촉발한 적이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안심하고 그것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질량은 에너지의 한 형태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입자가 정지 상태에 있을 때 갖는 에너지이다. 확실히, 고속으로 충돌하는 입자 물리학에는 복잡한 것들이 존재하지만, 기본 개념은 정말 단순하다.

 

둘째, 암흑 에너지―이것과 관련하여 내가 슬레이트(Slate)에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는 은하 또는 더 작은 천체들에 에너지를 나누어주지 않는다. 그것이 "진공 에너지"인 것으로 판명되면―가능성이 높은 듯 보인다―암흑 에너지가 인간 의식과 관련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 머리가 텅 빌 때일 것이다.

 

양자라는 낱말을 오용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주장들뿐 아니라 클렘의 주장들과 관련된 문제는 그들의 추측이 한 분야 또는 두 분야 모두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의식과 관련하여 물리학이 말할 유익한 것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뇌가 작동하는 방식과 양자물리학 둘 다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면 그런 방향으로는 아무 진전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둘 가운데 어느 쪽에 대해서도 수고를 아끼는 것은 넌센스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