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데이비드 머민: 오늘의 인용-실재론으로서의 큐비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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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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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큐비즘은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면 당신의 기고문은 "측정은 실제 세계―그것이 무엇이든 간에―에서 일어나는 일의 "원인"이 아니라, 우리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일의 원인이다"라는 견해를 큐비즘에 귀속시킨다. 큐비즘의 실제 입장은, 측정은 무엇이든 특수한 한 사람(앨리스)이 자신의 외부 세계에 가하는 작용이고, 그래서 측정 결과는 이 세계가 그의 작용에 대한 자체의 반응을 통해서 앨리스의 내면에 불러 일으키는 체험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당신의 표현과 다르다.

 

세계에 대한 과학자의 작용이 중요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 작용에 대한 세계의 반응도 중요하다. 앨리스는 이 세계의 실존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앨리스의 머리 안에서 일어나는 것은 양자 이론이 측정의 "결과"라고 부르는 것일 뿐이다. 앨리스의 작용의 다른 영향들은, 그것의 결과처럼 앨리스가 직접적으로 입수할 수는 없더라도, 그의 외부 세계의 일부이며 다른 사람들은 자체의 작용을 통해서 잠재적으로 입수할 수 있다. 양자 이론의 모든 사용자들과 마찬가지로 앨리스는 자신의 사사로운 주관적 체험을 겪지만, 언어라는 불완전한 매체를 통해서 그는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서술하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우리 각자가 자신의 사사로운 체험으로부터 개별적으로 추론하는 상이한 외부 세계들의 공통적 특징들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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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머민(David Mer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