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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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첼로 글레이저: 오늘의 에세이-신들의 경기는 우리로 하여금 계속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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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3.

 

신들의 경기는 우리로 하여금 계속 보게 만든다

The Game of the Gods Keeps Us Watching

 

―― 마르첼로 글라이저(Marcelo Gleiser)

 

유명한 미합중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예전에 경기와 자연 법칙에 대한 흥미로운 비교를 제시했다(여기서는 월드컵 정신을 좇기 위해 축구로 각색했다).

 

"'세계'를 구성하는 움직이는 사물들의 이 복잡한 집합체는 신들이 펼치고 있는 거대한 축구 경기 같은 것이며, 그리고 우리는 그 경기의 관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경기 규칙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는 그 경기를 지켜보는 것이다. 물론, 충분히 길게 지켜본다면, 우리는 결국 규칙의 일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경기 규칙이 기초물리학이 의미하는 것이다."

 

이 비유에 따르면, 자연 법칙은 경기 규칙과 비슷하고, 그래서 물리학자들의 역할은 그 규칙을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연역 능력과 더불어 장비와 직관을 사용하여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직적으로 관찰함으로써 이것을 행한다.

 

파인만의 비유는 과학적 사유의 여러 측면을 예시하는데, 가장 명백한 측면은 우리의 영원한 무지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전체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다. 우리의 세계관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하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역사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1492년 콜럼버스에 대한 우주는 17세기 말 뉴턴에 대한 우주와 매우 다르다. 그 다음에, 뉴턴의 우주는 우리의 우주와 매우 다르다. 1500년대 초에 우주는 유한했는데, 지구가 창조의 정확한 중심에 고정된 채로 구체처럼 닫혀 있었다. 뉴턴에게 우주는 무한했는데, 마치 자연이 수학을 아는 것처럼 우주의 메커니즘들은 정밀한 정량적 법칙들에 의해 서술되었다. 자연 법칙을 알아내는 것은 신, 즉 위대한 기하학자의 마음을 읽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우주가 무한한지 그렇지 않은지 알지 못하지만(그리고 알 수 없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으며 은하들 사이의 거리와 속도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점은 안다.

 

자연 법칙은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규칙적인 것들과 행동들을 조직하는 방식이다. 달의 위상, 조수 또는 계절처럼 규칙적인 것들 가운데 일부는 판별하기 쉬운데, 모든 것은 뉴턴 물리학으로 잘 설명된다. 수소 원자의 에너지 스펙트럼 또는 수성 궤도의 세차 운동 또는 초전도성처럼 다른 것들은 파악하기가 더 어렵다. 파인만의 비유를 계속하면, 신들은 가시적인 움직임과 비가시적인 움직임을 뒤섞으며 매우 미묘한 축구 경기를 펼친다. 최소한 실재의 비가시적인 측면의 일부를 보기 위해서는 특수한 도구―망원경, 현미경, 질량 분광계, 입자 가속기, 모든 종류의 감지기와 검출기―로 우리 시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탐사 도구가 없다면 과학은 쓸모 없게 된다.

 

새로운 장치는 흔히 뜻밖의 새로운 법칙을 드러낼 잠재력을 품고 있다. 때때로 참신성은 혁명적이고, 그래서 우리는 실재의 어떤 근본적인 측면―공간과 시간의 구조, 물질과 에너지의 관계, 항성의 특성, 우주 또는 생명의 기원―을 재고할 수밖에 없다. 과학은 사물들을 파악하고자 하는 우리 노력의 총체인데, 그것은 진행 중인 과정으로서 항상 불완전하다. 신들의 축구 경기의 미묘한 점들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우리는 더욱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다. 법칙들이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한 미로를 형성할지 누가 알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여기저기서 그것을 엿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