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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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피어스: 오늘의 서평-녹색 신계몽주의가 우리 시대를 규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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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4.

 

녹색 신계몽주의가 우리 시대를 규정할 것이다

A new green Enlightenment will define our age

 

―― 프레드 피어스(Fred Pearce)

 

그것은 신계몽주의, 즉 21세기 우리의 지성적 삶과 정치적 삶의 지도 원리이다. 환경주의(environmentalism)는 결코 낭만적이고 반과학적이며 반진보적인 것이 아니라, 자원이 유한하고 전지구적 위험에 처한 세계의 미래이다. 선구적이고 가독성이 대단히 높은 역사서인 <<생태학의 시대(The Age of Ecology)>>는 그렇게 마무리된다. 18세기 환원주의를 뒤집는 이런 유형의 환경주의의 근본적인 통찰은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라는 것인데, 이것은 1970년대 미합중국 생태주의자 배리 코모너(Barry Commoner)에 의해 대중화된 문구이다.

 

이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듯이, 저자 요아힘 라드카우(Joachim Radkau)는 공평한 국외자가 아니다. 애초에 그는 청년 시절부터 생태학이 자신의 운동이라고 느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런데 그는 선동가도 아니고 예언자도 아니며, 그의 범위와 학식은 인상적이다.

 

그의 서사는 일기 작가 존 이블린(John Evelyn)의 17세기 런던 스모그에 대한 통렬한 비난과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앙리 루소(Henri Rousseau)의 야생 낙원으로서의 자연 재현으로 시작한다. 그는, 국립공원의 설립과 채식주의 같은 초기 녹색 생활양식 운동으로 이어지는, 자연 보호가 필요하다는 19세기의 우려를 추적한다. 그리고 그는 20세기 야생 컬트와 1930년대 미합중국 황진 지대(dust bowl)―그곳에서 "발달 중인 사막"은 등장하는 전지구적 환경 위기의 상징이 되었다―의 중요성을 지적한다.

 

그런데 그의 역사의 핵심은 지난 반 세기 동안 벌어진 환경 행동주의(environmental activism)의 등장이다. 특히 그는 이런 사회적 및 이데올로기적 운동이 어떻게 지구의 운명에 대한 우려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왔는지 기록한다. 이런 우려는 1968년 베스터셀러 <<인구 폭탄(The Population Bomb)>>의 저자 폴 에얼리히(Paul Ehrlich)와 같은 해에 <<사이언스>> 저널에 발표된 영향력이 대단히 큰 논문 "공유재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의 저자 개럿 하딘(Garrett Hardin) 같은 생태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으며, 그리고 열대 우림의 소멸과 다양성이라는 새로 주조된 개념의 중요성에 관한 E. O. 윌슨(Wilson)과 다른 사람들의 저술에서 나타났다.

 

라드카우는 개인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그는 "카리스마"가 역사의 큰 부분이라는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의 말을 인용한다. 그 결과는 이 책이 생태학의 명예의 전당―대다수가 여성들이다―에 대한 여행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먼저 다루어지는 인물은 <<침묵의 봄(Silent Spring)>>의 저자이자 "보이지 않는" 화학 오염 물질에 대한 현대적 우려의 배후 영향력인 생물학자 레이철 카슨(Rachel Carson)과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케냐의 식목운동가 왕가리 마타이(Wangari Maathai)이다.

 

그 다음에,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와 고릴라에 대한 관념들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영장류 학자 다이앤 포시(Dian Fossey)와 제인 구달(Jane Goodall)이 있다.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도 자격을 갖추고 있는데, 1961년에 출판된 책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The Death and Life of the Great American Cities)>>을 통해서 그는 도시 환경에 대한 근대주의적 관념들을 파기했다. 그리고 독일 녹색당의 열정적이지만 혼란스러운 지도자 페트라 켈리(Petra Kelly)와 세계의 주요한 생태여성주의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인도 물리학자 반다나 시바(Vandana Shiba)를 잊지 말자.

 

라드카우는 과학과 행동주의가 결합되었을 때의 많은 승리를 기록한다. 최고의 승리는 오존 구멍의 발견, 그것의 원인으로서 CFC의 재빠른 규명 그리고 자외선 복사로 인한 피부암에 대한 불안이 전지구적 협정 체결의 촉구를 통해서 스며 나오는 방식에서 거두게 된다.

 

또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납을 석유에서 제거한 것과 같은 망각된 성공 사례들도 있다. 그런데 과학적 및 공적인 관심에도 불구하고, 삼림 벌채, 기후 변화 그리고 생물다양성 상실이라는 삼중 위기를 중지시키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것으로 판명되었다.

 

때때로 녹색주의자들은 그들 자신의 최악의 적이었다. 라드카우는 "비정상적인" 당파들을 언급하는데, 무엇보다도 20세기 말의 폭력적인 영국의 동물 해방 운동 또는 콘크리트를 바른 선박 시셰퍼드(Sea Shepard) 호로 일본 포경선을 들이받은 그린피스 변절자 폴 왓슨(Paul Watson)의 탈선 행위를 묘사한다. 왓슨은 "생태학과 환경정치학이 아니라 사랑과 증오"에 의해 추동된다고 라드카우는 적고 있다.

 

그 대신에 그는 넓은 환경 교회, 적절한 과학에 기반을 두고 있는 교회를 보고 싶어한다. 그는 "편집광적인 열정"을 비난하는데, 비난 대상에는 "새로운 급행 열차 노선보다 두꺼비들의 방해받지 않은 짝짓기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만"을 진정한 환경주의자들로 수용할 사람들이 포함된다. 또한 그는 원자력과 대형 댐에 대한 반대 같은 다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환경 운동을 무력하게 만들어버린 "기후 결정론자들"도 겨냥한다. 저탄소 에너지라는 것이 이런 전력원들을 녹색 지지를 받을 가치가 있게 만들지는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때때로, 많은 독일 녹색당원들처럼, 라드카우는 핵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증오하는 듯 보인다. 히로시마에서 체르노빌을 거쳐 후쿠시마에 이르기까지 핵분열은 그의 주적이다. 그럼에도 그는 환경 운동의 다양성을 그 원인과 지적인 접근 방식들에 있어서 잘 성찰한다. 500쪽이 넘는 지면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은 심층생태학과 게릴라 가드닝(guerrilla gardening)에서 물 전쟁과 사이클링의 즐거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다.

 

녹색 신계몽주의는 신조가 아니라고 그는 결론짓는다. 그것은 "그 어떤 거대한 명확한 해결책이 없는 잡동사니 사태"이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주요한 지성적이고 영성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인 소명이다. 그것의 이질적인 형태들은 미래에 대한 공통의 관심과 세계에 대한 공통적인 전일론적 접근 방식에 의존한다. 그것은 "새로운 전지구적 지평들에 맥락을 부여하는 유일한 지성적 힘"라고 그는 말한다. 좋든 나쁘든, 우리는 생태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