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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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첼로 글라이저: 오늘의 에세이-지금 세상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계몽(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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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24.

 

지금 세상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계몽(주의)이다

What The World Needs Now Is A New Enlightenment

 

―― 마르첼로 글라이저(Marcelo Gleiser)

 

17세기와 18세기 유럽에서는 꽤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계몽주의라고 불리는 다양한 지성적 폭발. 철학자, 자연과학자(그때 그 둘 사이의 간격은 그렇게 넓지 않았다), 예술가 그리고 정치학자들은 인간들의 평등한 권리, 즉 아무 제약 없이 생각할 수 있는 자유에 기반을 둔 사유 혁명을 일으켰다.

 

틀림없이 그것은 상대적 평등이었는데, 일부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실수로 백인 남성들을 사회의 정점에 위치시켰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계몽주의의 핵심 메시지는 도덕적 가치들을 공유하는 전지구적 문명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포괄적인 지성적 틀은 전통적인 종교적 계율과 매우 달랐다. 사실상 계몽주의는 종교와 맹목적인 민족주의의 지나친 점들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예를 들면,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애국주의를 조국을 넘어서 거대한 인류 사회로 확대되는 것으로 간주했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이것을 "전지구적 애국주의"라고 불렀다. 어느 누구보다도 국경 폐지의 필요성을 믿었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에서 이런 관념들의 영향을 식별할 수 있다.

 

"제 생각에는 안보를 법률에 기반을 두는 국제 정부를 창설하는 것 외에는 문명의 해방과 심지어 인류의 해방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은 1945년 9월의 인터뷰에서 선언했다.

 

오늘날 이런 관념들을 재고하면, 우리는 자유롭게 흐르는 정보의 세계화가 계몽주의 기획의 일부를 실현했다는 것을 알아챈다. 정치적 전선들은 여전히 건재하지만, 관념들은 빛의 속도로 지구를 가로질러 이동한다. 하나의 시각, 즉 지구 시민이라는 시각이 출현하고 있다.

 

이것은 신계몽주의로 이어질 것인가? 아니면 오래된 동일한 균열이 웹 상에서 권위를 주장하는 수억 개의 익명의 목소리들에 의해 증폭될 뿐일 것인가? 우리는 모든 의견이 똑같이 타당한지 아니면 어떤 더 높은 목표(물론 문제는 이 목표가 무엇일지 결정하는 것이다)를 향해 집단적으로 겨냥해야 하는지 생각하느라고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과거에 나는 현대 천문학이 인류에 대한 새로운 시각, 즉 내가 인간중심주의라고 부른 것을 제공한다고 넌즈시 주장했다. 본질적으로 인간중심주의는 코페르니쿠스주의의 반전이다. 코페르니쿠스주의는 우리가 우주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우리가 점점 덜 중요해진다(그래서 사물의 거대한 도식에서 인간이 중요하지 않다는 신조이다)고 진술하는 반면에, 인간중심주의는 정반대로 진술한다.

 

수천 개의 외부 행성들을 찾아낸 놀라운 케플러 위성 같은 계획들로 지구와 비슷한 다른 행성들을 찾아서 하늘을 샅샅히 조사하고, 지구 생명의 역사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됨에 따라 우리는 지구와 우리 정체에 관한 새로운 본질적인 것을 알게 된다.

 

지구와 비슷한 특성들(비슷한 질량, 액체 물, 산소가 풍부한 대기 등)을 갖춘 다른 행성이나 위성들이 존재하지만, 지구와 그것의 지구물리학적 특성들은 독특하다(큰 위성, 지각판, 두꺼운 대기, 자기 극). 이런 특성들은 특히 장기적인 기후 안정성과 유해한 우주 복사로부터의 보호를 제공함으로써 지구에서 생명이 거둔 성공의 핵심 요소이다. 이런 우호적인 배경에 기반을 두고서 단세포 박테리아는 다세포 생명 형태, 복잡한 다세포 생명 형태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적인 다세포 생명 형태들로 진화했다. 이런 단계들 각각은 미묘하고 개연성이 없었다. 또한 대부분은 지구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초기 대기의 산소화처럼 그것들 가운데 일부는 지구 자체를 변화시켰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딘가 다른 곳에 생명이 존재하며, 그리고 어쨌든 우리가 아직 결정할 수 없다면, 그것은 희귀할 것이고 확실히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희귀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계몽주의에서 비롯된 철학들이 이것을 알았다면, 나는 그것들이 인류에 대한 자체의 전지구적인 입장을 우주적 입장으로 확대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체의 현존에 관해 궁금히 여길 수 있는 복잡한 분자 기계는 틀림없이 자체의 현존을 찬양하고 존중할 것이다. 그리고 지구가 인간의 현존을 가능하게 하는 덕분에(여기에는 그 어떤 목적론도 함축되어 있지 않으며, 안정한 지구물리학적 조건이 함축되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지구를 독특한 것으로 찬양해야 한다.

 

우리로 하여금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를 파악하게 하는 인간 이성은 가치에 있어서 완전히 세속적인 새로운 도덕적 명령, 즉 모든 생명체들의 평등과 생명 및 지구의 보존이라는 정언 명령을 향해 우리를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