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레비 브라이언트: 오늘의 인용-유물론에 대한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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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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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유물론에 대한 비난은 허수아비 수준의 대단히 편향된 물질 개념에 전제를 두고 있다.  "기계론" 또는 "환원주의" 같은 술어들이 제시되는 것을 듣는 순간 여러분은 다양한 조합들을 이루는 분할할 수 없는 입자들로 이해되는 17세기의 미립자 물질 개념(기본적으로 데모크리토스와 루크레티우스의 이론) 앞에 있다고 안다. 이것은 지난 삼백 년 동안 과학에서 이루어진 작업을 무시하는데, 특히 물질의 유동적이고 활성적인 본성을 무시한다. 우리가 물질에 대한 어떤 개념으로 미리 시작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어서 물질 개념은 철학에서 독특하다. 그것은 선험적 개념이 아니다. 확실히 근원적 직관―물질은 "질료"이거나 "물리적"이다―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무엇일지는 미해결의 의문이다. 과정, 힘들 사이의 관계, 에너지? 물질의 존재 또는 본성은 발견되어야 하는 것이고, 미래의 지식이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가오는 개념이다.

 

물론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왜 유물론이 인문학 내에서 그렇게 많은 적대를 불러 일으키는 듯 보이는가라는 의문이다. 유물론은 철학과 문학 이론 같은 분야들에서 작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분노를 일으키는 데 있어서 독특한 듯 보인다. 이런 분노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아 또는 영혼의 본성에 대한 무의식적인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되는가? 이런 적대감을 유발하는 것은 인문학 내에서 관념론을 향한 강한 경향,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조건짓고 심지어 구성하는 정신을 향한 경향이 존재하기 때문인가? 결국 물질은 사유에 저항하는 것, 개념이 사물을 삼켜버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다[...].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유물론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감안하면, 유물론에 대한 적대감은 단순히 존재론의 부적절한 점들에서 비롯되는 것 같지는 않다[...]. 이것은 유물론이 실재계, 즉 상관관계가 아닌 것을 건드린다는 징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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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