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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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 오늘의 인용-풍경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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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4. 6.

 

- 아래의 글은 송재학 시인의 산문집 <<풍경의 비밀>>(팬덤하우스, 2006) 95-98쪽에 실린 산문 <풍경에는 비밀이 있다>에서 일부 옮겨 놓은 것이다.

 

 

"지난 1년간 내 정신의 움직임은 육체와 서로 간섭한 듯하다. 누군가 노안(老眼)에 대해 이야기했다. 믿을 수 없었던 노안! 그러나 이제 사물은 조금씩 초점을 잃고 흐려져간다. 그리고 발바닥에서 빠져나가는 어떤 느낌. 그것은 아마도 맹목에 버금가는 열정이리라. 열정이 빠져나간다는 느낌은 토요일이면 더욱 증폭된다. 내 정신은 이제 중심과 멀어지려나. 뒤돌아보지 않아도 육체의 침식은 분명해진다.

 

그 변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라면 나무에 대한 생각이다. 나무는 풍경의 중심이 아니지만 불빛이나 빗소리처럼 조용한 섬모 운동을 한다. 1992년 늦가을 기이한 경험을 했다. 그 이후 풍경에는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풍경이 아무렇게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가 무심코 스쳐 지나가는 평범한 곳의 놀라움도 같이 깨달았다.

 

한 시인의 안내가 아니었다면 어찌 흥덕왕릉을 찾을 수 있었을까. 경북 안강에서 기계로 빠지는 지방도로 중간쯤에서 골목과 전답과 축사를 복잡하게 따라가다가 만난 소나무 숲에서 왕릉은 시작되었다. 숲에 들어서자마자 숨막히는 풍광이 펼쳐졌다. 먼저 나를 맞은 것은 고요였지만, 촘촘한 솔잎 때문에 하늘은 보이지 않고, 그 아래 나무의 시커먼 둥치와 풀이 자리지 않는 땅이 경이롭게 조화되어, 고요하면서도 아우성 소리가 가득했다. 나무들은 땅에서 벋어나온 누군가의 손같이 꿈틀거렸다. 햇빛이 차단되어 나무 전체가 뒤엉키고 비틀리고 울부짖고 움츠린 탓에 굽이치는 나무 둥치의 검은색과 푸른빛 솔잎은, 솟아오르려는 힘과 아래로 하강하려는 힘의 싸움터처럼 보였다. 고요와 아우성의 싸움터라 해도 마찬가지다. 숲을 천천히 돌아다닌다면, 아니 무언가 짓누르는 듯해서 뛰어다닐 수도 없었지만, 스스로의 한숨과 탄식 소리가 끝없이 되풀이되는 듯했다. 나무들의 섬모 같은 바람 소리도 끊임없었다.

 

[중략]

 

늪 같기도 하고 개펄 같기도 한 숲을 어렵게 벗어나니 능이 있는 공간이 홀연 나타났다. 갑자기 솟아오른 또 다른 별유천지의 공간은 숲의 가득함을 보상하려는 듯 몇 가지 석물만 제외하고 텅 비어 있었다. 각기 한 쌍의 문인석과 무인석, 그리고 왕릉의 장엄미는 물론 확장된 공간성에서 나온 미학이다. 왜 능 주변의 공간이 그토록 넓어졌던가? 소나무 숲이 만든 환상이거나 천 년의 시간이 고여 있었다는 감상주의자의 심리적 감응 탓일까? 외래인 처용 같은 무인석 한 쌍은 왕릉의 분위기와 공간을 서역까지 확대시켜 신비를 북돋운다. 판석 사이에 돋을새김한 십이지신상에 이끌려 능의 주위를 자꾸 걷는 동안 마음과 시선은 다시 침묵과 함성으로 엉킨 소나무 숲으로 향한다. 소나무 숲의 캄캄함과 환한 능의 대비는, 푸른 청솔 가지와 소나무 둥치의 검은색과 마찬가지로 밝음과 어둠이 어떻게 공존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밝음과 어둠은 서로 부추기는 색깔임을 그곳에 가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