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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앵거스: 오늘의 에세이-배리 코모너와 거대한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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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9.

 

배리 코모너와 거대한 가속

Barry Commoner and the Great Acceleration

 

―― 이안 앵거스(Ian Angus)

 

지난 십오 년 동안 과학자들은 인류가 자연의 나머지 부분과 맺은 관계에 대한 이해를 재검토하여 급진적인 결론을 도출했다. 이제는 지난 200년 동안 인간 활동이 지구를 전례 없는 잠재적으로 위험한 상태로 밀어넣어 버렸으며, 그리고 그 변화의 대부분이 이십 세기 후반부에 일어났다는 결론이 널리 수용된다. 이런 결론을 성찰하면서 이제 세계적 과학 기구들은 1800년 이후 시기를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 즉 인류세(Anthropocene)로 규정하자는 제안을 고려하고 있으며, 이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기는 거대한 가속(Great Acceleration)으로 불리고 있다.

 

이런 주제들과 관련된 많은 과학 논문과 강연들에서 언급되지 않은 것은 그것들의 결론―특히 거대한 가속에 관한―이 거의 오십 년 전에 현대 생태학의 창시자들 가운데 한 사람, 즉 <<뉴욕 타임즈>>가 "환경주의를 인민의 정치적 대의로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도발적인 사상가이자 선동가"라고 부른 헌신적인 사회주의자에 의해 예견되었다는 사실이다.

 

배리 코모너는 거대한 가속의 다양한 측면들이 나타나기 전에 글을 적었고, 그래서 그의 설명은 오늘날 발표되고 있는 글만큼 완전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거대한 가속의 사회적 대의, 경제적 대의 그리고 정치적 대의에 대한 그의 분석은 두드러지게 뛰어났다. 오늘날의 전 지구적 환경 위기를 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가속에 대한 현대 과학자들의 서술과 더불어 그것을 초래한 자본주의의 변화들에 대한 코모너의 설명에 입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당대의 과학적 발견, 기술적 발견 등을 연구하였고, 새로운 지식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결론을 확장하거나 심화하거나 바꾸는 데 사용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오늘날 사회주의자들은 환경 위기에 대한 사회주의적 대응책을 개발하기 위해 인류세와 거대한 가속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프로그램과 운동에 대해 생태사회주의(ecosocialism)라는 칭호를 수용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코모너의 작업과 최근의 과학적 연구가 환경 행동이 21세기 사회주의자들의 최우선 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인간-환경 관계에서 가장 빠르고 널리 미치는 변화"

 

오래 전부터 지질학자들과 다른 과학자들은 빙하가 지구 대부분에서 마지막으로 물러난 이후의 12,000년을 홀로세(Holocene, 전적으로 새로운)라고 불렀다. 인간들이 농경을 발명한 이후의 인류 역사 전체는 이런 비교적 따뜻하고 기후적으로 안정된 시기에서 이루어졌다. 홀로세 동안 인간 사회들은 빈번하게 생태계들을 변화시키거나 파괴했지만, 인간의 영향은 공간과 시간에 있어서 제한적이었는데, 결국 인간들은 이주하였고 땅은 회복되었다.

 

현재 지질학적 시대 척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국제적 과학 기구들은 대략 1800년 이후 시기를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 즉 새로운 인간 시대를 의미하는 인류세로 공식적으로 규정하자는 노벨상 수상 대기화학자 폴 크루첸(Paul Crutzen)의 제안을 검토하고 있다. 2000년 이래로 많은 논문들에서 제시된 크루첸의 주장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로 인간들은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영구적인 변화를 일으켰다―온실 가스의 대기 농도를 증가시키고, 그래서 지구 기후를 변화시킴으로써 가장 두드러지게―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명명하는 것은 본원적인 듯 보이지 않을 것이지만, 지질학자들에게 그것은 매우 큰 일이다. 인정된 다른 시대들은 대량 멸종, 운석 충돌, 물러나는 빙하 그리고 유사한 현상들에 의해 구분된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그리고 그것이 인간 종의 활동에 의해 규정된다고 선언하는 것은 인간 활동이 그런 지구 형성 사건들에 비견할 만하다는 선언에 해당한다.

 

나오미 오레스케스(Naomi Oreskes)가 서술하듯이, "인간들은 지질학적 행위자들이 되었는데, 지구의 가장 기본적인 물리적 과정들을 바꿔 버렸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참이다. 존 벨라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 브렛 클라크(Brett Clark) 그리고 리처드 요크(Richard York)가 지적하듯이, "인류가 유발한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홀로세의 종말은 갑작스럽게 지질학적 규모의 변화가 인간 역사 자체에 들어와 버렸다."

 

2007년에 크루첸은 기후과학자 윌 스테펜(Will Steffen)과 환경사학자 존 맥닐(John R. McNeil)과 함께 인류세 역사에서 확연히 다른 두 단계를 판별하고 서술함으로써 인류세에 대한 서술을 확장했다. 인류세는 1800에서 1945년까지의 산업 시대(Industrial Era)와 1945년에서 현재까지의 거대한 가속으로 나뉘어져야 한다고 그들은 말했다.

 

첫번째 단계는 대기 중 온실 가스의 축적을 증가시킨 화석 연료 사용의 확대로 특징지워졌다. 1945년 경에 온실 가스는 홀로세의 그 어떤 이전 시기보다도 더 높은 수준에 이르렀는데, 그것은 "인간 활동이 전지구적 규모에서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논박할 수 없는 최초의 증거"였다.

 

첫번째 단계에서 초래된 환경 변화들은 실질적이었지만, 그것들은 "인간-환경 관계에서 가장 빠르고 널리 미치는 변화가 시작된" 이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변화들에 비해서 미약해 보인다. 그 변화가 매우 극적이어서 인류세의 시작 시점이 1800년이 아니라 1950년이라고 제안한 과학자들도 있다.

[...]

"인류세: 이제 인간들은 자연의 거대한 힘들을 압도하고 있는가?(The Anthropocene: Are humans now overwhelming the great forces of nature?)"라는 도발적인 제목이 붙은 한 논문에서 크루첸, 스테펜 그리고 맥닐을 이렇게 적고 있다.

 

"인간의 기획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갑자기 가속되었다. 겨우 50년 만에 인구는 두 배 늘어나서 20세기 말 경에 60억 명을 넘었으며, 세계 경제는 15배 이상 커졌다. 1960년 이래로 석유 소비는 3.5배 증가했으며, 자동차의 수는 전쟁이 끝났을 무렵에 대략 4천만 대에서 1996년 경에 거의 7억 대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1950년부터 2000년까지 도시 지역에서 사는 세계 인구의 비율이 30%에서 50%로 증가하였고 게속해서 힘차게 증가하고 있다...."

 

그 저자들은 제목에서 제기된 의문에 대한 자신들의 대답은 그렇다라는 점에 대해 아무 의심도 품지 않는다.

 

"지난 50년 동안 인간들은 인간 역사의 그 어떤 다른 비견할 만한 시기보다도 더 빠르게 그리고 더 광범위하게 세계의 생태계들을 변화시켜 버렸다. 지구는 여섯 번째 대멸종 사건에 처하고 있는데, 대륙 생태계와 해양 생태계 모두에 대해서 멸종 속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여러 중요한 온실 가스의 대기 중 농도가 실질적으로 증가했으며, 지구는 빠르게 더워지고 있다. 현재 더 많은 질소가 대륙 생태계들에서 일어나는 자연적 과정 전체를 합친 것보다 비료 생산과 화석 연료 연소에 의해 대기에서 반응성 형태들로 변환되고 있다. ....

 

"거대한 가속의 지수함수적 특성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을 지표로 사용하여 지구 체계에 찍힌 인간의 자국을 수량화한 결과에서 명백하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이산화탄소 농도는 분명히 홀로세의 상한선 이상으로 증가했었지만, 그것의 증가 속도는 1950년 무렵에 도약하기 시작했다. 인류에 의해 유발된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의 거의 4분의 3은 1950년 이후에 일어났으며(대략 310ppm에서 380ppm으로), 전체 증가의 거의 절반(48ppm)은 겨우 지난 30년 동안에 일어났다."

 

그들이 그 논문을 작성한지 7년 동안 이산화탄소 수준은 계속해서 빠르게 증가하여 2014년 4월에 400ppm을 넘어섰다.

 

무엇이 지옥행 열차를 운전하고 있는가?

 

크루첸과 스테펜은 이렇게 적고 있다.

 

"지구는 현재 전례가 없는 상태에서 작동하고 있다. 중요한 환경 인자들에 대해서 최근에 지구 체계는 최소한 지난 오십 만 년 동안 나타난 자연적 가변성의 범위를 훌쩍 벗어나 버렸다. 현재 지구 체계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의 본성, 그것들의 크기와 변화 속도는 전례가 없으며 지속될 수 없다."

 

이런 규모와 범위의 변환은 사회주의자들이 무시하거나, 또는 인간 프로그램의 한 측면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브라질의 생태사회주의자이자 대기과학자인 알렉산드르 코스타(Alexandre Costa)가 적고 있듯이, "자본주의에 의해 초래된 이 위기의 파국적 결과를 피하고자 하는 투쟁은 인류의 존엄성을 갖춘 물질적 생존 조건을 보호하고자 하는 투쟁이다. ... 초토화된 지구에서 사회주의는 가능하지 않다."

 

무엇이 지옥행 열차를 추동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거대한 가속을 논의하는 과학 논문들은 풍부한 경험적 자료를 제공하는 반면에, 전후 환경적 파괴 활동의 급증을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들에 대한 통찰은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역사가 존 R. 맥닐이 <<20세기 환경의 역사(Something New Under the Sun)>>라는 책에서 설명을 얼마간 진전시키는데, 그는 "이십 세기 환경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에너지, 기술 그리고 경제의 강하게 연결된 궤적들"을 서술하지만, 결국 그의 설명은 순환적이다. 조건이 성장에 우호적이었기 때문에 인간 활동이 성장했다. 우리는 왜 조건이 우호적이었는지, 왜 그때 팽창이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왜 그런 파괴적 형태들을 취했는지 궁금히 여길 수밖에 없다.

 

그런 생략을 개선하기 시작하려면, 소수의 좌파 과학자들―인류세와 거대한 각성에 관한 최근 논문들에서는 그들 가운데 아무도 언급되지 않았다―이 전후 환경 변화에 최초로 주목한 1960년대를 되돌아 봐야 한다.

 

레이첼 카슨과 머레이 북친

 

알게 될 것처럼, 배리 코모너는 현재 거대한 가속으로 불리고 있는 것에 대한 가장 완전한 분석을 전개했지만, 1960년대에 다른 급진적 생태주의자들도 같은 노선으로 사유하고 있었다.

 

정당하게도 환경 고전으로 존중받는, 1962년에 출판된 <<침묵의 봄(Silent Spring)>>에서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은 "죽음의 비술(elixir of death)"이라고 부른 살충제 DDT의 농업적 사용에 대해 강력하고 효과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당시에는 덜 인식되었고, 현재는 전적으로 잊혀진 것은 카슨이 DDT의 도입을 고립된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나머지 부분과 맺는 관계에 있어서 주요한 변화의 일부라고 간주했던 사실이다.

 

"20세기 들어서 오직 하나의 생물종(種), 즉 인간만이 자신이 속한 세계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위력을 획득했다.

 

지난 25년간 이 위력은 불안감을 심어줄 만큼 크게 증가했을 뿐 아니라 그 본질에도 변화가 생겼다. 환경에 대한 인간의 공격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위험하고 때로는 치명적인 유독물질로 공기·토양·하천·바다 등을 오염시킨 일이었다. ...

 

핵전쟁으로 말미암은 인류의 절명 가능성과 더불어,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 것이 바로 심각한 해악을 불러일으키는 물질들로 인한 환경오염이다."[pp. 29-30, 32]

 

카슨이 서술한 것은 새로운 종류의 전 지구적 위기였다.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인류가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 동안 위험한 화학물질과 접촉하게 되었다. 인류가 화학물질을 사용한 지 20여 년이 채 안 되는 동안 유기합성 살충제는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가리지 않고 어디에나 스며들고 있다. ...

 

합성 화학 살충제 산업의 급작스러운 부상과 놀랄 만한 확장이 문제의 원인이다. 이 산업은 제2차 세계대전의 산물이다."[pp. 39-40]

 

이것이 일어날 수 있었던 까닭은 우리가 "어떤 대가를 치르든 이윤을 올리기만 하면 별다른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 공업화 시대"[p. 38]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카슨은 적었다.

 

또한 1962년에 루이스 허버(Lewis Herber)라는 필명으로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이 저술한 <<우리의 합성 환경(Our Synthetic Environment)>>이라는 책은 화학 오염, 살충제, 복사 그리고 다른 환경 문제들이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효과를 검토했다. 그 책은 <<침묵의 봄>>보다 다섯 달 앞서 출판되었지만, 당시에는 주의를 거의 끌지 못했으며, 절판된 지 오래되었다.

 

북친 역시 자연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인류의 관계에 있어서 전환점이 전후에 일어났다고 믿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 새로운 산업혁명이 일어났으며, 도시 생활의 문제점들은 새로운 차원들을 획득했다. ... 오염물질들의 수가 증가하는 것과 동시에 건강에 좋은 공기와 풍부한 물에 대한 생태학적 전제 조건이 훼손되고 있다. 도시와 시골, 산업과 생명 환경 그리고 인구와 지역 자원 사이에 주요한 비평형이 발생하고 있다."

 

1964년의 에세이 "생태학과 혁명 사상(Ecology and Revolutionary Thought)"에서 북친은, 카슨과 마찬가지로, 그 상황을 새로운 종류의 위기로 서술했다. "오늘날 인간의 기생 생활은 한 지역의 대기, 기후, 수자원, 토양, 식물계 그리고 동물계 이상을 파괴하는데, 그것은 사실상 자연의 모든 기본적인 순환들을 어지럽히고 전 세계적 규모에서 환경 안정성의 기반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배리 코모너

 

전후 환경 위기를 매우 자세히 연구했으며, 그리고 가장 완전한 사회적 및 경제적 설명을 제시한 과학자는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 대학교에서 가르친 사회주의자이자 생태주의자였다.

 

배리 코모너는 1950년대에 핵폭탄 시험 반대 운동의 지도자로서 유명해졌다. 방사능 낙진―미합중국 정부와 군이 바로 그 존재를 부정한 치명적인 위협―의 범위와 영향에 대한 자신의 과학적 연구 덕분에 코모너는 이제 인류가 전에는 결코 가능하지 못했던 규모로 우리 세계를 오염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점을 매우 잘 인식하게 되었다. 1960년대에 자연적 체계들의 생물학 센터(Center for the Biology of Natural Systems)의 창립자로서 그는 그런 이해를 다른 종류들의 오염 연구에 적용했다.

 

1966년에 코모너는 과학자들이 현재 지구 체계라고 부르는 것과 인류의 관계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생물학자로서 나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인간의 지구 거주에 있어서 전환점에 이르게 되었다. 환경은 복잡한, 미묘하게 균형 잡힌 체계이며, 오염 물질들이 끼치는 모든 개별적 피해들의 영향을 받는 것은 바로 이 통합된 전체이다. 생명을 지지하는 지구의 얇은 표면이 그런 다양한 새로운 유력한 인자들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은 지구 역사에서 이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오염 물질들의 누적적 효과, 그것들의 상호작용과 증식이 생물권의 복잡한 얼개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결국 인간은 이 체계에 의존하는 일부이기 때문에, 나는 지구의 지속적인 오염이 견제를 받지 않는다면 결국 인간의 삶을 위한 장소로서의 지구의 적합성을 파괴할 것이라고 믿는다."

 

코모너의 1971년 책 <<원은 닫혀야 한다: 자연, 인간 그리고 기술(The Closing Circle: Nature, Man & Technology)>>은 환경 위기의 본성과 원인들에 대한 그의 가장 야심찬 해설서였다. 거대한 가속을 기록한 오늘날의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코모너는 1945년 이후 시기를 전환점으로 규정한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라에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우리의 심각한 오염 문제들 대부분이 전후 시기에 시작되었거나 그떄 이후로 대단히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코모너는 1945년 이후의 생산에 있어서 두드러진 증가를 보여주는 통계를 수집했다. 표 1은 그의 숫자들 가운데 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오늘날의 거대한 가속 저자들과는 달리, 코모너는 같은 시기에 감소한 생산에 관한 통계도 수집했다. 표 2를 보라.

 

증가와 감소 둘 다를 포함함으로써 코모너는 중요한 주장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것이 그저 성장 문제(아마도 인구 증가에 의해 추동된)일 뿐이었다면, 모든 생산물들은 증가했었을 것이다. 사실상, 1945년 이후에 생산과 오염은 인구보다 훨씬 더 빨리 증가했을 뿐 아니라, 그것들의 특성도 변해 버렸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의, 식, 주―를 위한 생산은 인구 증가의 대략 40에서 50% 정도 쫓아갔지만(즉, 일인당 생산량은 본질적으로 일정했다),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위해 생산된 재화의 종류들은 두드러지게 변해 버렸다. 새로운 생산 기술들이 낡은 기술들을 대체했다. 분말 비누는 합성 세제로 대체되었고, 자연 섬유(면과 모)는 합성 섬유로 대체되었고, 강철과 목재는 알루미늄, 플라스틱 그리고 콘크리트로 대체되었고, 철도 운송은 트럭 운송으로 대체되었으며, 반환할 수 있는 병은 반환할 수 없는 병으로 대체되었다. 길 위에서는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저출력 자동차 엔진이 고출력 엔진으로 대체되었다. 농장에서 일인당 생산량은 거의 일정하게 유지되었지만, 수확지의 크기는 감소되었는데, 사실상 비료가 토지를 대체했다. 오래된 해충 관리 방법은 DDT 같은 합성 살충제로 대체되었으며, 잡초 관리를 위해 경작기는 제조체 스프레이로 대체되었다. 가축의 농장 방목은 사육장으로 대체되었다."

 

그 결과, 현대의 환경 위기는 그저 과거보다 큰 것이 아니었는데, 그것은 질적으로 다르고 더 나쁜 위기였다.

 

"최근에 미합중국을 삼켜 버린 환경 위기에 대한 주요한 원인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생산 기술의 전면적인 변환이다. ... 환경에 격심한 영향을 끼치는 생산 기술들이 덜 파괴적인 것들을 대체했다. 환경 위기는 이런 반생태적 성장 패턴의 불가피한 결과이다."

 

특히 코모너는, 자연이 재활용할 수 없는 동시에 생산과 수송에 사용되는 에너지 양의 가대한 팽창을 자극한 생산물과 폐기물을 만들어내는 석유 산업, 석유화학 산업 그리고 관련 산업들의 두드러진 팽창을 지적했다. 저에너지 제작 공정은 고에너지 공정으로 대체되었고, 자연적 생산물은 원료와 에너지원으로서 석유를 필요로 하는 합성적 생산물로 대체되었다.

 

생산 기술의 변화에 주목하면, 그 당시에 왜 거대한 가속이 시작되었는지 이해하기 쉽다. 코모너가 지적했듯이, 전쟁이 일어나기 전 수십 년 동안 기초 과학, 특히 물리학과 화학에서 혁명적인 진보가 이루어졌다. 전쟁 시기 동안 새로운 과학의 대부분은 군사적 목적을 위해 차용되었고, 종전 후에는 산업적 및 농업적 생산으로 빠르게 전용되었다. "그러므로 제2차 세계대전 시기는 그것에 선행하는 과학 혁명과 그것에 이어지는 기술 혁명 사이의 거대한 분계선이다." 대공황과 전쟁 시기 동안 발생한 생산 능력의 대규모 파괴는 1945년 이후에 전쟁 모리배들이 신기술을 사용하여 산엽을 재건하는 데 그들의 부당 이득을 투자할 기회를 창출했다. 그 과정은, 석탄과 자연 재료에서 석유와 합성 재료로의 전환을 투자자들에게 특히 매력적인 것으로 만든 1948년 이후 사우디 아라비아로부터 저렴한 석유의 대량 공급으로 촉진되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인민과 행성의 건강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경제적 체계이다. "사기업은 환경 오염의 심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일련의 새로운 생산 계획에 자본을 우선적으로 투자하기로 선택했다." 기업들이 이렇게 하는 까닭은 그것들이 오염에 대한 도착적인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신기술에 기반을 둔 생산이 그것이 대체한 구기술에 기반을 둔 생산보다 수익성이 더 좋"기 때문이다.

 

"오염과 이윤 사이의 중대한 연결이 현대 기술인 듯 보이는데, 그것은 최근의 생산성 증가―그러므로 이윤―와 환경에 대한 공격의 주요한 원천이다.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고유한 경향에 의해 추동되는 현대의 사기업은 이런 욕구를 충족시킬 가망이 있는 대규모의 기술 혁신을 포착했다."

 

코모너는 환경에 특히 압력을 가하는 실천들과 높은 수익률과 사이의 관련성을 기록하는 데 <<원은 닫혀야 한다>>의 한 장을 할애하는데, 그는 "근본적으로 사회적 거래가 아니라 사적 거래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경제적 체계는 이런 필수적인 사회적 재화[생태권(ecosphere)]를 관리하는 데 더 이상 적절하지 않으며 점점 더 무능해지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원은 닫혀야 한다>>가 출판된지 20년 후에 코모너는 <<지구와 평화롭게 지내기(Making Peace with the Planet)>>이라는 속편을 저술했는데, 그 책은 "반생태적 성장 유형"에 대한 그의 설명을 갱신하였으며, 이십 년 동안의 환경 활동이 왜 실패했었는지 검토한다. 그는 여전히 낙관주의적이지만, 환경주의자들이 계속해서 " 증상만을 다루고 문제의 뿌리를 공격하는 대신에 임시방편을 적용한"다면 "공격받고 있는 생태권은 현재의 충격을 견딜 수 없고, 그래서 결국 전 지구적 파국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그는 크루첸의 인류세 주장의 핵심적인 부분을 예상했다.

 

"우리의 두 세계, 즉 공기, 물 그리고 토양의 전 지구적 얇은 피부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식물과 동물로 이루어진 자연적 생태권과 인공적 기술권 사이의 상호작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기술권은 생태권을 관장하는 자연적 과정들을 변화시킬 만큼 충분히 거대하고 강력해졌다."

 

나는 코모너의 설명이 비판받을 수 없거나 완전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예를 들면, 기술, 인구 그리고 소비자의 풍요에 미치는 비교 환경 영향을  계산하기 위해 그는 그런 계산에 결코 작동하지 않는 I=PAT라는 공식(영향은 인구 곱하기 풍요 곱하기 기술이다)을 사용했다. 더 심각하게도, 그는 1945년에서 1973년까지의 장기적인 경제적 활황를 가능하게 한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추세에 관해 거의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가 서술하는 기술 혁명의 산물이자 원인이었다. 거대한 가속에 대한 완전한 역사적, 경제적 그리고 생태적 설명이 여전히 부족하다.

 

그런데 그런 설명을 작성한다면, 코모너의 세 가지 핵심 주장에서 반드시 시작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지배적인 생산 기술의 질적인 변화가 있었다. 그 결과, 오염과 환경 파괴가 증가했을 뿐 아니라 특성도 바뀌었다. 그리고 그런 변화가 일어난 까닭은 신기술의 사용이 기업의 부와 이윤을 증가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그 설명은 코모너가 1976년에 진술한 결론과 일치할 것이다. "무언가가 잘못되었고, 그래서 나는 해결책은 인간적 필요, 사회적 필요 그리고 물론 사회주의의 지배를 받는 체계로 경제적 체계의 자본주의적 조직을 대체하는 것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주의자와 과학자들

 

안드로포스(anthropos)―인류―를 따서 시대를 명명하자는 크루첸의 제안은 전 지구적 환경 위기가 생물권을 변화시키고 있는 결정들을 실제로 내리고 강요하는 1%의 인간들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에 의해 초래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결국 이것은 신맬서스주의적 결론―자연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인구를 줄이는 것이다―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상 많은 과학자들이 인구 증가를 거대한 가속의 주요한 추동자로 규정한다.

 

스웨덴 생태학자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과 알프 호른보그(Alf Hornborg)처럼 "화석 연료 경제는 인류 일반에 의해 창출되지도 않았고 유지되지도 않았다"는 점을 환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증기에 이어지는 일련의 에너지 기술들―전기, 내연 기관, 석유 복합체, 즉 자동차, 유조선, 비행기―은 모두 때때로 어떤 정부들로부터의 중요한 입력이 주어지지만 민주주의적 숙려를 거의 거치지 않은 투자 결정을 통해서 도입되었다. 지금까지 새로운 순환을 부추기는 특권은 상품 생산을 지배하는 계급에 유보되어 있던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추동력이 종 전체의 특질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가리키기 위해" 기후 변화는 인류유발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유발적인 것으로 명시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나는 정치적으로 더 정확한 명칭에 대한 바람에 공감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런 결정을 내리는 과학 기구들과 사회 전체에서 소수자이고, 그래서 그런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선호가 널리 퍼질 가능성은 매우 작다.

 

생태사회주의자들이 할 수 있는 것―해야 하는 것―은 환경과학자들과의 모든 대화 기회를 활용하는 것이다. 디페쉬 차크라바티(Dipesh Chakrabarty)가 말하듯이, 제한된 사회적 분석과 대중주의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본성과 범위를 대중화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적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반드시 반자본주의적 학자인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명백히 평소의 자본주의도 지지하지 않는다." 거대한 가속에 의해 제기된 위협을 이해하는 과학자들은 재앙을 향한 자본주의의 추동 속도를 감속하는 운동의 중요한 동지들이다.

 

이런 과학자들 대부분은 배리 코모너의 작업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그것은 이십 세기 말 주류 환경주의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 소멸을 반영하는 무지이다. 코모너는 녹색 정치를 지배한 엷은 녹색 NGO들에게 정말 너무나 급진적이었다. 코모너는 과학자이자 활동가로서 계속해서 중요한 기여를 했지만, 현재 그의 모든 저작들은 절판 상태이며,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의 작업의 명백한 적실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찾아낸 인류세 또는 거대한 가속에 관한 그 어떤 논문에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과학자들과의 대화와 공동 행동을 확립하는 것의 중요한 부분은 코모너의 주저들을 다시 널리 입수할 수 있게 만드는 것과 환경 파괴의 사회적 원인들에 관한 가장 통찰력 있는 이론가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의 명성을 재확립하는 것이어야 한다. 과학자들이 환경적 정의와 사회적 정의을 위한 구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한 훌륭한 모범으로서 그는 21세기에 그런 대의에 대해 계속해서 소중한 기여를 할 수 있다. 환경적 위기에 대해 걱정하는 모든 사람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 선구적인 생태주의자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지구가 오염된 까닭은 인간이 어떤 종류의 특별히 더러운 동물이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인간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잘못은 인간 사회―인간 노동에 의해 지구 자원으로부터 추출된 부를 획득하고, 분배하며, 사용하도록 사회가 선택한 방식들―에 있다. 일단 위기의 사회적 근원들이 분명해지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사회적 행동을 고안하기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