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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릭 스콜리모우스키: 오늘의 에세이-생태적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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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7.

 

생태적 철학

Ecological Philosophy

 

―― 헨릭 스콜리모우스키(Henryk Skolimowski)

 

각 철학의 그 시대의 딸이다. 각 철학은 자체의 문제와 고민뿐 아니라 그 시대의 에토스에 의해 형성된다. 새로운 시대는 일반적으로 자체의 약동을 표현하기 위해 나름의 철학을 생성한다. 그리고 그것은 20세기의 다양한 철학의 경우에도 그러했다.

 

우리 시대에는 우리 문명의 해체적 경향들을 표현하는 철학인 탈근대주의(post-modernism)가 출현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문명의 통합적이고 긍정적인 경향들을 표현하는 생태적 철학이 출현했다. 탈근대주의는, 기계론적 세계관과 물질주의에 기반을 둔 문명의 낡은 토대가 더 이상 적절하지 않으며, 사실상 완전히 망가져서 회복될 수 없다는 점을 확신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탈근대주의는 모든 것을 해체하자고 제안한다.

 

생태적 철학은 문명의 낡은 토대가 무너져 버렸다고 확신하지만, 새로운 토대와 새로운 전망 위에 새로운 문명을 건설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므로 생태철학(eco-philosophy)은 긍정적인 모험이다. 그것은 건설이지 해체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망한 것이 아니라 당황하고 있을 뿐이라는 확신,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새로이 건설할 수 있다는 확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생태적 철학은 격동의 1970년대에 생태적 위기에 대한 점점 심화되는 지각에 대응하여 생성되었다. 이런 새로운 위기(역사상 전례가 없는)가 기술적 또는 환경적 위기일 뿐 아니라 우리의 가장 깊은 믿음들―예를 들면, 신이 인간에 도움이 되도록 세계를 창조했다는 믿음과 이 세계는 인간의 편익을 위해 착취당할 수 있다는 믿음―의 토대를 흔드는 철학적, 도덕적 그리고 신학적 위기이기도 하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에 생태철학이 탄생했다. 1980년대에 생태적 철학은 최소한 다섯 개의 개별적 학파로 나타났다.

 

1. 머레이 북친(Murray Bookcjin)이 구상한 사회생태학(social ecology). 특히 <<생태적 사회를 향하여(Toward an Ecological Society)>>(1980)를 보라.

 

2. 헨릭 스콜리모우스키에 의해 고안된 새로운 삶의 기술을 구상하며, 그리고 1981년에 같은 제목의 책으로 출판된 생태철학. 증보판은 <<생활 철학: 생명의 나무로서의 생태철학(Living Philosophy: Eco-philosophy as a Tree of Life)>>(1992)이다.

 

3. 아르네 네스(Arne Naess)와 캘리포니아 학파가 구상한 심층생태학(deep ecology). 특히 B. 데발(B. Devall)과 G. 세션즈(G. Sessions)의 <<심층생태학: 자연이 중요한 것처럼 살아가기(Deep Ecology: Living as if Nature Mattered)>>(1985)를 보라.

 

4. 토머스 베리(Thomas Berry)에 의해 고안된 지구의 생태학(ecology of the Earth). 특히 <<지구의 꿈(The Dream of the Earth)>>(1990)을 보라.

 

5. 다양한 저자들에 의해 표현된 생태페미니즘(eco-feminism). 특히 카렌 J. 워렌(Karen J. Warren)이 편집한 <<생태페미니즘: 여성, 문화, 자연(Ecofeminism: Women, Culture, Nature)>>(1997)을 보라.

 

생태철학의 심원한 깨달음 가운데 하나는 세계가 신성한 거주지라는 것이다. 그것으로부터 즉각적으로 도출되는 결과는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 있는 양치기들이라는 것이다. 모든 종과의 연대라는 새로운 윤리가 그 다음 결과이다. 이 새로운 윤리는 우주에서 인간의 특권적 지위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인류중심적 윤리가 아니라, 모든 진화에 대한 우리의 돌봄과 책임에 기반을 두고 있는 생태중심적 윤리이다. 후속 결과들은 이렇다. 우리의 검약한 생활방식과 미래 세대들―현재 자신들의 운명을 무자비하게 강탈당하고 있는―에 대한 책임.

 

그런데 생태철학의 다른 한 결과는, 그것이 새로운 물리학의 창조적 약동과 동맹을 맺어서 우리가 참여적 우주에서 살아가고, 그래서 세계와 신과 함께 창조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신은 진화하는 존재자로 간주되며 우리는 그것의 진화의 일부이다. 이것은 우리가 자유, 창조 그리고 참여의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태적 철학의 다양한 학파들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은 그것들의 강조점이다.

 

1. 심층생태학은 급진적 반인류중심주의와 급진적 평등주의를 강조한다.

 

2. 생태철학은 인간과 우주의 참여적(그래서 함께 창조하는) 본성과 신성한 거주지로서의 세계라는 관념을 강조한다.

 

3. 지구의 생태학은 종의 층위에서 그리고 새로운 우주 이야기(New Story of the Universe)의 글쓰기에서 인간을 재발명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4. 생태페미니즘은 역사 형성에 있어서 남성의 지배적인 역할에 대한 이해를 비롯하여 지난 6000년의 역사 전체를 재구상하고 재서술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5. 사회생태학은 사회, 사유 그리고 사회적 세계의 본성를 결정하는 것으로서의 사회적 맥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다섯 학파들을 통일하는 것이 그것들을 가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확신이다.

 

1. 현대 서양 문명은 힘과 전망을 소진해 버렸고, 그래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

 

2. 현대 서양 문명은 자연과 다른 존재자들(인간을 비롯한)을 파괴해 버렸는데, 그것이 우주의 본성을 읽어내는 데 결함이 있는 코드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3. 현대 서양 문명은 인간 현상을 쇠퇴시켜 버렸으며, 그리고 우리의 생활방식들의 품위를 떨어뜨려 그것들을 사소하고 흔히 공격적인 과정으로 만들어 버렸다.

 

무엇보다도 생태적 철학의 다양한 학파들을 통일하는 것은 터널의 끝에는 빛이 존재하고, 철학은 죽지 않았고, 인류는 끝나지 않았으며, 그리고 21세기에 우리는 의미 있고 온전한 미래를 건설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특히 생태철학은, 희망은 영원한 원동력―우리 삶의 정신적 산소―이고, 아름다움은 우리의 삶, 온전한 정신, 고결함에 필수적이고, 창의성은 우리의 고유한 본성의 일부이며, 그리고 창조적 초월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대실패를 극복하여 세계와 그 속에서의 우리 삶을 광휘와 자기 실현으로 이끌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것이 세계의 운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