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레비 브라이언트: 오늘의 인용-이론의 생태들: 글의 과잉적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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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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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론은 그것이 표명되는 역사적 상황, 사회적 체계, 제도 등뿐 아니라 그것이 대응하고 관여하는 논쟁, 이론적 틀 그리고 개념들의 어떤 생태 안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이론은 항상 그것을 출현하게 하는 일단의 관계들에 묻어 들어가 있지만, 이론적 기계는 또한 그것을 초래하는 모든 관계들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특이한 종류의 기계이다. 이것이 하나의 물질적 기계, 일종의 객체로서의 의 역능이다. 글은 기억을 돕는 기계로서 작동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기묘한 종류의 기억 기계이다. 글은 자체의 기록 기원을 망각하는 기계, 또는 더 신중하게 표현하면, 기원을 망각할 수 있는 역능을 항상 품고 있는 기계인데, 그래서 글은 기록의 맥락과 환경을 지워버릴 수 있다. 입에서 발화되어 대화 환경에 묻어 들어가 있는 소리―기록 기술로 인해 이런 상황이 점점 더 변하고 있지만―와 달리, 글은 항상 그것의 기록 현장을 망각할 수 있는 역능을 품고 있다. 물론 글은 이론의 물질적 기체(基體)이다.

 

그러므로 글은 사회적 생태들 안팎에서 떠돌며 항상 그것이 생산된 현장에서 단절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은 내가 [...] "불량 객체(rogue object)"라고 부른 것의 일례이다. 어느 특수한 태양계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은하들을 두루 떠도는 불량 행성과 마찬가지로 글은 한 조립체에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은 채 다양한 사회적 조립체들을 두루 떠돈다. 오늘날 우리는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을 수 있고 그런 독서는 우리 내면에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그 효과는 이 텍스트가 기록된 현장에서 만들어내었던 효과와는 확실히 다를 것이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모든 글에는 결코 길들이거나 통제할 수 없는 계산 불가능한 것이 존재하는데, 글은 끊임없이 상이한 생태들에  편입되어 결코 예상되지 않은 방식들로 그런 생태들에 공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코엔 형제의 손에서 <<일리아스>>는 미합중국 남부에 대한 논평이 된다. 스피노자의 <<에티카>와 <<신학정치론>>은 마르크스주의 비평과 여성주의 비평의 도구들이 된다.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라는 영화 속 동명의 행성과 마찬가지로 불량 객체로서의 글은 세계의 파괴자가 될 수 있는 역능을 품고 있다. <<사해 문서>>처럼 어떤 글은 동면 상태, 식물 상태에 놓여 있다가 다시 한 번 갑자기 세계에 출현하여 예상할 수 없었던 계산 불가능한 우발적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글은 낯선 생태계에 편입되어 모든 종류의 뜻밖의 방식으로 그 생태를 변환시키는 큰두꺼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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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