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존 윌킨스: 오늘의 에세이-정보는 신아리스토텔레스주의이다(그리고 도킨스는 질료형상주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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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7.

 

정보는 신아리스토텔레스주의이다(그리고 도킨스는 질료형상주의자이다)

Information is the new Aristotelianism (and Dawkins is a hylomorphist)

 

―― 존 윌킨스(John Wilkins)

 

지금까지 얼마 동안 나는 정보라는 관념과 관련된 문제들을 생각했다. 이런저런 정보 조각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정보라는 관념 자체, 특히 자연과학에서 나타나는 그 관념 자체와 관련된 것이라는 점을 유의하자. 현재 컴퓨터와 인터넷의 시대에 우리는 서술되는 사물을 사물 자체로 오인하고, 그래서 정보를 우리 머리와 언어 속의 표상이 아니라 세계의 저쪽에 존재하는 특성으로 취급하게 되었다.

 

장면을 설정하자. 도킨스가 생물학에 관한 글을 적었을 때 그는 유전자가 복제자(Replicator)라고 부른 것의 특수한 사례라는 생각을 제시했다.

 

"복제자는 사본들을 구성하는 우주 속 존재자로 규정될 수 있다."

 

"복사한다"라는 낱말을 유의하자.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물을 복사할 수 있지만, 도킨스는 한 특수한 의미를 염두에 두고 있는데, 그것은 <<눈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에 실린 특별히 화려한 산문에서 탐색되었다.

 

"밖에 DNA의 비가 내리고 있다. ... [버드나무로부터 흩뿌려지고 있는 종모] 그 솜은 대게 섬유소(셀룰로오스)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솜은 DNA, 즉 유전 정보를 담은 작은 캡슐을 떠받치고 있다. DNA의 양은 작은 부분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왜 섬유소의 비가 아닌 DNA의 비가 내린다고 했을까?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DNA이기 때문이다... 버드나무를 만들[...] 특별한 정보를 담고 있는 DNA... 바깥에 정보의 비가 내리고 있다. 프로그램의 비, 나무를 자라게 한 후 종모를 퍼뜨리는 지시문의 비가 내리고 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정확한 사실이다. 플로피 디스크의 비가 내리고 있다고 말한다면 거짓이겠지만 말이다."(5장, pp. 191-2)

 

DNA, 그리고 DNA를 특수한 사례로 갖는 복제자는 정보이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물리학자들은 물리적 사물들에 관하여 같은 주장을 제기할 것이다. "물리적 세계는 수학적 구성물일 뿐이고, 그래서 전자 같은 사물들은 수학적 특성들을 지닐 뿐이다." MIT의 물리학자 맥스 테그마크(Max Tegmark)는 말한다.

 

"... 전자가 지니고 있는 모든 특성들은 순전히 수학적이다. 그것은 숫자들의 목록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자는 순전히 수학적인 객체이다. 사실상 지금 당장 우리 우주에서 수학적이지 않는 어떤 것이 도대체 존재한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우리는 "정보(bit)"로부터 "사물(it)"을 얻게 된다. 몇몇 짖궂은 철학자들은 심지어 우리가 사실상 매트릭스 속에서 살고 있다고 넌지시 주장했는데, 그 매트릭스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불명확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는 왜 불만스러운가? 이것은 틀렸는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것에 이르기 위해서 나는 그리스인들,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비롯된 자연철학의 일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플라톤이 실재적 세계는 형상 또는 관념들(그가 사용한 그리스어 낱말은 에이도스라는 어근에서 파생된 이데아인데, 그 낱말은 외양, 즉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의 세계라고 제시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형상은 여러분이 주변에서 보는 것보다 더 실재적이었다. 물리적 원은 기껏해야 물리적 형태로는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실재적 원의 불완전한 예화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 속 물리적 사물들은 공간을 채우고 무게를 부여하는(두 개는 가볍고 두개는 무거운 네 원소의 다양한 혼합물로 만들어진) 질료, 즉 스콜라 철학자들이 실체(아래에 놓여 있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부른 것과 형상, 즉 사물의 구조와 수학적 특성들을 갖추고 있다고 가정함으로써 그것들을 설명했다. 이런 질료/형상 이원론은 질료형상론(hylomorphism)이라고 하는데, 이 낱말은 두 개의 그리스어 낱말, 즉 재료를 의미하는 힐레(hyle, 원래 "나무"를 의미했다)와 형상을 의미하는 모르페(morphe)에서 비롯되었다. 질료형상론은 당대에 널리 수용되는(그리고 일반적으로 무신론적인) 견해가 되었었던 원자론적 유물론에 대한 대안적 견해로 의도된 것이었다. 에피쿠로스는 더 오래된 데모크리스토스의 원자론에 기반을 둔 온전한 철학 학파를 형성했다.

 

그런데 십구 세기에 돌턴(Dalton)의 원소들이 명명되고 탐구되었을 때 질료형상론은 과학적 가설로서 대체로 폐기되었다. 1900년에 이르러, "실체"(질량과 공간에서의 연장 외에는 아무 특성도 없는 질료에 대한)와 "형상" 같은 술어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의 견해와는 대단히 다른 대체로 철학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었다. 그 대신에, 에피쿠로스나 데모크리토스가 상정했었던 것을 훨씬 더 넘어서 점점 더 정교해진 원자론이 승리를 거두었었다. 질량과 공간 차지하기를 비롯한 사물들의 특성들은 시공간 속 장들의 결과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과학에서는 일종의 질료형상론이 남아 있었다. 생물학자들은 형상이 유기체들의 많은 특성을 부분들로 환원될 수 없는 방식들로 결정한다고 주장했으며, 그리고 이런 종류의 사유는 1950년대의 분자생물학자와 유전학자들에 의해 흡수되었는데, 특히 대략 그떄 이후로 컴퓨터가 출현하기 시작했고 정보가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그것은 그 시기에 그다지 많이 앞서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유전학의 "중심 신조(Central Dogma)"를 얻게 된다.

 

"분자생물학의 중심 신조는 정보열의 상세한 잔기간(residue-by-residue) 전달에 관련된 것이다. 그것은 그런 정보는 단백질에서 단백질 또는 핵산으로 역방향으로 전달될 수 없다고 진술한다."

 

물리적으로 읽으면, 이것은 DNA 분자의 구조는 단백질의 구조에서 재현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할 뿐인데, 이것은 분자적 과정들에 대한 완벽하게 합당한 설명이다. 그러나 크릭이 "정보"라는 낱말을 사용했기 때문에 도킨스를 비롯한 몇몇 과학자들은 이것이 유전자들은 분자적 층위에서 유기체 전체, 그리고 심지어 그것을 넘어서까지 유기체적 특질들의 "정보를 지정하는" 정보적 존재자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간주했다.

 

마찬가지로, 물리적 세계는 "그저" 정보일 뿐이라고 말하는 테그마크, 휠러 등과 같은 물리학자들의 말은 세계 속에 물리적 구조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은 무해하다.

 

그런데 이것은 "정보"가 일반적으로 해석되는 방식이 아니다. 그 대신에, 정보 자체가 모든 물리적 사물 아래에 놓여 있는 일종의 보편적 특성이라는 관념을 얻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르페에 대한 현대적 등가물인 정보는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힐레에 대한 등가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의견을 달리하는 지점이다.

 

과학자들이 무언가의 정보량 또는 정보 엔트로피에 관해 말할 때 그들은 다양한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들은 어떤 과정에 대한 수학적 서술처럼 그 사물을 측정하거나 서술하는 데 사용되는 문자들의 열 또는 DNA의 G, T, A, C 같은 기호들의 열의 엔트로피를 의미할 수 있다. 그런데 DNA는 G, T, A, C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것은 그런 기호들로 명명된 분자, 뉴클레오타이드(nucleotide)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리고 그것들은 이런 이름들에 대한 수학적 서술이나 의미론적 서술들을 이따금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특성들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5'-CG-3' 디뉴클레오타이드 위치들에서 짝을 이룰 수 있는 5-메틸데옥시티딘(5-mC), 즉 "제5 뉴클레오타이드"가 존재한다. 5-mC는 메틸화된 분자로서 DNA의 표현을 수정하는 화학물질들의 집합이다. 그러므로 어떤 열의 정보 엔트로피(또는 정보량)는 DNA가 표상되는 방식의 척도일 뿐이다. 5-mC는 심지어 중심 신조를 뒤집을 수 있다.

 

여기서 요점은 표상은 분자들의 물리적 특성들에서 추출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정보 엔트로피에 대한 측정은 사실상 사물들 자체가 아니라 추상적 표상들에 대한 측정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쿼크의 층위까지 사물들에 대한 시뮬레이션 또는 표상이 있다고 가정하자(그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하다면). 객체들의 정보 엔트로피는 물리적 특성들과 동일할 것인가? 우리는 객체들에 대한 물리적 정보 엔트로피를 가질 것인가? 나는 그 점을 다시 살펴볼 것이다. 먼저 나는 과학에서 나타나는 "정보"의 나머지 다른 의미들 가운데 몇 가지를 살펴보고 싶다.

 

다른 한 의미는 의미론적 의미인데, 한 사물(예를 들면, 유전자)이 표상하는 것(예를 들면, 표현형)이다. 이것은 "신호로서의 정보"라는 견해인데, 이것은 섀넌의 통신 이론 해설에 느슨하게 또는 엄밀하게 근거를 두고 있다. 한 사물은 다른 한 사물을 "가리킨다"(섀넌의 이론에서 수신되는 메시지는 송신된 메시지를 "가리킨다"). 섀넌이 지적했듯이, 이것은 신호의 내용에 관한 이론이 아니다. 결국, 유전자 서열은 표현형을 서술함으로써 그것을 표상하지는 않는다. 비슷한 한 견해는 제어로서의 정보라는 위너의 관념, 즉 사이버네틱적 설명이다. 이런 종류들의 정보가 위에서 언급한 물리학자들의 견해의 근본을 이룬다고 간주하기는 매우 어렵다. 여기서 특성은 정보적인 것, 또는 그들이 서술하는 대로 수학적인 것일 뿐이다.

 

세 번째 종류의 정보는 측정에 대한 정보, 또는 오히려 측정의 정확도이다. 이것은 주창자의 이름을 따서 "피셔 정보(Fisher information)"라고 불린다. 그것은 대충 측정 곡선 위에서 이차 미분이 영이 되거나, 또는 오류 곡선이 평평한 점이다. 이것은 우리가 얼마나 잘 그리고 엄밀하게 물리적 체계를 측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척도이기 때문에 그것은  물리적 정보에도 생물학적 정보에도 적용할 수 없다. 역설적으로, 내 생각에는 그것이 정보에 대한 유일한 실제적인 물리적 의미인데, 그것은 측정될 물리적 상태와 측정을 행할 물리적 체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주는 정보일 뿐이라는 물리학자들의 주장으로 되돌아가자. 이전에 나는, 전자가 수학적 특성들을 지니고 있더라도 이것이 전자는 수학적 객체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나의 비유가 이것을 분명하게 만들 것이다. 내가 내 컴퓨터를 하나의 태양계 모형, 즉 태양계에 대한 시뮬레이션으로 프로그램한다고 가정하자. 내가 이것을 행하면, 컴퓨터는 질량과 물리 상수들을 숫자로 나타내고, 물리학의 수학적 방정식들에 따라 그것들을 처리한다. 그런데 내 컴퓨터 속의 태양계는 실제 태양계의 질량을 갖지 않고 있다(나와 지구의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운이 좋게도). 그 대신에 그것은 추상적 질량을 가지며, 추상적 태양과 행성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들도 추상적이다. 태양계 같은 체계에 대한 수학적 서술은 추상적이다. 머리, 종이 또는 컴퓨터 같은 물리적 객체들 속의 그런 서술 사례들과는 별개로 그것은 시공간적으로 어느 곳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추상적 특성들은 물리적 세계에서 아무것도 초래하지 않는다.

 

게다가 추상물들은 틀림없이 무언가를 빠뜨리게 된다. 유전자 A, C, G, T가 그 기호들이 행할 수 없는 일들을 이따금 행할 수 있는 아데닌, 시토신, 구아닌 그리고 티민의 실제 물리적 특성들을 빠뜨리게 되듯이, 사물에 대한 가장 구체적이고 상세한 표상조차도 표상함에 있어서 우리가 무관심한 특성과 역량들을 빠뜨리게 될 것이고, 그래서 때때로 표상은 실제 사물과 어긋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우주의 근본적 객체들(양자 장들)을 가지고 있더라도, 체계 전체를 다룰 수 있는 컴퓨터를 먼저 제작하지 못한다면 그 체계를 계산할 수 없을 것인데, 우주의 경우에 그것은 컴퓨터로서의 우주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물리학자나 철학자들이 우리는 매트릭스에서 살고 있다고 말할 때, 또는 마찬가지로 원자적 객체와 아원자적 객체들의 특성들은 수학적일 뿐이라는 진술들을 제시할 때, 그들은 고전적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데, 그들은 어떤 사물에 대한 표상을 바로 그 사물로 오인하고 있다. 롬바르두스 같은 중세 후기 스콜라 철학자들은 이런 오류를 알고 있었으며 소쉬르보다 더 오래 전에 이렇게 말했는데, 기호는 표상되는 사물이 아니다. 낱말은 세계가 아니다. 우리가 매트릭스에서 살고 있다면, 매트릭스는 어디에서 살고 있는가? 우리는 그것 자체가 물리적이지 않는 정보 처리 체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이것은 신질료형상론(New Hylomorphism)이다. Antievolution.org의 논평가가 말했듯이, 정보는 [...] 지적 설계 옹호자들에 의해 일종의 칼로릭 또는 플로지스톤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그것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결코 아무것도 초래하지 않는다. 추상물은 물리적 과정을 초래할 수 없고, 그래서 달리 생각하는 것은 범주 오류인데, 불행하게도 이런 오류는 지적 설계자들뿐 아니라 이론가들 사이에서도 흔하다.

 

유전학에서 "정보"라는 관념은 명예적 관념이다. 그것은 "실재적" 정보를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인과적 특정성을 의미할 뿐이다[이것에 관해서는 그리피스(Griffiths)와 스토츠(Stotz)의 <<유전학과 철학(Genetics and Philosophy)>>를 보라]. 그리고 실재적 세계에 대한 질료형상적 견해들을 채택할 진정한 이유가 더 이상 없기 때문에(원자론 또는 그것의 직계 후예들이 승리했다) 몇몇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왜 정보로서의 형상을 재도입할 필요가 있는지 의심해야 한다. 복제자는 정보적 객체가 아니라, 분자들이고 분자들의 체계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하나의 물리적 존재자(또는 존재자들의 집합)인 "재생산자(reproducer)"라는 관념을 많이 선호한다.

 

과학에서 이런 오류를 저지르는 것을 그만둘 때이다. 낡은 것이든 새로운 것이든, 질료형상론을 폐기할 때이다. 결국 이런 비유들(그리고 그것들은 정말 비유들이다)은 우리를 오도할 뿐이다. 나는 그것이 내게서 비롯되는 정보에 관해서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너무 많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