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에른스트 푀벨/베이트리체 바그너: 오늘의 인용-관점 바꾸기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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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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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을 변화시키기 특히 어려운 분야가 바로 정치와 과학 쪽이다. 가령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인은 정당의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인다. [...] 정치인 개인의 입장에서 볼때 정당의 고정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고 당과 프로그램의 요구대로만 행동하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마음을 침탈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정당 프로그램 안에서도 개인적 사고를 위한 공간은 필요하다고 본다. [...] 따라서 정치인이라면 프로그램에 따라 정해진 대로만 행동할 것이 아니라 자기 양심에 따라 여러 세부상항에 다른 방식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 자기 의견을 밝히지 않는 정치인들은 꼭두각시이며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며 특정 상황에서는 실수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관점의 변화가 요구되는 또 다른 영역은 불행히도 학술 연구 분야다. 어쩌면 과학적 질문의 복잡성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정신 영역은 분명 그 발전 속도가 매우 느리기 때문이다. 학술 분야에서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자기 연구가 지향하는 개념의 기반이 되는 특정한 패러다임이나 학파 혹은 사고의 계보를 중시한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다른 연구자나 다른 이론에 속하는 개념들은 종종 무시당하는 경우가 생긴다. 따라서 자신의 사고를 발전시키려다 보면 다른 수많은 사고가 발전할 기회를 막게 되는것이다. [...]

 

학문의 진정한 진보는 패러다임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치에 맞고 선구자적인 혁신적 학문조차 늘 환영받지는 못한다. 종종 일탈자는 자신이 몸담은 연구 조직으로부터 추방당하기도 한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대부분 언제나 개인 혹은 집단에게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기반이 되어온 기존 가설이 무너지면 현재 진행 중인 연구 작업도 같이 무너지고 이로 인해 연구비와 연구직도 잃게 된다.

[...]

자발적 어리석음에서 탈출하는 것은 알다시피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시간 고착된 사고의 패턴과 도그마와 형식에 의문을 품고 이를 극복하겠다는 것 자체가 개인 정체성의 경계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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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른스트 푀벨, 베아트리체 바그너, <<노력중독: 인간의 모든 어리석음에 관한 고찰>>(이덕임 옮김, 율리시즈, 2014), pp. 1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