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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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폴 스미스: 오늘의 인용-미합중국에 대한 교육 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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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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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받는 것은 힘들다. 때때로 나는 그것을 망각한다. 현재 나는 "알고 있어야 하는 주체"를 구현해야 하는 교육자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메리 댈리(Mary Daly)를 처음 만났던 당시에 내가 가부장제처럼 사악한 것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울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기는 쉽다. 그런 계시는 그녀의 성전환자 혐오증에 의해 축소되지 않았고 축소되지도 않는다. 사실상 그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인데, 상황의 순수성 또는 올바른 상태의 바로 그 불가능성을 내게 납득시킨다. 그리고 내가 철학의 백인성(whiteness)에서 빠져 나와서 추상화와 보편주의에 대한 모든 철학적 신념들을 바로 사유를 고통의 조건 아래 두지 않으려고 하는 한 형태로서 의심해야 했던 거친 착륙을 망각하기는 쉽다.

 

오늘이 교육을 받는 또 하나의 하루일 것이다. 12명의 대배심원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아무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세인트루이스의 인구 분포와 특히 퍼거슨의 인구 분포에 따라 전적으로 불균형하게도, 그들 가운데 9명이 백인이고 3명이 흑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 그것은 나의 일반적인 비관주의[...]일 것이지만, 나는 윌슨(Wilson)이 결코 기소되지 않거나 또는 그가 확실히 저지른 범죄보다 더 약한 범죄로 기소될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언제 일어나는지 알 것이다. 나는 미합중국이 여전히 항상 그러했던 나라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것의 바로 그 현존이 흑인 인민들의 파괴에 근거를 두고 있는 나라. 그들의 노예화, 그들의 식민지화, 그들의 감시, 그들의 비인간화에 근거를 두고 있는 나라. 경제적으로 백인들의 부는 흑인들의 파괴된 육체와 정신 위에 세워졌다. 문화적으로 백인들은, 음악 세계에서 스포츠와 영화까지 뻗어 있고 배경에서는 대체로 백인 제작자와 작가들에 의해 추동되는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의 지속적인 체계에 의존한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백인들은 미합중국 역사를 정직하게 검토하는 행위조차 지속적으로 거부하는 것에 의존하며, 지속되는 색맹의 인종차별주의 체계에 대한 현재 주민들의 유죄성을 검토하기를 훨씬 더 격렬하게 거부한다.

 

그래서 오늘의 결정으로 나는 내가 공정한 나라에 살고 있지 않으며 결코 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대면하게 될 것이다. 내 현존은 대사탄의 현존 때문에 가능할 뿐이라는 사실을 대면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것과 관련하여 화를 내며 몰락을 바라는 것 외에는 무엇을 해야할지 알지 못한다[...]. 내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미 말했듯이, 교육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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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서니 폴 스미스(Anthony Paul Smi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