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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고 바르디: 오늘의 에세이-고드윈의 법칙의 따름 정리: "대량 학살 의도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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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9.

 

고드윈의 법칙의 따름 정리: "대량 학살 의도의 법칙"

A corollary to Godwin's law: the "law of genocidal intentions"

 

―― 우고 바르디(Ugo Bardi)

 

고드윈의 법칙("히틀러로의 환원(reductio ad Hitlerium)"으로도 알려져 있는), 즉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그 어떤 인터넷 토론도 결국 누군가가 히틀러에 비유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말하는 법칙은 확실히 알려져 있다. 이 법칙은 거의 열역학의 원리들만큼 강한 듯 보이며, 최근에 그 법칙이 미합중국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Hilary Clinton)의 기자 회견에서 히틀러에 비유된 러시아 대통령―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에 적용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런데 고드윈의 법칙은 다양한 변양태들이 있는 듯 보인다. 예를 들면, "인종차별주의적 변양태"가 존재한다. 여기서 나는 다른 한 변양태 또는 따름 정리, 즉 히틀러라는 이름이나 "파시즘"이라는 술어를 반드시 언급하지는 않는 것을 제시하고 싶다. 그것은 "대량 학살 의도의 법칙"으로 "절멸로의 환원(reductio ad exterminium)"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환경 정책에 관한 모든 토론에서 조만간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대량 학살 의도, 즉 대부분의 인류를 절멸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고 비난할 것이다

 

이것은 특히 논의되고 있는 환경 정책이 인구와 관련이 있을 때 적용되는 듯 보인다. 이런 형태에 있어서 최초의 사례들 가운데 하나는 1972년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의 출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연구의 후원자들, 즉 로마 클럽은 나중에 세계 인구의 대부분을 절멸하는 데 전념하는 사악한 조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그들은 이 목적을 위해 구체적으로 AIDS 바이러스를 만들어내었다는 비난도 받았다. 말할 필요도 없이, "성장의 한계" 또는 로마 클럽의 회원들은 그와 같은 것은 결코 권고하지 않았거나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를 들면 "Club of Rome"와 함께 "extermination" 또는 "depopulation"으로 구글에서 검색하면 알 수 있듯이, 그 전설은 여전히 널리 퍼져 있다. 또한 "성장의 한계는 어떻게 악마화되었는가(How the Limits to Growth was demonized)"라는 제목의 글을 보라.

 

절멸로의 환원의 법칙은 인구와 관련된 논의들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환경 정책과 관련된 그 어떤 논의에서도 다소간 튀어 나오는데, 특히 기후 변화와 관련된 논의들에서 그렇다. 이 경우에, 지구 온난화와 관련된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고안된 그 어떤 행위도 사실상 대부분의 인류를 절멸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일례는 로렌스 토르첼로(Lawrence Torcello)의 논문과 관련이 있는데, 여기서 그는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기후 부인에 대한 자금 지원 행위는 형법적 및 도덕적 태만 행위로 간주할 좋은 이유가 있다.

 

토르첼로가 범죄 행위로 간주되어야 하는 것은 "무위에 재정적 또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사람들에 의한 기후 부인에 대한 자금 지원 행위일 뿐이라고 말했다는 점을 인식하자. 그는 결코 이 문제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는 사람들과 관련하여 그렇게 발언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량 학살 의도의 법칙"이 즉시 나타난다. 로렌스 토르첼로에 반대하여 전개된 증오 운동에 관한 보도에 대해서는 그레이엄 레드페른(Graham Redfearn)의 이 기사를 보라. 웹에 게시된 두 가지 사례들은 이렇다.

 

그런데, 기후 모독죄를 범한 미합중국 인구의 2/3를 가두기에 충분한 감옥 공간이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나는 필연적으로 처형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그것이 의제 21 전체, 종교로서의 환경주의에 잘 어울리는 까닭은 그런 사람들은 세계가 지속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지구 인구의 최소 80%가 제거될 필요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구금 시간의 논리적 연장은 무엇인가? 그것을 끝까지 밀고 가면, 토르첼로의 철학은 처형에 이르게 된다. 그것은 이상한 논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이것이 파시즘이 개시되는 방식이다. 자유주의적 철학이 진전되면 항상 파시즘에 이르게 된다. 속담에도 있듯이, 지옥에 이르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

 

이런 법칙들, 즉 고드윈의 법칙 또는 절멸로의 환원의 법칙은 거의 웃기는 듯 보이지만,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논쟁의 완전한 타락, 즉 진정한 "모욕으로의 환원(reductio ad vituperium)"이다. 인간들은 무엇이든 중요한 주제에 관한 합리적 토론을 도대체 전개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고, 그래서 기후 변화를 비롯하여 임박한 여러 재난들을 피하기 위해 해야 할 일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낼 필요가 절실한 시기에 그것이 진짜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