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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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브라이언트: 오늘의 인용-스피노자주의의 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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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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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스피노자와 루크레티우스가 세계를 제대로 파악한 두 사상가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난점은, 존재에 대한 어떤 신조가 없다면 나는 스피노자가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창조와 관련된 스피노자의 신조를 이렇게 이해한다. 신(실체, 자연)이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구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 창조되는 존재자는 논리적으로 가능해야 한다.

2. 창조되는 존재자는 물리적으로 가능해야 한다.

3. 창조되는 존재자는 선행하는 원인들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신/자연은 창조될 수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고 그 어떤 식으로도 스스로를 제약하지 않지만(그것은 절대적으로 긍정적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스피노자의 우주에는 기적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기적은 선행하는 원인들(3)에서 비롯되지 않는 사건이고 물리적으로 가능한 것(2)에 위배되는 사건이어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은 지구에서 하늘을 나는 말을 창조하기로 결코 결심할 수 없는데, 그런 존재자가 생성되기 위해서는 진화의 어떤 계보 전체가 필요할 것이고, 지구라는 특수한 행성의 물리적 환경이 그런 존재자가 현존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피노자는 강한 결정론자인 듯 보일 것이다.

 

스피노자의 윤리적 기획을 생각할 때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에티카>>를 읽는 것은 우리가 어떤 식으로 바뀌도록 설득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전과는 다르게 처신해야 한다(특히, 즐거운 만남을 조직하고 상상에서 비롯되는 관념들을 피하는 것이 전념해야 한다). 그런데, 스피노자의 결정론이 참이라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하기 어렵다. 한 학생이 [...] 이렇게 말했다. "제가 시험에서 F학점을 받았다고 가정합시다. 제가 F학점을 초래한 것들을 하기로 선택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가 시험을 치르기 전에 일어난 사건들로 인해 제가  F학점을 받게 되었습니다. 스피노자의 우주에서 모든 것은 선행하는 원인들의 결과이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피노자의 윤리학에 대해서도 꼭 마찬가지인 듯 보일 것이다. 그들이 지복으로 이어질 것들을 행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라, [...] 물이 가열되면 끓는 것과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그런 결과를 산출한 일련의 원인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지복을 얻게 된다. 마찬가지로, 스피노자을 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원인에 의해 슬픈 정념에 빠져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전히 슬픈 정념에 빠져 있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할 것이다. 상황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그렇다면, 우리가 하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읽음으로써 도대체 무엇을 얻게 되는지 분명하지 않다.

 

명백히 스피노자는 이것을 결코 믿을 수 없었을 것인데, 사실상 그는 우리가 즐거운 정동을 추구함에 있어서 모든 종류의 일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그의 결정론과 화해시킬 수 있는가? 그의 처방이 그의 서술과 모순되기 때문에 나는 내 자신이 그의 사유 속에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느끼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그의 형이상학이 이런 처방을 어떻게 허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사유를 정합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유에 대한 신조가 필요한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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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