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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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히크먼: 오늘의 인용-라캉과 포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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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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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의 경우에 상상계, 상징계 그리고 실재계가 인간이 거주하는 세 가지 근본적인 차원이다. 상상계 차원은 실재뿐 아니라 꿈과 악몽에 대한 우리의 직접적인 체험인데, 그것은 외양의 차원, 사물들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모습의 차원이다. 상징계 차원은 라캉이 '대타자'라고 부르는 것, 즉 실재에 대한 우리의 체험을 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질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보는 것을 우리가 보는 방식으로(그리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보지 못하는 방식으로) 보게 하는 규칙과 의미들의 복잡한 연결망이다. 그런데 실재계는 그저 외부 실재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라캉이 서술하는 대로, '불가능한' 것인데, 우리 의미의 우주 전체를 불안정하게 하는 대단히 폭력적인 외상적 만남처럼 직접 체험할 수도 없고 상징화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것 자체로 실재계는 그것의 흔적, 효과 또는 사후 충격에서 식별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트라이어드(triad)는 결코 전적으로 라캉적인 것은 아닌데, 다른 한 판본이 칼 포퍼에 의해 제3 세계(상징적 차원 또는 질서를 가리키는 포퍼의 술어)에 관한 이론에서 제시되었다. 포퍼는 모든 현상을 외부의 물질적 실재(원자에서 팔까지)와 우리 내부의 심리적 실재(정서, 소망, 체험의)로 나누는 일반적인 분류법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관념들은 그저 우리 마음 속에서 지나가는 사유가 아닌데, 이런 사유는 우리 사유가 사라지거나 바뀌는 동안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무언가를 가리키기 때문이다(내가 2+2=4에 관해 생각하고 내 동료도 그것에 관해 생각할 때, 우리의 사유는 물질적으로 상이하지만 우리는 동일한 것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포퍼는 관념론자가 아니다. 관념은 우리 마음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적 조작들의 결과이지만, 그럼에도 관념은 심적 조작으로 직접 환원될 수 없는데, 관념은 최소한의 관념적 객관성을 갖추고 있다. 포퍼가 '제3 세계'라는 술어를 고안한 것은 이런 관념적 객체들의 영역을 포착하기 위해서 행한 일이고, 이 제3 세계는 라캉의 '대타자'에 모호하게 들어맞는다. 그렇지만 '질서'라는 낱말 때문에 길을 잃지 말아야 한다. 라캉의 상징적 질서는 관념적 범주나 규범들의 고정된 연결망이 아니다. [...]

 

그 술어에 대한 합당한 의미에서, '질서'는 어떤 특정한 영역을 가리킬 뿐인데, 그것은 존중받거나 준수해야 할 질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순응해야 할 이상 또는 조화를 가리키는 것은 더욱더 아니다. 라캉의 의미에서 상징계는 언어와 성적인 것의 이음매에서 출현하는 본질적인 무질서를 말할 뿐이다.

 

그러므로 라캉의 상징적 질서는 본질적으로 일관성이 없고, 대립적이고, 결함이 있고, '빗장이 걸려 있는'데, 그것은 협잡의 권위를 갖추고 있는 허구들의 질서이다. 라캉의 경우에, 이런 비일관성 때문에 상상계, 실재계 그리고 상징계라는 세 가지 차원은 영원히 내려가는 물의 순환을 보여주는 유명한 에서(Escher)의 그림 '폭포'처럼 얽혀 있는 세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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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크레이그 히크먼(Steven Craig Hick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