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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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그라지아노: 오늘의 에세이-우리는 정말 의식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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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2.

 

우리는 정말 의식적인가?

Are We Really Conscious?

 

―― 마이클 그라지아노(Michael Graziano)

 

인간 조건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세 가지 과학적 의문들 가운데 두 가지는 해결되었다.

 

첫째, 우주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어떠한가? 코페르니쿠스가 그 의문에 대답했다. 우리는 중심에 있지 않다. 우리는 큰 공간 속의 작은 알갱이이다.

 

둘째, 생명의 다양성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어떠한가? 다윈이 그 의문에 대답했다. 생물학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특별한 창조물이 아니다. 우리는 진화 나무의 한 가지이다.

 

세째, 우리 마음과 물리적 세계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가? 여기서 우리는 확정된 대답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육체와 뇌에 관해 무언가를 알고 있지만, 내면의 주관적 삶은 어떤가? 카메라와 접속되면 컴퓨터가 빛의 파장에 관한 정보를 처리하여 풀이 녹색이라고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자. 그런데 우리 인간들은 녹색성도 경험한다. 우리는 우리가 처리하는 정보를 자각한다. 우리 자신의 이런 불가사의한 양상은 무엇인가?

 

많은 이론들이 제시되었지만, 아무것도 과학적 점호를 통과하지 못했다. 나는 의식에 대한 우리의 시각에 있어서 큰 변화, 즉 쉽사리 믿는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회의적이고 약간 당황하게 하는 관점으로의 이동이 필요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사실상 우리 대부분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내면의 느낌들을 갖지 않는다.

 

17세기 초에 일단의 학자들이 백색 광을 정화하여 모든 색깔을 제거하는 과정에 관해 논쟁을 벌인다고 가정하자. 그들은 결코 과학적 해답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왜? 외양에도 불구하고 백색은 순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중에 뉴턴이 알아냈듯이, 그것은 가시적 스펙트럼에 속하는 색깔들의 혼합물이다. 그 학자들은 뇌의 시각적 체계 덕분에 비롯되는 그릇된 가정으로 작업하고 있다. 백색에 관한 과학적 진리(즉, 그것은 순수하지 않다는 것)는 뇌가 그것을 재구성하는 방식과 다르다.

 

뇌는 세계 속 항목들에 대한 모형(또는 복잡한 정보의 다발)들을 구축하며, 그리고 그런 모형들은 흔히 정확하지 않다. 그런 깨달음으로부터 의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패트리셔 S. 처칠랜드(Patricia S. Churchland)와 대니얼 C. 데닛(Daniel C. Dannet) 같은 철학자들의 작업에서 출현했다. 그것에 대한 나의 서술 방식은 다음과 같다.

 

뇌는 정보 처리를 넘어서 어떻게 정보를 주관적으로 자각하게 되었는가? 그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뇌는 올바르지 않은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가 내성(內省)하여 그런 유령 같은 것―자각, 의식, 녹색이 보이거나 고통이 느껴지는 방식―을 알아낸 듯 보일 때, 우리의 인지적 기구는 내부 모형들을 평가하고 그런 모형들은 그릇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 기구는 불가사의한 듯 보이는 특성에 관한 정교한 이야기를 계산하고 있다. 그리고 뇌가 내성을 통해서 그 이야기가 잘못된 것이라고 결정할 길은 없는데, 내성은 항상 동일한 잘못된 정보를 입수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이것은 역설이라고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자각이 그릇된 인상이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인상이지 않는가? 그리고 인상은 자각의 한 형태이지 않는가?

 

그런데 여기서 주장은 주관적 인상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이터 처리 장치 속의 정보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가 빨간색 사과를 보면, 뇌는 색깔에 관한 정보를 계산한다. 또한 그것은 자기에 관한 정보와 주관적 경험의 특성에 관한 (물리적으로 비정합적인) 특성도 계산한다. 뇌의 인지적 기구는 서로 연계된 정보를 평가하여 여러 가지 결론을 도출한다. 자아, 즉 내가 존재한다. 근처에 빨간 것이 존재한다. 주관적 경험 같은 것이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그 빨간 것에 대한 경험을 겪는다. 인지는 그런 내부 모형들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 뇌는 그것이 주관적 경험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런 접근 방식이 반직관적이라는 것을 시인한다. 한 가지 이유는 그것이 논리에 어떤 빈틈을 남기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뇌가 실제로 이런 특성을 갖고 있지 않다면, 뇌는 왜 주관적 자각에 관한 정보를 계산하고 그런 특성을 자체에 귀속시키는 데 에너지를 낭비할 것인가?

 

이것이 내 자신의 작업이 개입하는 지점이다. 프린스턴 대학의 내 실험실에서 내 동료들과 나는 의식에 관한 "주의 도식(attention schema)" 이론을 개발해왔는데, 그 이론은 그런 계산이 왜 유용하고 그 어떤 복잡한 뇌에서도 진화할 것인지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색깔과 파장의 사례를 다시 고려하자. 파장은 실재적인 물리적 현상이고, 색깔은 파장에 대한 뇌의 약간 그릇된 근사적 모형이다. 주의 도식 이론에서 주의는 물리적 현상이고 자각은 그것에 대한 뇌의 약간 그릇된 근사적 모형이다. 신경과학에서 주의는 다른 신호들을 희생하여 어떤 신호들을 증진시키는 과정이다. 그것은 자원을 집중하는 한 방식이다. 주의는 컴퓨터 칩에 프로그램될 수 있는 실재적인 기계론적 현상이다. 자각은 색깔에 대한 뇌의 내부 모형만큼 물리적으로 부정확한, 주의의 삽화 같은 재구성이다.

 

이 이론에서 자각은 환영이 아니다. 그것은 캐리커처이다. 무언가―주의―가 실제로 존재하고, 자각은 그것에 대한 왜곡된 설명이다.

 

뇌가 주의에 대한 근사적 모형을 필요로 하는 한 가지 이유는 무언가를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기 위해서 체계는 최소한 제어 대상에 대한 대강의 모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 이유는 다른 생물체들의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서 뇌는 그들의 주의를 비롯하여 그들의 뇌 상태들을 모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사회신경과학, 주의 연구, 제어 이론 등으로부터 증거를 끌어모으고 있다.

 

의식에 관한 거의 모든 다른 이론들은 자각에 대한 우리의 직관에 근거를 두고 있다. 백색 광이 순수하다는 직관처럼 자각에 대한 우리의 직관은 뇌의 심층에서 계산된 정보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뇌는 실재적 사물들에 대한 캐리커처인 모형들을 계산한다. 그리고 색깔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의식의 경우에도 그렇다. 직관에 대해 회의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