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타니아 롬브로조: 오늘의 에세이-생각과 관련하여 차별주의자가 되지 말자

댓글 0

카테고리 없음

2015. 2. 3.

 

생각과 관련하여 차별주의자가 되지 말자

Don't Be A Chauvinist About Thinking

 

―― 타니아 롬브로조(Tania Lombrozo)

 

우리가 "기계"로 특징짓는 일상적 객체들―세탁 기계, 재봉 기계, 에스프레소 기계―은 기계적인 것에 자체의 기원을 두고 있다. 그것들은 액체와 객체 주변을 돌아다니고, 그것들은 물질을 한 표현에서 다른 한 표현으로 변형시킨다. 옷은 세탁되고, 옷감은 연결되며, 커피는 마련된다. 그런데 "생각하는 기계"는 우리가 기계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오늘날의 원형적 기계들 가운데 많은 것―랩탑 컴퓨터, 스마트폰, 테블릿 컴퓨터―이 디지털적인 것에 자체의 기원을 두고 있다. 그것들은 정보 주변을 돌아다니고, 그것들은 관념들을 변형시킨다. 숫자들은 합해지고, 질문은 대답을 낳으며, 목적은 계획을 생성한다.

 

우리가 기계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이 변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은 비견할 만한 변형을 겪었는가?

 

이런 의문의 한 판본은 새롭지 않으며, 그 대답은 "그렇다"이다. 주어진 시간과 장소의 기술은, 그것이 수역학적이든, 기계적이든, 디지털적이든, 양자적이든 간에, 사유에 관한 생각에 대한 은유를 흔히 제공해왔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에는 더 많은 것이 존재하며, 그것은 우선 생각으로 간주되는 것과 간주되지 않는 것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우리가 암묵적으로 들여오는 기준에서 비롯된다.

 

세탁 기계는 생각하는가? 스마트폰은 생각하는가? 우리는 더 기꺼이 후자―그리고 그것의 더 정교한 사촌들―에 사유를 귀속시킬 것인데, 그것이 더 복잡하다는 이유뿐 아니라 그것이 더 우리처럼 생각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생각에 대한 우리 자신의 경험은 기계적이지 않으며, 단일한 과업에 한정되지도 않는다. 우리―성인 인간들―가 생각으로 간주되는 것과 간주되지 않는 것을 평가하는 기준인 듯 보인다.

 

심리학자들은 이미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생각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을 확장하고, 옹호하며,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문화심리학자들은 서양 성인들이 인간의 생각을 연구하는 특권적인 개체군을 이룬다는 관념에 이의를 제기했다. 발달심리학자들은 언어 능력을 습득하기 이전의 유아들이 생각하는지 여부와 생각하는 방식에 관한 의문들을 제기했다. 비교심리학자들은 비인간 동물들이 생각할 수 있는지 여부와 생각하는 방식에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물론 철학자들은 도중에 이런 의문들을 고찰했다. 이런 분과학문들을 가로질러 우리가 생각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에 있어서의 한 진전이 "내가 하는 것처럼 생각하기"가 생각에 관해 생각하는 유일한 방식이라는 관념, 또는 "내가 하는 것처럼 생각하기"가 항상 최선이거나 가장 가치 있는 종류의 생각이라는 관념을 인식하고 포기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생각에 관한 논의들에 흔히 살짝 유입되는 암묵적인 가정들을 철저히 조사하는 것과 특수한 종류의 생각 차별주의를 포기하는 데서 득을 보게 되었다.

 

생각하는 기계의 경우에 우리는 바로 그 동일한 쟁점들 가운데 많은 것을 직면하지만, 연구 목표가 인간과 다른 동물들에서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기계들로 이동한다. 우리가 나아갈 때, 채택하고 싶어하는 기본 가정들의 두 가지 집합이 존재하지만, 무비판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하나는 최선의 또는 유일한 종류의 생각은 성인의 생각이라는 관념이다. 예를 들면, "지능을 갖춘" 컴퓨터 체계들은 때때로 정말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억지 접근 방식, 노골적인 마력에 너무 크게 의존한다고 비판받는다. 이런 접근 방식들은 생각에 대한 대안인가? 아니면 생각으로 간주되는 것의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는가?

 

철저히 조사할 만한 두 번째 관념은 정반대의 극단적 관념인데, 그것은 최선의 또는 유일한 종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하는 기계들이 바로 지금 우연히 생각하는 방식에 의해 반영된다는 관념이다. 예를 들면, 정서가 인간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때때로 더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가 때때로 자신의 생각을 사회적 및 물리적 환경에 외주를 주어서 세계와 갖는 유효한 상호작용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전문가와 장치들에 의존한다는 증거가 존재한다. 생각의 기본 단위로서 아무 감정도 없는 자기충족적인 존재자―공감을 느끼지 못하고 동료 없이 기꺼이 나아갈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 같은 것―를 선호함으로써 이런 지저분한 실재를 거부하고 싶을 것이다.

 

생각에 대한 인간 차별주의적 기준과 "1990년대의 랩탑 컴퓨터" 접근 방식 사이의 어딘가에 놓인 것이 생각에 관해 생각하는 최선의 방식―생각을 구성하는 수단과 목적에 있어서 어떤 다양성을 인식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 이루어진 인공 지능의 진전들은 이미 우리로 하여금 생각에 관한 우리의 가정들 가운데 일부를 재고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도구들로 생각하게 만들 뿐 아니라, 우리가 생각 자체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