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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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 브라이언트: 오늘의 에세이-유물론의 역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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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12.

 

유물론의 역설들

Paradoxes of Materialism

 

――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

 

유물론은 두 가지 점에서 역설적이다. 나는 유물론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것의 경계를 정하고 유물론이 사유의 다른 정향들과 어떻게 다른지 규정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이 역설들을 언급한다. 첫째, 유물론은 존재의 본질은 물리적이고, 그래서 사유가 아니지만, 사유를 통해서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라는 테제를 옹호한다. 물질적인 것은 개념, 사유, 현상성, 정동, 육체의 체험된 경험 그리고 의미작용에 선행하고 후행하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은 의미가 부재하고, 모든 의미를 넘어서며, 확실히 모든 현상학적 소여의 외부에 존재한다. 예를 들면, 체험된 육체(현상학적 경험의 육체)와 생리학적(물질적) 육체 사이에는 본원적인 차이가 있다. 물론 생리학적 육체는 체험된 육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체험된 육체는 물질적 또는 생리학적 육체에 대한 믿음직한 지침이 아니다.

 

한 남자가 격심한 불안을 겪는다. 그의 사유는, 하이데거적 방식으로, 자기 실존의 의미, 죽음에 대한 관계,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는 이것들이 불안의 원천이라고 생각하여 정신분석가나  실존 치료사를 방문한다. 그런데 그의 불안은 화학적 불균형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경험의 내부에서 바라보면 알 길이 없는데, 그의 물질적 존재는 모든 사유와 경험에 외재적이기 때문이다. 의미와 불안의 관계는 절대적으로 자명한 듯 보인다. 그는 심리 치료에 여러 해를 보낸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불안의 근거가 결코 물질의 영역에 있지 않다.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물질적 육체가 가장 거대한 외재성―이른바 레비나스적 타자의 외재성도 포함하여―보다 더 외재적인 것이라는 기묘한 방식이 있는데, 그래서 자신이 그것인데도 그것은 완전히 불투명하다.

 

물질적인 것과 소여 사이에는 영구적으로 불일치가 존재한다. 물질적인 것은 외재적인 것들 가운데 가장 절대적인 것으로서 어떤 소여로부터도 영구적으로 물러서 있다. 그것은 비외양적인 것인데, 말하자면 그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물질적인 것은 영구적으로 자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행사한다. 결과적으로, 물질적인 것은 우리가 추론을 통해서 파편적으로 모형화하는, 항상 물러서 있는 지평이다. 이것은 현상학적인 것, 경험적인 것 그리고 의미를 지닌 것이 물질적인 것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닌데, 물질적인 것은 의미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우리의 거울이 아니라고 말할 뿐이다.

 

확실히 인문학에서 관념론과 사회적 구성주의를 낳는 것은 물질성의 이런 절대적인 외재성, 어떤 현상학적 무 또는 기호학적 부재보다도 더 본원적인 이런 부재이다. 어떤 의미작용, 현상학적 경험 또는 개념도 물질적인 것을 견인할 수 없기 때문에, 즉 이것들 가운데 어느 것도 물질적인 것을 현시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관념 또는 기호 또는 정동들만 존재할 뿐 물질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모든 존재자들은 우리의 거울이 된다. 우리는 이누이트 족 사이에 복어를 가리키는 낱말이 없기 때문에 복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을 제기하게 된다. 그렇다면 모든 유물론은 사유에 대한 물질의 이런 외재성을 탐구하여 사유가 어떻게 사유가 아닌 것과 결코 사유되지 않는 것에 관한 무언가를 알 수 있는지에 대한 어떤 종류의 설명을 제시해야 한다.

 

별도로 한 어리석은 논증에 관하여: 때때로 관념론자와 사회적 구성주의자들이 실재론을 비판하면서 실재론은 초월적 견해를 전제로 하고 있다거나, 아니면 우리는 결코 초월적 견해를 품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그런데 실재론은 초월적 견해를 품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결코 총체적 지식(덧붙여 말하자면, 관념론자들은 주장할 수 없는 것)을 제시한 적도 없다. 모든 실재론적 주장은 실재계의 한 조각을 파악하는 것, 기표들의 망 속에서 기표가 아닌 무언가를 포착하는 것이다.

 

두 번째 역설은 유물론의 존재론적 테제―존재자는 물질적이다―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모든 존재자들에 적용되는 완전히 일반적인 테제이다. 그런데 그것이 맞다면, 우리는 어떻게 물질이 사유에 외재적이라는 테제를 설명할 수 있는가? 사유는 하나의 존재 형식이고, 그러므로 사유 역시 물질적이기 때문이다. 유물론은 물질적인 것이 어떻게 사유, 개념, 기의, 현상학적 경험, 정동 등의 형식에서 자체에 외재적일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유물론은 물질적인 것이 어떻게 그것 자체, 즉 물질이면서 그것 자체가 아닐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한다. 유물론은 물질적인 것이 근거로서의 그것 자체를 은폐하면서도 절대적으로 사사롭고 가까운, 물질적인 존재자에 내재하는 것의 환영들을 어떻게 산출하는지 설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