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레비 브라이언트: 오늘의 인용-영원의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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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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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하고 보편적인 것들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산출되는 것이다. 여기서, 물론, 나는 바디우와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영원하고 보편적인 것들은 산출되는 것이라는 점이 참이라면, 그것들도 내기의 대상이다. 무언가가 영원하거나 보편적일지 여부는 아무도 미리 알 수 없다. 시간만이 말해줄 것이다. 이것은 보편성과 영원성 둘 다 항구적으로 도전에 직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순간에도 이런 시간의 결정들은 파괴되어 산산히 부서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무엇보다도 예술 작품에 관해여 생각하고 있다. 영원하고 보편적인 예술 작품―노래, 회화, 조각, 산문, 시, 건축 등―은 유동적이다. 처음부터 그것은 자체의 시대에 꼭 맞지 않는다. 우리가 그것의 제작 시기와 기원을 알고 있더라도, 그것은 환원 불가능하고 시기가 정해질 수 없다. 흔히 그것은 갈등이나 논쟁, 말하자면, 토론을 유발할 것이다. 그것과 관련하여 이미 자체의 기원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것의 제작 시기를 특정하더라도 그것은 그 시대의 문화에 꼭 맞지 않으며, 예술가의 이력에 의해 소거될 수도 없다. 게다가 그것은 어떤 명제로 환원될 수 없다. 말하자면, 그것은 그것을 대체할 일단의 진술로 번역될 수 없다. 그렇지 않다. 그것과 관련하여 어울리지 않는 과잉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것은 자체의 시기 또는 저자에 꼭 맞지 않는다. 그것은 속하지 않은 채 속한다. 그런데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자체의 시기에 꼭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어느 시기와도 꼭 맞지 않는다. 그것은 시간을 가로질러 여행하고 시간 속에 현존하지만, 어떤 맥락도 결코 그것을 포화시킬 수 없다. 불량 행성처럼 그것은 자체가 처하게 되는 어떤 시대도 교란하여 사유, 토론 그리고 정동을 불러 일으키지만, 항상 다른 방식으로 그렇게 한다. 기원은 어딘가에서 시작되었지만 고향을 갖지 못한 채 시간을 가로질러 여행하는, 어울리지 않는 어떤 것, 한 조각의 영원성을 산출해 버렸다. 우리는 맥락이 어떤 존재자의 존재를 규정한다고 말하지만, 영원의 결정들은 모든 규정을 벗어나고, 그 대신에 규정한다. 그것들은 절대적인 고아들이고, 이런 이유 때문에 보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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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