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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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켄지 워크: 오늘의 에세이-가속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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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8.

 

가속주의: 크루즈 컨트롤

Accelerationism: Cruise Control

 

―― 맥켄지 워크(McKenzie Wark)

 

01. 가속주의에 관한 대부분의 관념들―찬성과 반대―이 자본주의는 항상 다소간 동일한 것이라고 가정한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자본주의는 자체를 긍정할 수 있는데, 가속되어 미래에 무언가 다른 것이 된다. 또는 그것은 부정되어 무언가 다른 것에 의해 전복될 수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 자체는 항상 동일한 듯 보인다.

 

02. 그런데 그러한가? 이것은 여전히 자본주의인가? 그것이 더 나쁜 것이었다면 어쩔 것인가? 어딘가 다른 곳에서 내가 주장한 적이 있듯이, 우리는 상품 경제가 이미 세 단계―토지의 인클로저, 물건의 대량 생산 그리고 정보의 상품화―를 거쳤다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각 단계는 별개의 사적 소유 형태인데, 계급들, 소유자와 비소유자들의 연속적인 양극화를 낳는다.

 

03. 변형적 가능성들은 소유 형태가 전개되는 각 단계와 더불어 변화한다. 토지 인클로저는 반동적이고 유토피아적인 농노 저항을 낳았다. 상품으로서의 물건의 대량 생산은 급진적이면서 개혁주의적인 노동 운동들을 낳았다. 이런 진행 중인 착취 형식들의 꼭대기에 층을 이루는 새로운 착취 형식들은 새로운 종류들의 논쟁과 조정을 낳고 있다.

 

04. 새로운 상품화 단계는 노동으로부터 잉여 가치를 추출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놀이로부터 잉여 정보를 추출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정보를 공짜로 제공하지만, 그 대가로 더 많은 정보―잉여 정보―를 추출함으로써 가치를 추출한다.

 

05. 그런데 이런 새로운 형태의 상품 경제는 도전을 받게 된다. 그렇지만 그것이 야기하는 대항 흐름들은 '정치'라는 범주로 적절히 포착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투쟁은, 보그다노프(Bogdanov)가 말하곤 했듯이, 상품화와 더 나은 조직 형태들의 가능성 사이에 벌어질 것이다. 조직의 문제는 동시에 자원, 기법, 인간 및 비인간의 힘, 정동과 정보에 관한 문제이다.

 

06. 예전에 대체로 전향적이었던 좌파 담론이 이제는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는가? 그것은 자체의 두 번째 10월을 바란다. 또는, 그것은 그리스도-레닌-메시아를 바란다. 그것은 도약과 사건들을 바란다. 어떤 자율적 영역도 분명히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이는 시기에 그것은 정치적 활동의 자율적 영역을 바란다. 조직 양식들의 문제가 다시, 그리고 정치 이론의 영역 바깥에서 제기되어야 한다.

 

07. 물론 "아무 대안도 없다"는 언어에 대해 굴복하는 비정치적 이론보다 정치적 이론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우리 대안들은 영원한 자본주의에 대한 몰역사적, 철학적 이해들이 아니라, 상품 관계의 현재 형식들에 대한 분석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우리는 카스토리아디스(Castoriadis)가 상상적 제도―이것으로 조직이 자체의 형태에 함축된 국면 변화들을 찾아낸다―라고 부른 것을 재개해야 한다.

 

08. 그들이 구사하는 수사법으로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요즈음 이야기는 붕괴, 창조, 파괴에 관한 것이다. 아방가르드와 혁명가들의 옛 언어는 이제 실리콘 밸리 홍보 담당자들의 분야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언어에 대한 주의 깊은 분석이 필요하며, 그리고 새로운 아방가르드가 필요하다. 이것이 자체의 지속 수단을 해체하느라고 바쁜 상품 경제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것은 착상들이 고갈되어 버렸다. 신자유주의 국가의 과업은, 이것이 결국 덜 효율적이고 덜 효과적인 조직 형태들을 초래할지라도, 사회적인 것들이 상품화되도록 그것들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래서, 차더 스쿨에 아이패드를 배치하자! 그 결과는 덜 효과적이고 비용이 더 많이 들 것인데, 그것이 물론 목표이다.

 

09. 우리 시대의 지배 계급은 지대 추구 계급(rentier class)이다. 그것은 사실상 혁신적이지 않고 파괴적이지 않다. 그것은 아무것도 가속화하지 않는다. 기술적 혁신은 상품화를 새로운, 더 추상적인 차원, 즉 정보의 차원으로 밀어붙였다. 그런데 계획은 대체로 그런 영역들에서 유사 독점적인 지대 추구 행동에 밧줄을 쳐서 지속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지배 계급―내가 벡터적 계급(vectorial class)으로 부르는 것―은 정보가 정말로 '혁신'의 양식이 아니라 조직 통제의 양식이기를 바란다.

 

10. 이런 바로크적 질서에 대한 도전은 더미의 기반에 놓여 있는, 그것이 실존의 물질적 조건과 맺고 있는 관계 안에 전적으로 속한다. 부정은 항상 아래에서 비롯된다. 위로부터의 부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고모라에 맞서는 판단을 제공할 절대적 타자성의 다른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순수한 보편적인 평등성의 보복 천사 같은 코뮨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지의 것을 향한 부조리주의적 도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벡터적 계급에게 책임을 지도록 요구하는 것은 그것 자체의 해체의 체계적 성질이다. 그 목록에서 첫 번째 항목이지만 마지막 항목은 아닌 것은 항상 증가하는 대기중 탄소의 수준이다. 붕괴를 촉발할 것은 철학이나 예술이 아니라 식량 가격의 급등이다.

 

11. 상품 경제는 자체의 유독한 접촉으로 무엇이든 모든 것을 감염시키는, 알튀세르가 "표현적 총체"라고 부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자본주의적인 것도 아니며, 오히려 상품 조직 양식과 비상품 조직 양식의 이질적인 혼합물이다. 또한 상품 형식들은 최소한 세 가지의 역사적 형식으로 분화되는데, 토지, 자본 그리고 정보를 사유 재산의 형식으로 만든다. 자본주의는 총체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의 부정도 총체적이지 않다. 이질적인 형식과 목표들을 함께 분명히 표현하는 더 추상적이면서 더 구체적인 조직의 언어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최소한 라클라우(Laclau) 무페(Mouffe) 그리고 스튜어트(Stuart)의 유산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12. 가속주의 비판가들은 나 역시 총체적 부정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고 말할 것이다. 사실상 그렇다. 그런데 이것은 드보르(Debord)가 "낙관주의의 어리석은 잡담"이라고 부른 것을 제거하고 전략적 사유의 공간을 개방한다. 조직 사상가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질서정연한 퇴각을 조직하는 것이다. 다양한 점에서 지금으로서는 질서정연한 퇴각이 우리의 과업일 것이다. 그것은 유토피아적 상상을 풀어놓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데, 비록 그것이 사도 바울의 절멸시키는 천사들이 아니라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의 퀴어 코스모스일지라도 말이다.

 

13. 그래서 자격을 갖춘 한 가지 가속주의가 존재한다. 자본주의는 몰역사적이라는 점도 수용하지 않고, 자본주의의 가속화가 실제로 '진보'라는 점도 수용하지 않는 가속주의. 그런데 과거 또는 신비로운 타자를 너무 많이 믿지 않는 가속주의. 난제는 세계를 조직하는 데 있어서 손 닿는 곳에 있는 다양한 하부구조로 더 잘 해내는 것이다.

 

14. EP 톰슨(Thompson)이 절멸주의(exterminism)라고 부른 것의 언어에는 어떤 매력이 있다. 인간중심적 세계에 관한 추상적 사유로서 이천 년 동안 실패한 이후에 철학은 그 부분을 정말 건너뛰고 인간 없는 세계에 관한 사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상관주의적 철학들이 아니라, 더 말할 것도 없이 철학과 관련되어 있다. 철학자들이 인간을 구원할 것이었다면, 그들은 이미 그렇게 했었을 것이다.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들의 다른 연결망들 속에서 전적으로 다른 종류들의 사유를 조직할 시기이다. 사유의 문제는 조직적 문제이다. 주인 사상가들의 스펙터클을 끝내자.

 

15. 그렇다면 돌아갈 길은 없다. 우리는 과거-현재-미래를 연결짓는 새로운 시간적 재즈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시간적 재즈를 사유하는 현실의 타자들과 함께 더 다원적인 형식으로 생각하자. 가속주의를 코드보 이슌(Kodwo Eshun)의 아프로퓨처리즘(afrofuturism), 베아트리즈 프레치아도(Beatriz Preciado)의 젠더 디엔지니어링(gender de-engineering), 고인이 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의 테크노페미니즘(techno-feminism) 등과 결합하자. 또 다시 계층 구조에서, 그리고 어떤 역사적 레카토 주법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자. 지금까지 어떤 가속주의적 동지들은 차이들로부터 추상하는 어떤 진부한 양식들에 의존했다. 오히려 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추상화, 그저 낡은 가부장적 규범들을 단언함으로써 그런 차이들을 없애버리지 않는 추상화가 필요하다. 우리를 위한 미래를 계획해 달라고 아버지에게 요청하는 것은 비행하지 못할 것이다. 낡은 유형의 추상된 합리성에 기반을 둔 대규모의 계획은 전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하부구조가 큰 것들의 작은 그물코가 아니라 작은 것들의 큰 그물코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부구조가 정초하고 있는 반석을 대단히 블안정하게 만들어서 그 반석이 점점 더 붕괴에 취약하게 되었다.

 

16. 그런데 또 다시 계층 구조에서 생각하라고 요청한다는 점에서 윌리엄스와 스르니체크 같은 가속주의자들은 옳다. 적은 확실히 존재한다. 필립 미로우스키가 우리에게 적의 계획을 제시했다. 첫째, 그것이 먹힐 동안에는 기후 변화의 실재성에 관해 거짓말을 하라. 둘째, 상품 형식을 바꾸지 않은 채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활용하라. 세째, 탄소 배출을 절감하지 않은 채 대기중 탄소의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 지구공학을 활용하라. 요약하면 적의 계획은 우리를 더욱 더 괴롭히는 것이다. 사유 재산을 위해 그들이 희생시키지 않을 것은 생명 자체를 비롯하여 아무것도 없다.

 

17. 생명력은 국가의 주요한 목적이 아니다. 그렇다. 국가는 국민에 맞서 무장하고 있다. 국가는 전 국민에 대한 감시를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필요하다면, 국가가 우리에 맞서 재산을 옹호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것이 국가의 처음이자 마지막 임무이다. 여러분은 공포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지배 계급은, 조용한 순간들에, 국가가 자체의 과업을 해내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

 

18. 그렇다면 우리의 과업은 가장 힘든 과업이다. 질서정연한 후퇴. 파산 선고를 받고 기력이 떨어진, 상품화에 기반을 둔 이 조직 형식이 내일 사라질지라도, 물질적 실존 조건은 여전히 우리에게 적대적이다. 과거의 역사적인 갈고리를 원한다면, 그것은 바스티유의 습격이 아니라 모스크바로부터의 퇴각이다. 모든 친프랑스적 행위 이론의 변함없는 중심인 자코뱅적 정치 모형을 끝내자. 프랑스중심적 세계를 고수해야 한다면, 그것과 양쪽 측면을 접하고 있는 클라우제비츠(Clausewitz)나 푸리에를 읽고, 그래서 행위를 상상의 정치적 문제에서 더 하부구조적인 문제들로 옮기자.

 

19. 우리는 약한 사회적 고리들의 약한 권력 위에 정초할 수 있는가? 추상된 사회성의 권태, 무관심, 불투명함 그리고 양가성이 긍정적인 힘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데이터펑크(datapunk)일 수 있는가? 여기에 삼 기가바이트가 있다, 가서 당신 자신의 사회를 구성하라. 우리는 메타펑크(metapunk)일 수 있는가? 우리는 자신의 메타데이터를 관리하고, 적절한 채널들의 그림자 속에서 횡단적 조직들을 구축할 수 있는가? 우리는 파이프라인 앞에 자기 육체를 내놓을 태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뒷받침하는 방대한 익명의 지지 집단일 수 있는가? 우리는 인프라펑크(infrapunk), 즉 다른 한 삶의 구조의 작은 조각들의 건설자일 수 있는가? 

 

20. 우리는 현대 예술과 절연할 수 있는가? 그것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면 행운을 빈다. 우리는 모두 자기 본업이 있다. 우리는 성공적인 예술가를 그저 본업을 갖고 있는 다른 한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그의 진짜 일은 무언가 다른 것인지 물을 수 있는가? 우리 시대의 실제 예술은 조직적일 뿐이다. 그것은 실제 제약 속에서 작동하면서 부분적으로 탈상품화하는 자원의 조직들을 제안한다. 현대 예술은 쓸모없는 사람들에게 쓸모없는 것일 뿐이다. 여러분이 얻을 수 있다면, 해지 펀드들의 돈을 취하라. 그러나 그들의 가치 감각은 결코 취하지 마라. 우리 모형은 아스게르 요른(Asger Jorn)이어야 하는데, 그는 수집가들로부터 돈을 취하여 전후 유럽의 가장 거대한 아방가르드들에 투자했다.

 

21. 요른이 뒷받침한 아방가르드들은 불안정한 사람들이었다. 여기 지나치게 개발된 세계에서 이것은 이제 일반적인 조건이다. 지배 계급은 지대를 수금하기를 바라지만 어느 누구도 고용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평소처럼 운영되는 사업은 실제 노동을 점점 더 적게 필요로 하는 반면에, 탈탄소 생산 양식을 향한 질적인 변화는 수십 년 동안 계속 분주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구조적인 양도를 거의 하지 않는 국가를 현재 소유하고 있는 지배 계급에 맞서 벌어지는 그런 변화는 많은 구성 요소들의 사회적 운동을 조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2. 우리가 당대의 명백한 '정치'을 적절히 명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신자유주의적 정치가 아니라 파시스트적 정치이다. 동의는 증오할 외집단을 가리킴으로써만 확보된다. 당대의 공물은 대단히 변변치 않아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훨씬 더 나쁜 것을 겪도록 함으로써 유의미한 듯 보이게 될 수 있을 뿐이다. 파시즘에 맞서는 새로운 인민 전선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런 더 큰 운동에서 우리의 위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23. 탈포드주의와 후기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는 현재의 생산 양식에 대한 빈약한 이름이다. 그 이름은 그것의 새로운 특징들이 아니라 한 가지 낡은 특징에 주의를 집중하게 만든다. 그것은 국가의 한 가지 특징만을 적절히 명명할 뿐이다. 자유주의적 국가는 시장을 규율했던 반면에, 현재 신자유주의적 국가를 규율하는 것은 시장이다. 상품 경제의 신흥 형식들을 서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그것은 신-무엇이거나 탈-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후기 자본주의나 인지 자본주의가 아니다. 수식어들을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존재론적 변양태, 즉 정보라는 범주의 역사적 생산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것을 서술할 새로운 언어를 고안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언어들을 더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나 오랫 동안 동일한 낡은 책들을 읽었다.

 

24. 하나의 존재론적 실재로서의 정보의 역사적 생산은 냉전의 조직적 난제들의 산물이다. 상이한 생산 양식들을 갖추고 있던 소비에트와 미합중국 둘 다가 그것에 이르렀다는 점은 흥미롭다. 정보의 실재의 역사적 생산은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생산 관계들과 독립적이다. 그런데 당분간 다른 한 조직 모형에 대한 약속은 여전히 상품 형식 속에 갇혀 있는데, 그것이 꽤 새롭고 기묘한 상품 형식, 즉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물건의 대량 생산 형식들의 외부에서 이미 조직된 형식일지라도 말이다.

 

25. 새로운 상품 형식―정보―이 새로운 종류들의 계급 관계를 산출하고 있다. 여기서 아방가르드는 또 다시 입수 가능한 고전적 역할―신흥 계급의 일상 생활 형식들로 실험할―을 찾아낸다. 이제 전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우리에게는 얻어야 할 세계가 있다! 미셀 베른슈타인(Michele Bernstein)와 함께 우리는 "세계의 괴물들이여, 단결하라!"라고 외칠 수 있을 것이다. 또는, 세계의 데이터펑크들이여, 단결하라! 우리는 잃을 세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