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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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오헤이어: 오늘의 에세이-과학, 정치 그리고 권위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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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23.

 

반(反)예방접종주의자들은 적이 아니다: 과학, 정치 그리고 권위의 위기

Anti-vaxxers are not the enemy: Science, politics and the crisis of authority

 

―― 앤드류 오헤이어(Andrew O'Hehir)

 

우리 시대―탈근대적이라는 술어조차도 낡은 듯 느껴지기 시작하고 있을지라도, 우리들 가운데 멋진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흔히 탈근대적 시대라고 한다―의 중요한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만연하는 권위의 위기이다. 보수주의자들이 두려워하는 도덕적 상대주의의 뿌리 없는 세계의 경우처럼, 아무도 무언가를 믿지 않고 아무도 전문가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적으로 참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자기 나름의 믿음, 전문가 그리고 증거를 선택하게 된다. 이것은, 니체(Nietzche)가 신은 죽었다고 공표했을 때 예견했던 의미의 위기와 유사한 것이지만, 니체는 절반만 옳았다. 서양 세계의 모든 사람이 두려워한 판단을 내리는 옛 신은 가버렸지만, 그는 암세포처럼 새로운 신들의 끝없는 만신전으로 분화되고 증식되었다.

 

내 미디어 플랫폼을 공유하는 누군가가 텔레비전에서 기후 변화는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예방 가능한 질병들에 대해 어린이에게 예방접종하는 것은 위험하고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우파 미치광이들―또는 그 점에 있어서는 선거 사무소의 우파 미치광이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은 전적으로 예상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망상에 빠져 있거나 잘못 알고 있으며, 그리고 기후 부인의 경우에 그들이 더 크고 더 사악한 권력자들의 조력자들로 봉사하고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런데 그런 쟁점들이 진보적인 집단 심리와 보수적인 집단 심리에서 아무리 밀접하게 연계되게 되었을지라도, 그것들은 동일하지 않다. 한편으로 반예방접종 정서는, 자유방임주의적 사고방식을 갖춘 우파와 아나키즘적 사고방식을 갖춘 좌파나 뉴에이지적 좌파 사이에서 가장 흔하지만, 정치적 스펙트럼 전체에 걸쳐 발견된다. 예방접종 쟁점을 당파 정치 또는 "문화 전쟁"의 이분법적 담론으로 밀어 넣으려는 시도들은 지적으로 게으르며, 그것의 참된 의미를 잘못 전달한다. 게다가 기후 부인주의의 위험성은, 사실상 무언가 다른 것과 관련되어 있는, 미합중국 정치에서 부차적인 쟁점들 가운데 한 가지인 것처럼 느껴지는 반예방접종 히스테리의 위험성보다 엄청나게 더 유해하다.

 

반예방접종 운동을 기후 부인주의와 연계시키는 것은 둘 다 권위의 위기에 대한 표현이라는 점이다. 글렌 벡(Glenn Beck)과 랜드 폴(Rand Paul) 같은 사람들이 대표하듯이, 그들은 권위의 위기를 흥미롭게도 괴상하고 비교적 새로운 우익 복장으로 나타낸다. 아무것도 모르는 의원들과 지루한 TV 사회자들은 지식인 박사 엘리트에 용감하게 맞서는데, 그들은 과학자가 아니고, 그들은 단언하지만(그들의 핵심 청중으로 승리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알고 있다! 한편으로, 양안의 진보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계몽주의를 천명하고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비난할 저항할 수 없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커피 찌꺼기를 퇴비로 만들고, 닐 드그래스 타이슨(Neil deGrasse Tyson)의 쇼를 시청하며, 과학을 믿고 있다는 것으로 자화자찬하는 것이 아무리 흡족하더라도, 그것은 요점을 놓치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가 "과학을 믿는다"는 것, 또는 과학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 전적으로 명료하지는 않다. 자기 아이에게 예방접종을 하며 기후 변화가 긴급한 전지구적 문제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유전자 변형 유기체와 농약이 가미된 생산품이 무해하다는 과학적 단언들에 대해서는 확신감을 덜 느낀다. 이보세요, 탈리도마이드와 DDT도 안전하다고 했잖아요! 백신을 실제로 제조하고 판매하는, 탐욕과 허위의 추악한 긴 역사를 지닌 거대 제약 회사들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예방접종 배후에 놓여 있는 과학적 원리들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기후 변화 또는 예방접종 또는 진화 등에 관한 주류 과학의 기반을 훼손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진가에 대해서 틀릴 수도 있지만(여러분과 나와 거의 모든 실제 과학자에 따르면), 사회적 제도로서의 과학의 타당성에 관한 한, 그들은 일리가 있으며 우리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다.

 

제대로 말하자면, 과학은 자체를 "믿지" 않는다. 윤리적인 과학자라면 누구나 과학의 역사는 의심과 실수와 우연한 발견들의 역사라고 말할 것이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명문 대학의 학위를 취득하고 흰색 가운을 입고 있는 사람들―그들도 여느 사람과 꼭 마찬가지로 사악하고 부패할 가능성이 있다―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그런데 이것은 과학적 방법의 핵심에 놓여 있다)이다. 구체적으로 나는, 관념들의 실마리를 그것들의 원천까지 추적할 수 있는 능력과 어떤 관념이 승리할 때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지 물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것은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솜씨이고, 우리의 현재 교육 경제에서 사실상 억제당하고 있는 솜씨이다. 또한 그것이 과학을 둘러싼 미합중국의 교착 상태와 권위의 위기에 의해 창출된 되먹임 고리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나는 몇 가지 격렬한 논평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는 암암리에 반예방접종주의자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있고, 나는 내 스마트폰을 포기하거나 천연두의 절멸을 무화시키고 싶지 않으며, 그리고 나는 1970년대 프랑스 철학의 스타일을 흉내내어 객관적 실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은 언어와 이데올로기의 게임일 뿐이라고 단언하지 않는다. 그래도, 권위의 위기는 한 가지 문화적 현상인데, 즉 권위의 위기는 검증 가능한 사실이 아니라 실제로 언어 및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것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우리 편"은 참된 사실과 정당한 권위에 대한 접근권을 갖고 있는 반면에 반대 편은 돌팔이와 협잡꾼들에 의존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우리의 신은 위대하고 당신의 신은 불결한 당나귀라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가 옳을 수도 있지만(어느 경우에도), 반대 편이 언제나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어떤 견지에서도 본질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권위의 위기는 결코 예방접종에 반대하는 미치광이들과 기후 부인주의자들에 한정되지 않으며, 전적으로 우파에서만 발견되지도 않는다. 지난 반 세기 이상 동안, 무엇보다도 백인의 우수성, 베트남 전쟁, 원자력, 여성과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억압 그리고 이윤 획득을 위한 환경 파괴에 관한 사회적 정통, 문화적 정통 그리고 정치적 정통에 이의를 제기한 것은 대체로 좌파였다. 최근까지 미합중국 보수주의자들은 무엇보다도 권위와 도덕적 질서의 수호자로, 부식하는 조류에 시달리는 공유 가치들의 요새를 둘러싼 부벽으로 자처했다. 최근에 나타난 "어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의 맹렬한 수용과 성마른 NYPD 시위의 경우에서처럼 그런 충동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 시기에 그것은 대체로 향수에 젖은 것이다. 그 요새는 물에 잠겼고, 도덕적 질서는 황폐해졌으며, 공유 가치들은 방랑자처럼 흩어져 버렸다. 견고한 모든 것은 공기 속으로 녹아 사라지고, 우파조차도 상대주의적으로 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신용을 잃은 존 버치(John Birch) 분파에서만 발견되었던 급진적이고 음모적인 사유의 반체제적 경향이 보수의 주류가 되어 버렸다.

 

틀림없이 권위의 위기는 양날의 칼인데, 그것은 예측 불가능하고 때때로 위험한 결과를 낳았다. 그것은 한편으로 만연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정치적 무관심을 부추겼고, 다른 한편으로 활발한 페미니즘적 논쟁과 청년 활동주의를 부추겼다.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믿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 모두를 어느 시점에 불편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본질적으로 불건전하지는 않고, 어느 정도까지 우리는 선한 것들을 악한 것들과 함께 받아들여야 하며 혼돈을 헤쳐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반예방접종주의자들을 조롱하고 그들의 불안과 당혹감을 기후 부인이라는 기업의 가짜 미끼와 융합하는 것은 권위의 위기가 기반을 약화시킬 수 없는 중도 자유주의적인 의미의 일시적인 보루를 세우려고 하는 시도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말했듯이, 이 위기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중요한 사회적 제도―정부, 군대 그리고 경찰, 종교, 스포츠 그리고 고등 교육, 대기업과 금융 부문―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서 부패했거나 손상된 것으로 간주되어 버린, 환멸이 깊어가는 시대의 자연적이고 불가피한 결과이다. 그런 제도들에 대한 집단적인 신뢰 상실―니체의 신의 은유적 죽음―은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으로 하여금 침묵의 서약을 깨고 귀중한 비밀 문서들을 갖고서 홍콩으로 탈출하게 만들었고, 수십 년 전에 학대를 겪은 성인들로 하여금 존경받는 성직자들과 사랑받는 육상 코치들에 대해 폭로하게 만들었으며, 그리고 수천 명의 청년들로 하여금 흑인 생명은 중요하다고 천명하기 위해 거리에 나서도록 만들었다.

 

여러분과 내가, 예방접종의 위험성에 관한 제니 매카시(Jenny McCarthy)의 주장 내지는 기후 변화는 실제적이지 않거나 최소한 인간들에 의해 초래되지 않았다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미합중국 상원의 모든 공화당 의원의 스펙타클에 의해 구역질이 나게 될 가능성이 큰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런 일들의 일부 또는 전부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대단히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앞에서 내가 말했듯이, 나는 그런 쟁점들이 심각함의 견지에서 전혀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나는 쿠이 보노(Cui bono), 즉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라는 고전적 의문이 매우 상이한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한다. 매카시와 그녀 일가는 권고 서적이나 무가치한 보조식품 등을 팔러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석유 회사와 대형 공해 기업을 위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거나, 또는 단기적 이윤과 행성의 생존을 교환하고 있지는 않다. 예방접종을 시키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덜 극적인 형태로 나타나지만, 사실상 널리 공유되고 있는 불신과 혼동으로 인해 악마화되고 있는 어머니들이다.

 

좋든 나쁘든 간에, 최소한 기후 부인과 백신 논쟁은 공적 담론의 전면에 놓여 있다. 수많은 형태들의 권위는 여전히 은폐되어 있거나 신중하게 보호받고 있다. 나는 자신이 수 년 동안 CIA가 제공한 이야기들을 발표했다는 전직 독일 신문 편집자의 최근 주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데, 지금까지 그 이야기는 미합중국 매체에 의해 전적으로 무시당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리스의 새로운 정부가 있는데, 그것은 유럽에서 전지구적 금융 기관들에 의해 부과된 긴축 재정 체제에 직접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첫 번째 정부이다. 그것은 우리 시대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을 정치적 및 경제적 대치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분명히 보도되었는데, 흔히 "워싱턴 합의"라고 불리는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위험에 처해 있지 않으며, 아테네의 어리석은 급진파가 성장하여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약을 복용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말함으로써 독자들을 안심시키도록 투명하게 고안된 방어적이고 생색내는 논조로 보도되었다.

 

권위의 본성에 관한 비판적 사고 덕분에 우리는, 대단히 많은 대역이 소수의 백신 미치광이들을 조롱하는 것으로 가득차 있는 반면에, 그런 이야기들이 왜 기업 관련 기사들의 독자들에게 비가시적이거나, 또는 지루한 정책 문제로서 가공되는지 기이하게 여기게 된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주류 의학에 관한 진정한 불확실성을 느끼는 사람들을 학습 부진 아동으로 취급하는 것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고, 가톨릭 교회나 전미 풋불 리그를 의심하는 것은 좋지만, 과학적 세계의 명문 기관들을 의심하는 것은 나쁘다고 단언하는 것은 터무니없다는 점을 인식하게 만들 것이다.

 

방법과 과정으로 간주되는 과학은 긴 여정을 거치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 좋은 대답들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및 역사적 제도로서―다시 말해서, 권위의 원천으로서―의 과학은 전적으로 다른 문제이며, 여기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이야기이다. 과학은 수명을 연장시켰고 질병을 치료하였고 농업을 개선한 한편으로, 과학은 우생학과 터스키기(Tuskegee) 실험과 히로시마와 치클론 B(Zyklon-B) 그리고 지구 표면 전체와 모든 지구 생명체의 육체들에 퍼져 있으며 그것들의 장기적인 효과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렇게 근사해 보이지는 않는 수많은 놀라운 살충제와 제조체와 방부제와 플라스틱을 가져다 주었다.

 

과학에 대한 신뢰, 설마. 과학을 의심하는 것은 현대의 비판적 사고의 긴급하고 필요한 양태이고, 그래서 반예방접종주의자들이 제기한 의문들은 전적으로 정당하다. 당신은 내 아이의 육체에 무엇을 주입하고 있는가? 그것은 안전하며, 그리고 필요한 것인가? 이것으로 누가 떼돈을 벌고 있으며,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 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심지어 그것을 넘어서, 당신이 내게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신뢰할 수 있는가? 내 아이들은 모든 예방접종을 받았으며, 그리고 나는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소수의 오래된 일화와 결함이 있는 증거와 음모론적 이데올로기를 결합하여 잘못된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믿는다. 최근에 내가 알게 되었듯이, 이것은 공중 보건의 불행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의심을 못마땅해 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나는 많은 부모들을 대변하는데, 나도 그런 의심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백신 쟁점과 권위의 총체적 위기 둘 다의 핵심에 놓여 있는 마지막 의문―"지금까지 거짓말을 들었는데도, 왜 내가 당신을 신뢰해야 합니까?"―은 여전히 내게 때때로 날카로운 통증을 유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