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자연과 문화 그리고 과학기술의 교차로에서 바라보는 사물/객체의 풍경

레비 브라이언트: 오늘의 에세이-실재론과 구성주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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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30.

 

실재론과 구성주의 1

Realism and Constructivism 1

 

―― 레비 브라이언트(Levi Bryant)

 

페이스북 상에서 내 친구 칼 삭스(Carl Sachs)는 사회적 인식론에 대한 공감을 표시하며 사회적 구성주의자인 동시에 실재론자인 것이 가능한지 궁금하게 여긴다. 판명되듯이, 이것은 여태까지 나도 고투를 벌인 쟁점이다. <<객체들의 민주주의>>의 서론에서 진술하듯이, 내가 바라는 것은 사회적 구성주의 입장들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관주의적 사유 틀과 실재론 둘 다를 위한 여지를 만들 만큼 충분히 정교한 틀을 구축하는 것이다. 후속 작업에서 나는 "보로메오 비판 이론(borromena critical theory)"이라는 꽤 우아하지 않은 술어로 이것을 가리킨다. 논리학의 벤 다이어그램과 함께 라캉의 보르메오 매듭이라는 자원에 의존하여 나는 자연, 기호 그리고 현상학적 경험 사이의 교차 영역과 분기 영역들을 생각하려고 시도했다. 나는 "자연"이라는 술어를 동원하는 것의 위험을 알아채고, 그래서 라투르 등에 의해 신중하게 비판받겠지만, 원소 원자, 항성, 폭풍, 질병 등과 같은 것들을 가르킬 더 나은 술어를 전혀 찾아낼 수 없었다. 위의 도표를 일단의 견고하고 변함없는 법주들이 아니라 불완전한 교수법적인 것으로 간주하자. 중요한 조건을 붙여 대충 말하자면, 자연이라는 범주는 라캉의 실재계에 해당하고, 기호(문화)라는 범주는 라캉의 상징계를 가리키며, 현상학적 경험이라는 범주는 라캉의 상상계를 가리킨다. 나는 이 세 가지 체제가 어떻게 얽혀 있고, 서로 수정하며, 분기하는지에 관심이 있다. 여기서 나는 벤 다이어그램의 모든 복잡한 사항―그것들은 매우 간단하고, 그래서 한 시간 정도면 사용법을 익힐 수 있지만―을 설명할 수 없지만, 이 다이어그램과 관련된 멋진 것은 그것 덕분에 우리는 상이한 범주들 사이의 관계들을 시각화하여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놓치거나 간과할 가능한 관계들을 식별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벤 다이어그램 덕분에 우리는 일단의 시각적 관계들을 통해서 범주들이 어떻게 겹치고 분기하는지 식별할 수 있게 된다. 세 개의 원으로 구성된 벤 다이어그램은 7개의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인식하자(왼쪽 그림). 무언가가 범주 S에 속하는 영역 1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범주 P와 M의 외부에 존재한다. 이것은 전적으로 관계를 맺지 않은 라뤼엘(Laruelle)의 실재계를 표상하는 멋진 방식일 것이다. 무언가가 영역 2에 존재한다면, 그것은 S와 P 사이의 관계를 공유하는데, 이 두 체제 사이에 교차 영역이 존재한다. 과학에서 끈 이론이 여기에 놓여질 것이다. 자연에 관한 어떤 것들을 잠재적으로 설명하는(여전히 가설로 남아 있다) 끈 이론의 수학(상징계)이 존재하지만, 끈 이론의 n차원 공간은 현상학적 경험 내에 어떤 상관물도 갖추고 있지 않은데, 우리는 11차원을 상상(11차원의 영상을 제공)할 수도 없고 경험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무언가가 영역 5에 존재한다면, 범주 S, P 그리고 M 사이의 교차 영역이 존재한다. 이것은 우울증 같은 질환과 관련된 경우일 것이다. 물론 우울증은 모든 종류의 현상학적 상관물들을 갖추고 있는데, 즉 한 가지 체험의 구조이다. 어떤 상징적 체계들(문화)이 우울증에 대한 체험을 만들어내는 신경학적 결과들(자연)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또는 거꾸로). 이런 노선을 따라 나는, 사변적 실재론과 반실재론/상관주의/사회적 구성주의 사이의 논쟁이 여태까지 부실하게 제기되었고, 그래서 간과된 가능성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벤 다이어그램을 사용하여 한꺼번에 두 개의 범주만을 살펴볼 것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 우리는 사회적 구성주의/반실재론과 실재론의 입장들을 쉽게 도표로 나타낼 수 있다.

 

강한 사회적 구성주의/반실재론/상관주의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벤 다이어그램을 사용할 때 우리는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는 곳을 보여주기 위해 어떤 영역에 빗금을 친다. 그러므로 왼쪽의 다이어그램은 "자연의 어떤 것도 문화가 아닌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기서 자연은 전적으로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원자, 항성, 바이러스 등과 같은 존재자들이 문화와 독립적인 어떤 실재성도 갖추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동등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문화가 사라지게 된다면, 이런 존재자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테제를 신봉하는 셈일 것이다. 람세스 2세가 결핵으로 사망했다고 말하는 것은 시대 착오적인 것이라고 주장한 "존재하는 객체와 부재하는 객체의 부분적 존재성에 관하여(On the Partial Existence of Existing and Nonexisting Objects)"라는 논문과 파스퇴르 이전에는 미생물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제안하는 "사물들의 역사성(The Historicity of Things)"라는 논문에서 라투르는 그런 입장에 매우 가깝다. 여기서 "존재"는 문화가 상징화하고 믿고 있는 것과 동일시되는 듯 보인다.

 

강한 실재론적 입장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테제는 실재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 사이에 교차점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재적인 것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 그것이 상징화되는 방식, 사람들이 그것에 관해 알고 있는지 여부 등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서 결핵은 누군가가 그것을 알고 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그리고 문화가 특수한 일련의 증상들에 관해 갖추고 있을 어떤 이론과 무관하게 존재한다. 흔히 실재론자와 반실재론자가 동일한 것에 관해 말하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반실재론의 한 가지 판본, 강한 판본은, 세계에 관한 상이한 이야기들이 있을 뿐이고 이 이야기들 모두가 동등한 타당성을 갖는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것은, 모든 것이 사회적 구성물이라고 주장하는 존재론적 반실재론일 것이다. 여기서 결핵에 관한 세균 이론은 결핵에 관한 체액 이론이 갖추고 있는 만큼 존재론적 정당성을 갖추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증상들이 체험에 주어지기 때문에 결핵에 관한 세균 이론과 체액 이론 둘 다 일단의 공통 증상들을 인식할 것―존재론적 반실재론은 부지불식간에 일종의 흄적 실증주의에 기반을 두는 경향이 있는데, 즉 그것은 감각에 주어지는 것에 한정된다―이지만, 전자의 인과적 설명이 후자의 인과적 설명보다 더 좋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것들은 두 가지 상이한 문화적 세계를 구성할 뿐일 것이다. 여기서 실재론자는 이런 이론들이 잠재적으로 틀릴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여전히 강한 반실재론 진영에 속하는 더 온건한 반실재론은 대신에 한 가지 인식적 주장을 제기할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방식, 개념을 구상하는 방식 등과 별개로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바라보기 위해 우리 문화를 결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우리 문화 속에 그리고 우리 문화를 통해서 주어지는 대로의 세계에 관해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균(또는 체액)이 문화와 별개로 세계 속에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런 인식적인 강한 반실재론은 이런 이론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면 둘 다가 옳을 것이라고 인정할 것이지만, 세계가 실제로 이런 식으로 존재하는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문화 또는 언어를 결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강한 실재론자는 이런 입장을 공유할 수도 있고 공유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가 이런 입장을 거부하며 우리가 이 이론 또는 저 이론이 옳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면, 그는 우리가 이것을 정확히 어떻게 알 수 있는지에 대한 인식론적 설명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은 그렇다치고, 우리가 이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실재론자가 반드시 "초월적 견해(view from nowhere)"(강한 반실재론자들이 애호하는 응수)을 신봉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가치가 있다. 실재론자는 지식이 모든 종류의 방식으로 매개되고, 심지어 철저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는 반면에, 때때로 우리는 문화와 독립적인 무언가의 존재의 특징들을 파악할 수 있다고 여전히 주장한다. 이런 논쟁은 종식될 수 없고, 어떤 시점에서 수확이 체감된다. 앞서 말한 것에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두 입장 모두 보편적 술어들로 진술된다는 점이다. "모든 자연은 문화이다". "어떤 자연도 문화가 아니다". 양에 있어서 특수한 명제들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세계에 대한 더 흥미로운 구체적인 분석들을 산출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자연은 문화가 아니다". "어떤 문화는 자연이 아니다". 그리고 "자연과 문화의 혼성물들이 존재한다". 나중에 나는 이것에 관해 말할 것이 더 있지만, 이런 명제들―모두가 동시에 참일 수 있는―에 대한 다이어그램들은 다음과 같다.

 

어떤 자연은 문화가 아니다.

 

이것은, 예를 들면, 결핵 세균이 사회적 구성물 또는 발명품이 아니라는 테제이다. 그것은 발견되기 전에 존재했었다. 그것은 인류가 사라진 이후에도 존재할 것이다. 그것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존재자이다. 이 테제가 이 세균의 발견은 모든 종류의 사회적 매개를 포함하지 않았으며 어떤 사회적 문제들의 결과로서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게다가, 이 테제가 우리로 하여금 결핵이라는 질병과 아무 관계도 없는 결핵을 둘러싼 모든 종류의 문화적 담론들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부인하기를 전혀 요구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 테제는 이 세균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적 존재자라고 말할 뿐이다. 요약하면, 세균 이론이 옳고(그것이 옳다면) 체액 이론은 틀렸다. 여기서 우리는 때때로 이론의 세계에서 만나게 되는 "상이한 존재론들"을 갖춘 "다수의 세계들"에 관한 이야기를 폐기한다. 문화들은 상이한 것들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문화는 자연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다음의 도식에 딱 맞는 현상들이 존재한다. 이것들은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문화적 구성물일 것이다. 돈의 가치, 이데올로기, 신, 국가 정체성 등이 이 범주에 속하는 듯 보인다. 그것들은 그것들이 명명되고 그런 명명에 의해 존재하게 되는 사회와 별개로 존재할 수 없다.

 

어떤 존재자들은 혼성물이다.

 

모든 것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관계는 혼성물일 것이다. 혼성물은 문화의 개입이 없다면 자연 속에 존재할 수 없는 존재자와 존재 형태이지만, 독자적인 실체적 존재성도 갖추고 있다. 그런 존재자의 일례는 인공 원소 원자들일 것이다. 이런 존재자들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구성된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독자적인 실체적 존재성을 갖추고 있다. 식생활도 비슷한 듯 보인다. 한편으로, 식생활은 금기 음식, 우리가 먹어야 하는 음식, 문화적 정체성 등을 규정하는 상징적 코드이다. 다른 한편으로, 음식은 육체와 관련된 화학을 갖추고 있다. 유전체는 청사진이 아니라 일단의 경향들이고 잠재적 경향들의 장은 다양한 상이한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발생 체계 이론가들(진화와 발생에 관한 이론가들뿐 아니라)이 옳다면, 식생활은 유전체를 상이한 방식으로 실현하는 것의 결과로서 표현형의 층위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상이한 육체를 문자 그대로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식생활은 그저 문화적 습관 체계가 아니라 육체의 바로 그 물질성(자연)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기서 상징적인 것은 그저 상상적 지형도가 아니라 물질적인 것을 작성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꽤 시시하고 매우 단순한 듯 보인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이 큰 복잡성을 약속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원들이 우리로 하여금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다양한 상이한 비판적 틀을 제대로 다루는 비환원적 방식으로 사회적 조립체들의 거대 복잡성일 것이라고 나는 희망한다. 첫째, 이런 보로메오적 틀로 우리는 절대적인 것들의 세 가지 유형을 얻게 된다. 절대적 자연, 절대적 기호, 절대적 상상. 이것은 서로 독립적인 각각의 세 가지 범주이다.

 

그 다음에, 둘째, 이런 저런 요소가 지배적이거나 나머지 다른 요소들을 과대결정할 수 있는 다양한 조합을 얻게 된다. 자연-기호, 기호-자연, 자연-상상(여기서, 예를 들면, 체험할 수 없는 방식으로 체험을 구성하는 신경학에 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상상-자연(여기서 우리는 탈인간적인 것 또는 다른 탈인간 생명체들의 경험 세계들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세 가지 범주가 상이한 지배 질서 속으로 서로 침투하는 세 가지 삼자 관계가 있다. 자연-기호-상상, 기호-자연-상상, 상상-기호-자연 등. 관계들의 각 집합은 다른 유형의 분석을 필요로 할 것이고 상이한 현상 집합을 가리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