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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렌 스트로슨: 오늘의 에세이-의식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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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4.

 

의식 신화

Consciousness myth

 

―― 갈렌 스트로슨(Galen Strawson)

 

1790년에 칸트가 지적했듯이, "많은 철학사가들이, 그들의 모든 의도된 찬사와 더불어,...과거 철학자들에게...넌센스에 불과한 것을 귀속시킨다." 지성사는 동물원인데, 일어난 것과 사람들이 말한 것과 관련된 신화들의 동물원이다. 과거를 흐릿하게 하는 데 시간이 흐를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런 신화화가 비교적 느린 과정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이십 년 전에 한 가지 즉각적인 신화, 즉 장기적인 무시 후에 1990년대 중반에 철학에서 의식이라는 주제에 대한 관심의 극적인 부활과 관련된 신화가 탄생했다.

 

이제 그것을 뿌리째 뽑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것은 일본 칡이나 러시아 담쟁이덩굴처럼 퍼져 버렸다. 부활을 겪었다고 믿고 있으며 그것의 옹호자들 가운데 그다지 높지 않더라도 어떤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사람들(특히 당대의 대학원생들)을 비롯하여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관여하고 있다. 그것은 어마어마한 누적적 특성으로 그 신화를 정착시킨 급상승하는 인터넷에서 울려 퍼졌다.

 

심리학의 경우에 부활 이야기는 약간의 진실을 담고 있다. 그것의 시기와 관련된 의심들이 존재한다. 뛰어난 기억심리학자 엔델 털빙(Endel Tulving)은 그것을 1980년대에 위치시킨다. 1985년에 털빙은 수많은 다른 저자들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적었다. "최근에 또 다시 의식이 심리학의 중요한 문제인 것으로 선언되었다." 행동주의적 심리학이라는 거대한 댐은 균열이 가서 물줄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것은 파열되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1990년대에 심리학에서는 한 가지 해방의 물결도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소수의 저항자들이 존재했(그리고 여전히 존재하)지만, 의식에 대한 논의는 칠십 년 동안의 주변화 이후에 완전히 지위을 회복했다.

 

그렇지만, 철학의 경우에 부활 이야기는 신화일 뿐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믿음과 "지향성"에 관한 문제들에 특히 집중했으며 의식에 관해서는 비교적 별로 말할 것이 없었던 소규모이지만 현대적인 마음의 철학자들 집단이 있었다. 그들의 대단히 편협한 견해가 그 신화의 기원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의식의 문제, 즉 "어려운 문제"는 그 시기 전체에 걸쳐서 여전히 중요한 문제였다. 그것은 철학이라는 분과학문 전체의 핵심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다.

 

의식의 문제는 1640년대 데카르트의 작업 시기 무렵(근대 시대)에 매우 특정한 이유 때문에 처음 확립되었다. 빠르게 진화하고 있던, 물질에 관한 기계론적 미립자 이론 덕분에 물질은 어쨌든 의식을 갖출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실체가 결코 아니라는 점이 분명한 듯 보이게 되었다. 서로 부딪치는, 상이한 모양과 크기들을 갖춘 작은 조각들이 그런 종류의 일을 결코 행할 수 없을 것이다. 1714년에 라이프니츠는 유명한 이미지로 그 생각을 포착했다. "의식은...기계적 원리, 즉 모양과 운동으로 해명될 수 없다. 구조 덕분에 생각하고, 감지하며, 의식을 갖추게 되는 기계를 상상한다면, 우리는 마치 방앗간처럼 그것의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식으로 확대된 기계를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고 가정하자. 기계의 내부를 방문하면 우리는 서로 추동하는 부품들 외에는 어떤 것―의식적 상태를 설명할 수 있는 어떤 것―도 결코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몸-마음 문제"(물리적 실재에는 물질 이상의 것이 존재하더라도, "물질-의식 문제"가 더 좋은 이름이다)이다. 그 당시에 홉스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의식은 전적으로 물질적이라는 관념에서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을 전혀 찾아내지 못했더라도, 그 문제는 십칠 세기에 확립되었다. 그 이후로 줄곧 그 문제는 철학적 논쟁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십칠 세기 후반을 뒤흔들었다. 그것은 데카르트의 전례를 좇아서 많은 사람들이 현재 철학자들이 "좀비"라고 부르는 것, 즉 의식은 없지만 외향적으로―그리고 아마도 내향적으로도―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생물체의 가능성에 관해 사색한 십팔 세기를 삼켰다. 1755년에 찰스 보넷(Charles Bonnet)은, 신은 "인간의 모든 외면적 활동과 내면적 활동을 완벽하게 흉내낼 자동 장치를 창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769년에, 로크를 좇아서, 보넷은 종교적 근거에서 유물론에 저항하는 사람들에 맞서서 멋진 주장을 펼쳤다. "도대체 누군가가 마음이 물질적이라고 증명한다면, 놀라기는 커녕 우리는 물질에 생각할 수 있는 역량을 부여할 수 있는 힘을 찬양해야 할 것이다."

 

물질이 어떻게 의식적일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처리하기 어렵다(흔히 사용되는 낱말이다). 그 문제는 굉음을 내며 유물론이 더 강력해진 십구 세기로 진입하였으며, 1838년에 다윈은, 1802년의 조르주 카바니스(Georges Cabanis)를 좇아서, 의식은 "뇌의 분비물"(이것은 인기 있는 이미지였다)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문제는 규칙적으로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라고 공표되었다. 그런데 점점 더 이것은, 의식이 물질적이라는 것을 의심하기 위한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물질의 궁극적 본성을 이해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의심하기 위한 이유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우리의 이해 능력과 관련된 이런 겸손은 또 다시 오래되었지만, 그것은 강력한 새로운 표현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이 의식의 신경적 상관물들에 관해 사색한 1870년대에 훌륭한 집단이 존재했다. 1872년에 위대한 독일 생리학자 에밀 뒤 부아 레몽(Emil Du Bois-Reymond)은 물질-의식 문제에 관한 그의 유명한 평결을 내렸다. "우리는 알지 못하고 또한 알지 못할 것이다(Ignoramus et ignorabimus)". 우리는 어떻게 물질이 의식적인지(확실히 그렇더라도) 알지 못하며, 그리고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1874년에 T. H. 헉슬리(Huxley)["동물이 자동 장치라는 가설과 그것의 역사에 관하여(On the Hypothesis that Animals Are Automaton, and Its History)"]와 W. K. 클리퍼드(Clifford)["몸과 마음(Body and Mind)"]는 우리 이해의 "엄청난 간극"에도 불구하고 의식이 전적으로 물질적이라는 것―내가 당신의 뇌로 지각하는 것이 정말로 당신의 의식 자체, 바로 당신이다"라고 클리퍼드는 적었다―은 합당한 의심을 훌쩍 넘어서는 것으로 간주했다. 같은 해에 존 틴달(John Tyndall)은, 1890년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암기하는," "지금까지 매우 자주 인용된 행운의 단락"을 포함한 그의 위대한 "벨파스트 강연"을 행했다.

 

뇌의 물리학에서 해당하는 의식의 사실들로의 이행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뇌 속에서 확정된 사유와 확정된 분자적 활동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점을 인정하자. 우리는 지성적 기관을 갖추고 있지 않으며, 추리 과정으로 우리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행할 수 있게 할 그런 기관의 어떤 흔적도 명백히 지니고 있지 않다.

 

벨파스트 강연은 잊혀진 지 오래이다. 물질-의식 문제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또 다시 굉음을 내며 이십 세기로 진입했으며, 이십일 세기에도 계속해서 약해지지 않고 있다. 나는 지난 백 년에 매달릴 것이다.

 

1913년에 미합중국 심리학자 J. B. 왓슨(Watson)은 심리학의 행동주의를 위한 선언을 발표했다. 처음에 그것은 순전히 방법론적인 접근 방식이었다. 그것은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주장하지 않았다. 그것은 의식과 관련하여 본격적인 과학을 수행할 수 없다―내성적 보고에 의해 전달되는 대로의 의식에 관한 데이터는 과학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래서, 물론, 의식이 존재하더라도, 실험실에서는 그것을 무시하고 행동 같은 완전히 공개적으로 관찰 가능한 것들을 연구하는 것이 더 좋았다.

 

당시에 이것은 매우 유익한 운동이었다. 그것은 여전히 유용하다. 말하기 유감스럽게도, 일부 철학자들이 그것에 개입하게 되었을 때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훌륭한 방법을 취하여 터무니없는 형이상학으로 변화시켰다. 정교한 이론적 부속물로 그들은 의식이란 실제로 행동과 행동에 대한 성향들의 문제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이것은 철학적 행동주의였다(심리학자들이 결코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더라도). 그것은 1920년대에 개시되었는데, 최초의 전선(솔직한 물질-의식 문제)이 여전히 매우 활발했지만 그것은 철학과 과학에서 벌어진 의식에 관한 논쟁의 두 번째 전선을 형성했다. 왓슨이 원고로 읽은 <<마음의 분석(The Analysis of Mind)>>(1921)에서 이미 버트런드 러셀(Burtrand Russell)은 행동주의자들이 너무 멀리 가지 않았는지 우려했다. <<진화적 자연주의(Evolutionary Naturalism)>>(1922)에서 선도적인 미합중국 철학자 R. W. 셀라스(Sellars)는 "의식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부인하는" 행동주의적 "경향"을 걱정했다.

 

철학적 행동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의식의 존재를 부인한다는 것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들은, 의식이란 행동과 행동에 대한 성향들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함에 있어서, 의식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물론, 의식이란 행동과 행동에 대한 성향들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의식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의식을 소거하는 것―정식으로 "소거주의"로 알려지게 된 것을 승인하는 것―이며, 그리고, 놀랍지 않게도, 약간 분별이 있는 모든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처음부터 곧장 이의를 제기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영국의 일류 학자들―러셀, G. E. 무어(Moore), A. N. 화이트헤드(Whitehead), 아서 에딩턴(Arthur Eddington), C. D. 브로드(Broad) 그리고 새뮤얼 알렉산더(Samuel Alexander)―이 있었다. <<마음 그리고 자연에서의 마음의 지위(The Mind and Its Place in Nature)>>(1925)라는 두껍고 매우 영리한 책에서 브로드는 의식의 실제 문제를 다루기 전에 철학적 행동주의를 반박하는 데 귀찮게 시간을 소요하는 것에 대해서 사과했다. "나는 행동주의에 관한 이 논의에서 바퀴 위의 나비를 부순다고 비난받을 것이다." 행동주의는 어리석은 이론이라고 그가 말하는데, 여기서 "내게 '어리석은' 이론이란 누군가가 직업적으로 이야기하거나 글을 쓰고 있을 때에는 견지될 수 있지만, 정신 병원의 피수용자만이 일상 생활로 옮기는 것에 관해 생각할 이론"이다. 그런데 "그들 스스로가 너무 혼동하여 자신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학식 있는 사람들에 의해 대단히 전문적인 술어들로 제시되기 때문에 사실상 터무니없는 이론이 사고 방식이 단순한 사람들에 의해 수용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브로드는 어떻게 진행될지 알고 있었는가("논리적인" 행동주의자들이 관여할 참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책 서문에서 그는 "비트겐슈타인 씨의 대단히 싱코페이션된 피리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내 젊은 친구들의 철학적 장난을 아버지와 같은 눈으로 관찰할, 스스로 마련한 휠체어로 은퇴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런데, 현재의 요점은 바로 의식의 문제가 중요했다―새로운(즉, 1925년 이후의) 양자역학에서 양자역학적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의식에 대한 언급의 필수불가결성에 관한 주장들의 인기 상승과 전적으로 무관하게―는 점이다. 추정된 그 작업은 여전히 데카르트 시대에 규정된 작업이었는데, R. W. 셀라스의 표현대로, "유기체 속 의식의 현존을 지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행동주의적 논쟁과 독립적으로, 러셀(<<물질의 분석>>, 1927), 에딩턴(<<물리적 세계의 본성>>, 1928), 화이트헤드(<<과정과 실재>>, 1929) 등은 올바른 철학적 접근 방식을 추진하고 있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부 철학자들(예를 들면, 대니얼 데닛)이 그렇듯이, 여러분은 의식의 존재를 터무니없게도 부인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인류의 역사 전체에서 여태까지 견지된 가장 어리석은 견해―브로드의 술어를 차용하면―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여러분은 우리가 물질의 본성에 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에 관한 의문을 제기한다. 1940년에 오딘(Auden)이 진술했듯이, "물질"은 사랑처럼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기묘하"다는 점을 곰곰히 생각한다. 여러분은 물질의 경우에 물리학이 우리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존재한다―존재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한다. 여러분이 이것이 사실상 대단히 절제된 표현이라는 점을 이해한다. 물리학의 수학적으로 표현 가능한 구조와 별개로 고찰할 때, 사물의 궁극적인 내재적 본성에 관해 물리학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1928년에 에딩턴이 말했듯이, '이건 우리 노래 선율이잖아. 희극 무명 씨 그림이 연주하는.'라는 대사에서 트린쿨로(Trinculo)가 근대 물리학을 언급하고 있었을 것이다. "물질에 관한 구체적인 정의를 바라다면, 물리학을 참조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그는 말했다. 물리학은 "물질의 파악할 수 없는 내부 본성"에 닿을 수 없다. 1927년에 러셀은 마찬가지로 공감했다. "물리학은 수학적인데, 우리가 물리적 세계에 관해 매우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매우 적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것은 그것의 수학적 특성들에 불과하다. 나머지에 대해서 우리의 지식은 부정적이다." 1960년대에는 이런 단순한 요점이 거의 완전히 잊혀졌다.

 

계속해서 1930년대를 다루자. 1935년에 전미 철학협회의 회장 연설에서 J. B. 프래트(Pratt)는 "[몸-마음 문제, 즉 의식의 문제를] 풀려고 시도하는 글이 대단히 많이 작성되었거나 이런 논의를 터무니없는 에너지 낭비라고 간주하는 사람들이 누구도 그것에 관해 시간을 전혀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고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데 대단히 많이 시간을 소비한 시기는 결코 존재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철학자, 심리학자, 과학자 그리고 신학자들이 두 전선, 즉 오래된 물질-의식 전선과 새로운 행동주의적 전선에 똑같이 개입했다. 그 논쟁은 1940년대로 흘러들어갔다. (비트겐슈타인이 고통에 대한 감각은 "무언가가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다"라는 결론에 이른 것은 1944년일 것이다.)

 

모두가 패배하지는 않았다. 1948년에, 이십 세기 중반의 선도적인 "조작주의" 심리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E. G. 보링(Boring)은 "의식은 여러분이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라는 올바른 상식적 견해을 옹호했다. 그런데 1950년에 심리학자이자 철학적 행동주의자인 브라이언 패럴(Brian Farrell)은 보링의 주장을 "희극적이고 병적인 진술"인 것으로 판정했다. 의식에 관한 일반적인 관념은 "서양 세계로 문화 변용을 일으키고 있는 과정에 있는 원시 공동체에서 "마법" 같은 신비한 관념을 닮은 것이라고 증명될 수 있다"고 패럴은 말했다. 운이 좋게도, 과학이 "그것을 사실상 "비실재적"이거나 "부재하는" 것으로 부정할 직전에 이르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지 않았다. 1950년대에 행동주의를 둘러싼 전투는 과학, 철학 그리고 심리학에 걸쳐 여전히 전개되고 있었는데, 두 권의 책, 즉 의식의 존재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을 "기계 속의 유령(ghost in the machine)"의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조롱하는 듯 보이는 길버트 라일(Gilbert Ryle)의 <<마음의 개념(The Concept of Mind)>>(1949)이라는 책과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1953)라는 책에 의해 격렬하게 재활성화되었다. 의식의 문제는 여전히 중요했다. "기계 속의 유령"이라는 구절은 유명해졌다. 삼십오 년 후에 과거를 회상하면서 제리 포더(Jerry Fodor)는 "내가 대학원생이었을 때[1956-9] 마음의 철학은 두 가지 주요한 문제, 즉 몸/마음 문제와 다른 마음들의 문제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다른 마음들의 문제는 주로 비트겐슈타인적 견지에서 논의되었지만, 의식의 문제가 역시 그것의 핵심에 놓여 있었고, 그래서 물질-의식 문제는 계속해서 원래 형식으로 논의되었다.

 

그것은 1950년대 중반에 "의식은 뇌 과정인가?(Is Consciousness a Brain Process?)"(1956)라는 U. T. 플레이스(Place)의 논문과 "감각 작용과 뇌 과정(Sensations and Brain Processes)"(1959)이라는 J. J. C. 스마트(Smart)의 논문―1958년(슈뢰딩거의 <<정신과 물질(Mind and Matter)>>이 발표된 해와 같은 해)에 발표된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The Mental and the Physical)"이라는 허버트 파이글(Herbert Feigl)의 긴 에세이와 함께―으로부터 새로운 에너지의 거대한 활력을 얻게 된다. 세 가지 모두 마음과 뇌가 동일하다는 "동일론(identity theory)"의 판본들을 제안했다. 정신적 사건은 신경적 사건이다. 그것은 매우 오래된 뉴스였지만, 1960년대와 그 이후에 걸쳐 "오스트레일리아 자연주의(Australian materialism)"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진 의식에 관한 논의들의 거대한 분출을 촉발했다. 1967년에 파이글은 "몸-마음 문제들이 [행동주의적 쟁점들과 대조적으로] 다시 한 번 대단히 적극적이고 지성적인 철학적 논의들의 전면에 나와 있다"고 적었다. 사실상 많은 참여자들이 일반적으로 약간 은밀한 형식으로 어떤 형태의 소거주의를 신봉했는데, 즉 의식의 존재를 부인했다(파울 파이어아벤트와 리처드 로티는 더 솔직했다). 그런데 이것은 그 문제의 중요성을 거의 감소시키지 못했다. 1960년대 "기능주의(functionalism)"의 신속한 등장도 그것의 기반을 약화시키지 못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 문제의 중요성이 증가했다. 마음의 철학에 있어서 한 가지 신조로서의 기능주의는 그저 전형적이거나 특징적인 원인과 결과들에 대한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어떤(또는 모든) 유형들의 정신적 상태나 사건의 전체 본성이나 본질을 포착할 수 있다는 견해이고, 그래서 그것 역시 궁극적으로는 의식에 관한 소거주의의 한 형식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970년대와 1980년대―기능주의가 가장 유행한 시기―가 의식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 잃어버린 십 년대의 주요한 후보들이지만, 그 시기들은 사실상 그런 것이 전혀 아니다. 핵심적인 쟁점들 가운데 하나이자 거의 틀림없이 중요한 쟁점(확실히 이것이 1972년에 내가 철학을 택했을 때 내게 비친 모습이며, 그리고 확실히 어떤 다른 쟁점도 더 중요하지 않았다)이 의식에 관해서 행동주의보다 더 만족스러운 설명을 제공할 수 없는 기능주의의 무능력이었기 때문이다. 도널드 데이비슨(Doanld Davidson)의 "정신적 사건들(Mental Events)"(1970)과 솔 크립키(Saul Kripke)의 "동일성과 필연성(Identity and Necessity)"(1971)은 많은 논의를 촉발했다. 1974년에 "박쥐의 입장에서 경험한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What is it like to be a bat?)"라는 의식에 관한 토머스 네이글(Thomas Nagel)의 유명한 논문이 발표되었고 즉각적으로 논의의 초점이 되었다(그것은 철학 전체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논문들 가운데 하나이다). 같은 해에 "좀비 대 유물론자(Zombies vs Materialists)"라는 로버트 커크(Robert Kirk)의 논문이 발표되었으며, 좀비에 관한 이야기가 곧 도처에 나타나게 되었다. 쇠퇴하는 러셀적 기준을 다시 제기한 "고정 지시자와 마음-뇌 동일성(Rigid Designators and Mind-Brain Identity)"라는 그로버 맥스웰(Grover Maxwell)의 논문이 그랬듯이, "기능주의와 감각질(Functionalism and Qualia)"(1975)라는 논문에서 기능주의 속에서 의식에 대한 장소를 찾아내고자 한 시드니 슈메이커(Sydney Shoemaker)의 독창적이지만 실패한 시도는 그 쟁점의 중요성을 더욱 더 강조했다.

 

그래서, 같은 해에 네드 블록(Ned Block)이 지적했듯이, "미합중국 공군이 매우 많은 베트남 마을과 맺은 관계를 감각질과" 맺는 1978년 데닛의 "'의식'을 정보 흐름 심리학에 끼워 맞추려고 한 시도"―그는 감각질을 구하기 위해 감각질을 파괴한다―를 비롯하여 의식을 "환원"시키려는(사실상 제거하려는) 모든 시도도 그랬다. 기능주의와 관련된 문제는, 그것이 의식이 없는 산물들―"현상학적 경험"이 전혀 없는 산물들―이 의식을 갖춘 산물들과 구별할 수 없게 (행동하는) 한에 있어서 그것들을 의식을 갖춘 것으로 간주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갈피를 못 잡은 몇몇 영혼들은, 이것은 "계산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1950)라는 논문의 "이미테이션 게임(Imitation Game)"에 관한 서술에서 앨런 튜링(Alan Turing)에 의해 제기된 쟁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튜링이 언제 기계를 생각하는 것으로 서술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시험을 제시할 때, 그는 명시적으로 의식에 관한 의문을 무시했다.

 

1979년에 토머스 네이글은 그 어려움을 강력하게 재서술하였는데, "범심론(Panpsychism)"이라는 논문(레베카 골드스타인의 영향을 인정했다)에서 그는 "범심론은 몸-마음 문제에 대한 서로 양립 불가능하고 완전히 수용할 수 없는 해결책들의 현재 목록에 부기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유명한 "중국어 방 논증(Chinese Room Argument)"을 포함하는 "마음, 뇌 그리고 프로그램(Minds, Brains, and Programs)"라는 존 설(John Searle)의 논문은 1980년에 발표되었는데, 그것은 어떤 종류의 의식도 경험할 수 없는 사물이 무언가를 이해한다고 정말로 말할 수 있다는 기능주의적 관념의 공허함을 예증했다. 이어서 1982년에 "부수현상적 감각절(Epiphenomenal Qualia)"라는 프랭크 잭슨(Frank Jackson)의 논문이 발표되었는데, 그 논문은 현재 "지식 논증(Knowledge Argument)"으로 알려져 있는 "검은색 방과 하얀색 방 속의 메리(Mary in the Black and White Room)" 이야기를 서술했다. 이 두 논문은 의식의 문제에 집중했다. 둘 다 1980년대와 1990년대―불가사의한 부활의 시기 직전과 이후―에 철학에서 가장 많이 논의된 논문들에 속했다. "표면적인 외양과 대조적으로, 대략 지난 오십 년 동안 마음의 철학에서 사실상 단 하나의 주요한 논의 주제가 있었으며, 그것은 몸-마음 문제이다"라고 1992년에 설이 진술했다.

 

1980년대에도 "유물론과 감각질: 설명적 간극(Materialism and qualia: The explanatory gap)"(1983)이라는 조셉 레빈(Joseph Levine)의 많이 논의된 논문이 발표되었는데, 같은 해에 탁월한 러셀적 통찰을 포함한 <<몸-마음 문제(The Mind-Body Problem)>>라는 레베카 골드스타인의 소설과 콜린 맥긴(Collin McGinn)의 <<주관적 관점(The Subjective View)>>이 출판되었다. 1984년에는 폴 처치랜드(Paul Churchland)의 <<물질과 의식(Matter and Consciousness)>>이 출판되었고, 1986년에는 네이글의 <<초월적 관점(The View from Nowhere)>>이 출판되었으며, 1989년에는 마이클 록우드(Michael Lockwood)의 <<마음, 뇌 그리고 양자(Mind, Brain & the Quantum)>>가 출판되었다. "의식에 관한 두 가지 개념(Two Concepts of Consciousness)"(1986)이라는 데이비드 로젠탈(David Rosenthal)의 논문도 의식에 관한 방대한 논의―산뜻하게 다른 종류의―를 불러 일으켰다. 그 논문도 루스 밀리컨(Ruth Millikan)의 "생물 의미론(biosemantics)"를 낳은 마음에 대한 전적으로 "자연주의적"인 해설로 의식을 편입시키려는 시도의 일부였지만, 그것이 분석 철학 내에서 논의의 세 번째 전선을 개방했다고 주장할 만하다.

 

출판의 흐름에는 쇠퇴가 전혀 없었다. 1989년에 맥긴은 "우리는 몸-마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Can We Solve the Mind-Body Problem?)"라는 생생하고 영향력 있는 논문에서 의식을 "몸-마음 문제의 난문"으로 불렀는데, 그 논문에서 그는 뒤 부아 레몽의 평결―우리는 알지 못하고 또한 알지 못할 것이다―이 옳다고 생각할 이유들을 제공했다. 같은 해에 나는 의식을 "몸-마음 문제의 어려운 부분"으로 불렀는데, 그 구절은 <<정신적 실재(Mental Reality)>>에서 반복되었다. 의식은 "몸-마음 문제의 유일한 어려운 부분이다...나머지는 쉽다".

 

이제 1995-6의 불가사의한 분수령에 이르렀는데, 이 시기에 대체로 마이클 타이(Michael Tye)의 <<의식에 관한 열 가지 문제(Ten Problems of Consciousness)>>와 함께 1995년에 출판된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의 <<놀라운 가설(The Astonishing Hypothesis)>>과 데이비드 차머스(David Chalmers)의 "의식의 문제에 용감히 맞서기(Facing up to the Problem of Consciousness)" 그리고 1996에 출판된 차머스의 <<의식적인 마음(The Conscious Mind)>> 때문에 철학자들이 의식의 문제를 알아차린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이 무렵에, 1990년대에는 이미 맥긴의 <<의식의 문제(The Problem of Consciousness)>>(1991), 데닛의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Consciousness Explained)>>(1991, 때때로 다정하게 <<의식을 무시하다(Consciousness Ignored)>>로 알려졌다), 오웬 플래너건(Owen Flanagan)의 <<의식을 다시 생각하다(Consciousness Reconsidered)>>(1992) 그리고 설의 "의식의 문제(The Problem of Consciousness)"(1993)가 출판되었다. 설의 논문에 앞서 <<마음의 재발견(Rediscovery of the Mind)>>(1992)라는 그의 책이 출판되었는데, 그 책은, 특히 "지배력을 깨뜨리기: 실리콘 뇌, 의식을 갖춘 로봇 그리고 다른 마음들"이라는 제목의 3장에서, 의식에 관한 상식적 실재론에 대해 통렬한 타격을 가했다. 서론에서 설명했듯이, 그는 부분적으로 지성적 고뇌에 의해 고무되었다. "표준적 저자들을 읽고 그들의 견해들을 학생들에게 설명하려고 시도할 때 나는, 내가 마음에 관한 단순하고 명백한 진리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거의 예외 없이 이런 저자들이 일상적으로 부인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암묵적으로 내지는 명시적으로, 다음과 같은 주장을 부인하는 것이 상당히 일반적이다. 우리는 모두 내면의 주관적인 정성적 의식 상태들을 갖고 있다."

 

그 다음에, 1990년대 전체에 걸쳐, 의식은 마음의 철학에서 중요한 주제였다. 새로운 열광이 있었지만, <<철학자들의 색인(The Philosophers' Index)>>에 수록된 모든 저널에서 "의식적"이라는 낱말과 "마음"이라는 낱말의 출현 빈도는 사실상 1960년대와 1990년대에 동일했고(각각 0.70과 0.73), 1970년대와 200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각각 0.82와 0.80).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지향(성)"이라는 낱말이 "의식적"이라는 낱말에 비해 급증했지만, 의식의 문제는 여전히 중요했다. "의식적"이라는 낱말은 1990년대에 "정신적"이라는 낱말에 비해 최저 수준에 이르렀고(1.1), 2000년대에 회복되었지만(1.36), 1960년대와 1970년대 수준으로 되돌아가지는 못했다(각각 1.58과 1.55).

 

이것들은 거친 척도이지만 유의미하다. 차머스가 사용한 "어려운 문제(the hard problem)"라는 구절이 유명해짐에 따라 확실히 철학계의 외부에서 의식의 문제에 대한 관심의 폭발이 있었다. 이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TLS에 기고한 <<의식적인 마음>>에 관한 서평에서 데이비드 파피노(David Papineau)가 주장했듯이, 중요한 새로운 관념은 전혀 없었다. 이 논쟁의 아름다운 역사가 상실되어 버렸다는 것은 불행한데(현재 많은 사람들이 의식이라는 "어려운 문제"가 차머스에 의해 발견된 것처럼 적는다), 결코 그것이 매혹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거의 모든 최선의 작업―가장 생생하고 통찰력이 있는―이 더 먼 과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가설"은 십팔 세기 프랑스 유물론자들과 십구 세기 독일 유물론자들의 나날의 양식이었다. "물질이 생각한다[의식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이탈리아 사람 지아코모 레오파르디(Giacomo Leopardi)가 1827년에 적었다.

 

1990년대에는 최소한 의식에 관한 명백한 상식적 실재론을 옹호할 채비를 갖춘 마음의 철학자들의 수가 증가했는가? 그런 듯 보이지 않는다. 합의는, 당시에도 그런 실재론은 계속해서 마음의 분석 철학자들 사이에서 소수의 견해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글쎄,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 주장하듯이, "우리는, 그것이 사고 방식이 비슷한 신자들의 공동체에 의해 유지될 때, 아무리 터무니없더라도, 사람들이 어떤 명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올바르게도, 키케로는 "어떤 철학자도 주장하지 않을 터무니없는 진술은 전혀 없다"고 덧붙인다.

 

그런 혼란 상태의 뿌리에는 1920년대에 에딩턴과 다른 사람들―1704년의 소중한 아일랜드 사람 존 톨랜드(John Toland), 1707년의 앤서니 콜린스(Anthony Collins), 1739년의 흄, 1777년의 조지프 프리스틀리(Joseph Priestley)는 말할 것도 없고―에 의해 분명히 식별된 매우 큰 실수를 극복할 수 없는 무능력이 놓여 있다. 그 실수는, 우리가 의식은 물리적일 수 없다고 생각할 어떤 좋은 이유가 있을 만큼 충분히 물리적 실재의 본성에 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멍청한 물건으로서의 물질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 경험에 의해 우리 속에 매우 깊이 각인되어 있는 듯 보여서 현대 물리학의 특별한 사실들에 대한 이해조차도 그것의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없다. 그것을 꿰뚫어 보는 것은 정말로 혁명적인 경험이다.

 

그것이 <<어려운 문제(The Hard Problem)>>라는 톰 스토파드(Tom Stopprd)의 새로운 연극에서 힐러리(Hilary)가 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힐러리는 의식을 설명하는 자신의 호색적인 스승 스파이크(Spike)에게 이의를 제기하며 이렇게 주장한다. "모든 것을 감안하면, 육체는 사물들로 이루어져 있으며"―힐러리는 물리적인 것들을 의미한다―"사물들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마지막 말이 참이라고 생각할 좋은 이유가 전혀 없으며, 그것이 거짓이라고 생각할 압도적인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