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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섀핀: 오늘의 에세이-과학적 사고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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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11.

 

과학적 사고의 미덕

The Virtue of Scientific Thinking

 

―― 스티븐 섀핀(Steven Shapin)

 

과학은 인간을 선하게 만들 수 있는가?

 

물론 그럴 수 없다고 누군가가 재빨리 말할 것인데, 자동차를 수리하거나 문학 잡지를 편집하는 것이 그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왜 과학이 도덕적 고양을 위한 어떤 특별한 역량을 갖추고 있거나, 또는 과학자들―그들이 수행하는 특수한 일, 또는 그들이 알고 있는 것, 또는 그들이 지식을 획득하는 방식 덕분에―이 다른 종류들의 사람들보다 도덕적으로 뛰어나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그것은 기묘한 의문인데, 심지어 비논리적인 의문일 것이다. 처방적인 당위―도덕적인 것 또는 선한 것들―의 세계가 서술적인 존재의 세계와는 다른 영역에 속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아무튼 실제로 우리가 그것에 관해 생각한다면, 이런 묵살이 현재 많은 사람들이 그 의문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을 포착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묵살하는 태도가 너무 빠를지도 모르는 여러 이유들이 존재한다.

 

첫째, 그 의문을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존재하며, 그런 의문이 가질 수 있는 상이한 의미들로부터 상이한 현대적 감성들이 비롯된다. 그것을 이해하는 어떤 방식들은 경박한 묵살로 이어지지만, 다른 방식들은 과학을 도덕적 문제들에 강력하게 관련시킨다. 과학과 미덕 사이의 관계, 즉 과학의 양상들이 인간을 선하게 만드는 역능을 지니고 있는지 여부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방식들 가운데 몇 가지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  과학자들이 알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그들을 보통의 인류보다 더 선한 사람들로 만드는 무언가가 있는가? 상이한 종류들의 과학자들―물리학자, 수학자, 공학자, 생물학자, 사회학자들―은 더 유덕한가 아니면 덜 유덕한가? 그리고 어떤 종류들의 과학적 전문 지식은 도덕적 전문 지식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 과학자들은 이미 평균보다 더 나은 인류의 일부에서 선발되는가?

 

● 비과학자들과 널리 공유된다면 나머지 우리들을 더 선하게 만들 무언가를 과학자들이 알고 있는가? 아니면 과학자들이 그들의 지식에 이르게 되는 방식―과학적 방법으로 부르자―과 관련하여 그것을 숙달한다면 비과학자들의 실천을 더 선하게 만들 무언가가 존재하는가? 과학자들의 앎의 방식을 폭넓게 적용한다면 우리 사회가 더 공정하게, 더 정의롭게 그리고 더 번영하게 될 것인가?

 

● 과학자들로 하여금 사회적 및 정치적 문제에 개입하여 그들의 지식의 사회적 사용을 포함하지만 그것에 한정되지 않는 모든 종류의 상황에 관한 결정을 내릴 자격을 부여하는 무언가가 과학자들과 관련하여 존재하는가? 철학자-왕, 또는 과학자-정치인은 이례적인 것, 터무니없는 것인가, 아니면 대단히 바람직한 사태인가? 과학자들에 의해 통치되는 세계는 더 합리적일 뿐 아니라 더 정의로울 것인가?

 

과학과 도덕을 분리시키려는 경향을 특징짓는 관념과 정서들은 영원히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그것을 보증하는 것은 근대성을 형성한 가장 강력한 세력들의 일부에 의해 생성된, 근대적 문화적 질서의 핵심에 가까이 놓여 있는 감성이다. 상이한 "당연한 사실"―물론 과학은 인간을 선하게 만들 수 있다―이 지배적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과학은 그래야 하며, 그리고 그렇다.

 

이런 과거 문화를 지나는 우회로는 세계에 관한 앎과 옳은 것에 관한 앎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데 관여하는 것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제공할 수 있다. 많은 것이 걸려 있다. 존재당위 사이의 이런 관계에 대한 태도 변화가 권위―누구를 신뢰해야 하고 누구를 믿어야 할지―와 관련된 우리 시대의 특징적인 불확실성의 대부분을 설명한다.

 

* * *

 

그리스인들로 시작하는 것은 나쁜 착상일 경우가 드물다.

 

"모든 인간은 본래 앎을 욕구한다"라는 구절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이라는 저작의 첫 번째 문장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지식을 추구하는 충동이 인간적이라는 것을 특징짓는데, 사람들을 행복하게도 만들고 선하게도 만든다.

 

호기심이 오만과 관련된 악덕이 되어버린 초기 기독교와 더불어 이런 관념은 유행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개신교는 가톨릭교보다 더 우호적인 지식관을 갖고 있었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에 의해 연구된 개신교도들은, 특히 자신들이 구원받는지 아니면 저주받는지 알기를 원했지만, 미합중국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에 의해 연구된 십칠 세기 영국의 청교도들은 자연적 세계에 관해 알기를 원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청교도들은 세계에 관한 지식을 향한 인간의 욕구가 종교적 의무를 충족시킨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이유는 인간의 육체가 신의 사원이라는 것인데, 신이 그것에 신성한 사용 의도를 갖춘 역량들을 부여했다. 이성과 관측이라는 신이 부여한 능력이 인간들을 짐승을 넘어서도록 고양시켜 얼마간 천사처럼 만들기 때문에 그것들의 사용은 제약받지 말아야 한다. 너무나 많은 지식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는데, 우리가 알 수 있을 것이라면 무엇이든 알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신성한 천품이다. 지식을 추구하는 그런 충동―종교적 충동―은 어떤 곳을 향해서도 정향될 수 있을 것이다. 정당하게 알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반드시 알아야 한다. 지식의 대상이 자연일 때, 즉 관찰 과학 또는 실험 과학을 행하고 있을 때 그것은 특별한 종교적 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태도를 가장 잘 표현한 수사가 자연이라는 책(Book of Nature)이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속성과 의도들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신에 의해 쓰여진 두 권의 책 가운데 두 번째 책이었다. (첫 번째 책은 물론 성서였다.) 그 상징은, 아마도 최초로, 4세기에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나타난다. 그것은 중세 시대 전체에 걸쳐 지속되지만, 많은 주제들에 관하여 많은 저자들에 의해 환기되는 17세기와 18세기에 새로운 강력한 의미를 획득한다. 갈릴레오가 그것을 사용하여 자연이 연구되어야 하는 방식을 처방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철학은 우리 눈 앞에 항상 놓여 있는 거대한 책―나는 우주를 의미한다―에 쓰여져 있지만, 먼저 그것을 기록하는 언어를 배워서 기호들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수학적 언어로 쓰여져 있고, 기호들은 삼각형, 원 그리고 다른 기하학적 도형들인데, 이런 것들의 도움이 없다면 그 책의 한 낱말도 파악할 수 없다.

 

갈릴레오가 언급한 "철학"은 "자연철학"을 의미했지만, 이 술어는 우리의 근대적인 과학 개념, 또는 심지어 물리학으로 단순히 번역되지 않는다. 갈릴레오는 그 당시에 일반적으로 별개의 것으로 간주되었던 두 가지 앎의 방식, 즉 철학이라고 불리는 방식과 수학이라고 불리는 방식에 관해 말하고 있었다.

 

철학의 목적은 원인과 사물의 본성―예를 들면, 물체를 어떤 식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과 물체를 구성하는 것―에 관한 지식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수학의 목적은 예측적 지식―예컨대, 하늘에서 목성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나 목성을 구성하는 것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어느 주어진 시점에 목성이 발견될 것이라고 예상되는 위치에 관한 지식―이었다. 갈릴레오가 이런 구별짓기를 이해하였고 그것으로 연구했듯이, 1687년에 출판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라는 책에서 아이작 뉴턴(Isaac Newton)도 그랬다. 그들의 작업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근대 과학의 기원으로 찬양받지만, 갈릴레오와 뉴턴 둘 다 그들의 일부 동시대인들을 어리둥절케 하였는데, 그들은 갈릴레오와 뉴턴이 분과학문들을 살짝 혼동했다고 생각했다. 과학적 작업의 도덕적 함의들을 고려할 때 이런 구별짓기의 후속 이력은 염두에 둘 가치가 있는데, 자연철학자는 신학자와 공유하는 영역을 차지했지만 수학자는 그렇지 않았다.

 

17세기와 18세기에 자연의 책이라는 수사는 사람들을 비종교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과학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걱정할 이유가 거의 없었다. 과학적 실천가들 사이에서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로버트 후크(Robert Hook) 그리고 뉴턴만이 자신들의 연구가 그런 결과를 낳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자연이라는 책을 읽는 것, 그렇게 하기 위해 전문적인 해석적 코드를 찾아내는 것은 바로 성서를 읽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신과 신성에 이르는 길이었다. 보일은 자신의 과학적 작업을 일종의 신에 대한 경배로 간주하기 때문에 일요일에 실험실에서 연구한다고 말했다.

 

1730년대에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가 적었듯이, "자연에서 자연의 신에 이르기까지"의 운동은 17세기와 18세기 사이 시기의 거대한 문화적 제도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것은 자연신학으로 알려져 있는데, 케임브리지 대학 시절에 "설계 논증"의 힘에 깊은 인상을 받은 청년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은 그것의 기본 텍스트들 가운데 일부를 읽었다. 시계를 분해하여 복잡한 구조의 기능에의 뛰어난 적응을 관찰하면, 그것은 지성적 설계자의 산물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곤충의 눈 같은 자연적 구조물에 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추리할 때, 자연신학자는 그런 것도 설계되었음―인간이 아니라 신의 지성에 의해―에 틀림없다는 마찬가지 결론을 내리게 된다.

 

자연신학적 추리 양식들을 수용한 사람들에게 과학은 신을 증명하는 활동이었는데, 과학이 지적 설계의 증거를 밝혔기 때문이었다. 과학은 그것을 실천한 사람들뿐 아니라 책과 교실에서 과학적 세계상을 만난 사람들도 고양시켰는데, 그들 역시 주변에서 신의 설계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틀 내에서 이루어진 탐구는 과학을 도덕적으로 만든 동시에 신학을 합리적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강력하고 지속적인 문화 형식이었다.

 

* * *

 

자연철학과 대조적으로 수학적 실천은 이런 신학적 풍미가 있는 기획에 참여하지 않았다. 갈릴레오조차도 그가 행하고 있는 것과 교회의 고유한 특수한 관심사 사이의 차이를 강조할 수 있었다. 종교 재판의 압박을 받은 그는 태양중심 체계가 철학적으로는 참이 아닐지라도 수학적으로는 유용할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코페르니쿠스주의를 옹호했다. 코페르니쿠스 모형에 기반을 두고 행성 위치들을 계산하는 것이 더 나을 뿐이었다. 천문학의 목적은 하늘에 가는 방법이 아니라 하늘이 운행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마찬가지로 수학과 신학을 구별지었다.

 

과학과 미덕을 관련짓는 이런 감성들에 대한 철학적으로 가장 중대한 공격은 1730년대에 데이비드 흄(David Hume)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많은 신학서와 오늘날 우리가 사회학이라고 부를 것을 읽었고, 그런 분야들에서의 논증들이 진전되는 경향이 있는 방식에 당황했다. 저자들은 사회적 배치 또는 신의 존재를 서술한―흄이 말했듯이, "통상적인 추리 방식"을 따라서―다음에 느닷없이 그리고 아무 언급도 없이 "미세한" 변화가 이루어지곤 했는데, 저자는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에 관한 글쓰기에서 존재해야 하거나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 것에 관한 글쓰기로 옮겨가곤 했다. 그런데 존재당위는 상이한 층위에 속하는데, 이것에서 저것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은 "전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흄의 논증이 품고 있는 더 광범위한 함의들은 충분히 명백했다. 존재에서 당위로 움직일 수 없다면, 자연신학은 아무런 논리적 토대도 갖지 못하는데, 자연에서 도덕으로 옮겨갈 길을 생각해낼 수 없다.

 

훨씬 나중에 철학자들이 공식적으로 이른바 자연주의적 오류―유쾌함 또는 바람직함 또는 도구적 이점 또는 사실상 자연적인 것 자체 같은 특성들을 통해서 도덕적이거나 선한 것을 규정하는 논리적 실수―를 식별한 20세기 초에 비슷한 사유 경향이 출현했다. (예를 들면, 공리주의와 그것의 현대적인 계량경제적 후예를 생각하라.) 도덕적 담론에 속하지 않는 특성들로 환원시킴으로써 행해야 할 올바른 것을 도출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사회과학자와 역사학자들이 가장 친숙할 가능성이 높은 감성들의 원천은 1917년에 뮌헨에서 행해진 "소명으로서의 과학(학문)"이라는 베버의 강연이다. 세계는 "탈주술화"되어 버렸다고 베버는 말했다. 원칙적으로 모든 것은 합리적 계산에 의해 알 수 있다. 계산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거에 과학자들은 신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거나 창조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다고 베버는 말했다. 강단 과학 학과들에서 여전히 발견되는 "일부 큰 어린이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과학이 신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는데, 과학은 본래적으로 "비종교적인 힘"에 속한다. 과학이 의미와 관련하여 무언가를 가르쳐준다면, 그것은 우리가 이곳에서 그곳에 닿을 수 없다는 점이다. 세계의 의미 같은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찾아낼 과학적 방법은 전혀 없다.

 

베버는 자신이 수행하고 있던 것을 과학으로 나타내었다. 그는 자신을 화학자와 동물학자와 동일한 제도적 및 문화적 보트에 위치시켰다. 그의 청중이었던 뮌헨 학생들에게 강연하면서 그는 그들과 같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사람이 그들이 해야할 일을 말해줄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들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과학자로서 그가 알고 있는 것 속에는 도덕적 행위, 해야 할 올바른 것을 규정할 어떤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그렇게 했다면, 그는 자신의 소명에 의미를 부여하는 바로 그것을 포기하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사실-가치 구별짓기의 사실 쪽에 직업적으로 종사하면서 베버는 과학의 실천에서 비롯되는 유일한 도덕 또는 의미는 무도덕성과 무의미함을 씩씩하게 포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를 지지하면서 베버는 과학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는데, 나중에 실존주의자들이 즐겨 말했듯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외하고, 모든 것은 파악될 수 있었다."

 

* * *

 

그래서 도덕적 고양 능력이 없는 자연과학과, 말하자면, 도덕적 권위가 없는 성인 과학자들은 최근의 창조물―역사적 견지에서―이다. 세계의 탈주술화와 더불어 이른바 존재로부터 당위를 이끌어내는 것의 추정적 무효성은 예전에 소유했던 도덕적 역능을 박탈당한 자연에 관한 관념의 역사적 전개에서 비롯된다. 그런 전개는 19세기 말의 과학적 자연주의자들과 다윈의 과학과 형이상학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들의 근대적 자연관은 자연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여느 사람보다 더 도덕적으로 만들 수 없었는데, 돌에 새겨진 어떤 설교도 식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9세기의 위대한 생물학자 T. H. 헉슬리(Huxley)는 자연은 "미덕의 학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과학은 여러분을 선하게 만들 수 없다거나, 또는 과학자를 도덕적 권위로 만들 수 없다는 단언은 자연철학적 입장에서 비롯되었는데, 자연에서 작동하는 영성적 힘이 전혀 존재하지 않고, 그래서 자연에서 식별해야 할 신성한 의미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베버는 어떤 사회적 역할들에 속하는 것에 관한 사회학적 진술을 제시하고 있었는데, 그는 과학과 형이상학에서 일어난 역사적 변화로 인해 그렇게 하고 있었다.

 

이런 태도는 유의미한 파생 결과를 낳았다. 20세기 초엽과 중엽 사이의 어느 시기―특히 미합중국에서 그랬지만 다른 환경에서도 그랬다―에 과학자에 관한 관념은 남겨진 성직자와의 관련성을 버렸으며, 도덕적 특별함에 대한 가정은 도덕적 평범함으로 대체되었다. 이런 변화의 원인은 단일하지 않았다. 과학자들이 해석한 세계에 관한 관념들의 변화가 그것과 많이 관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변화는 과학적 경력의 본성, 과학 공동체의 문화적 지위와 사회적 관계 그리고 과학이란 어떤 종류의 것인지와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관한 학술적 및 비전문적 관념들의 변화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진전을 동반했다.

 

첫째, 20세기 중엽에 훨씬 더 많은 과학자들이 있었다. 과학자들의 수의 증가가 매우 두드러져서 1960년대에 한 사회학자는 전국의 남자, 여자, 어린이 그리고 개마다 두 명의 과학자가 있지 않으려면 증가세가 곧 멈추어야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구통계학적 의미에서 과학적 경력은 기이한 것라기보다 정상적인 것으로 되고 있었다.

 

둘째, 20세기에 과학적 연구를 소명에서 직업으로, 아마추어적 탐구에서 직업적 탐구로 변화시키는 과정이 실질적으로 완결되었다. 다윈은 자신의 작업에 대한 급료를 결코 받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그리고 물질적으로 안락한 중산층으로 편입되는 미합중국 과학자들의 수가 증가한 이후에도 여전히 직업주의의 등장과 과학적 금욕주의의 쇠퇴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 연구자들이 있었는데, 암 연구자 프레드릭 S. 해밋(Frederik S. Hammet)은 <<사이언스>>에 "진정한 과학자는 자신의 소명을 따르는 데 관심이 있을 뿐"이라고 적었다. 그리고 1950년대 중엽에 물리학자 칼 컴프턴(Karl Compton)은 과학자들 일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금전적 수익에 대한 관심이 더 작은 어떤 다른 집단도 알지 못한다."

 

세째, 20세기 초엽에 과학자들은 점점 더 대기업과 정부 기관들의 부속 연구소들에 고용되었는데, 흔히 군사적인 것과 관련되었다. 1940년대부터 미합중국 사회학자들은 "과학 공동체"로 새롭게 명명된 것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튼은 이 공동체의 "규범" 속에서 자유주의적이고 실력주의적이며 열린 사회의 가치들 가운데 많은 것을 식별하는 한편으로, 과학자들이 "이례적인 정도의 도덕적 정직성을 나타내는 사람들의 계층에서 선발된"다는 "만족스러운 증거"는 전혀 없다고 역설했다. 그는 구조적 규범을 심리학적 성향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1960년대 초엽에 토머스 쿤(Thomas Kuhn)의 "정상 과학"에 대한 그림은 과학적 활동의 초상을 열린 사고의 철학적 탐구가 아니라 수수께끼 풀기―현존하는 패러다임들의 연장과 응용―로 그린다. 일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몹시 화나게도, 쿤은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교리"에 대한 복종과 지각의 협소화를 필요로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과학은 여전히 우리의 가장 믿음직한 지식이었지만, 무엇이든 도덕적 권위가 과학을 고유하게 편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데서 비롯될 것이라는 점은―쿤에게 설득당한 사람들에게―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1961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고별 연설은 "군산 복합체"를 민주주의 및 과학의 정직성에 대한 새로운 위협으로 식별했는데, 그것은 과학이 특별한 도덕적 지위의 추구로 가정되었던 시대에서 멀어져온 거리를 반영했다. 나중에 확장된 상원 의원 J. 윌리엄 풀브라이트(William Fulbright)의 "군산학 복합체"는 대학이 더 이상 초연한 상아탑으로 간주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인정했는데, 대학은 경제 및 국가 안전 상태에 대한 중요한 자원이 되어 버렸다. 히로시마와 냉전 무기 경쟁 때문에 과학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쟁점이 중요해졌다. 과학이 자체에 책임이 있을지도 모르는 끔찍한 일을 저지렀을 때에만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만들어낸 지식과 인공물들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질 수 있거나 져야 하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인지 여부에 관한 진지한 논쟁이 벌어질 수 있었다. 대체로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우수성을 주장하기를 포기해 버렸다. 이제 많은 과학자들은 과학자들을 여느 사람보다 더 악하다고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혔다"고 걱정했지만, 다른 많은 과학자들은 히로시마는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역설했는데, 그들은 민주적으로 합법적인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과학은 새로운 권력을 갖게 되었고 새로운 기회를 향유했다. 과학의 엄청난 성공에 대한 한 척도는 그것이 정부, 생산 그리고 전쟁의 일상적 제도와 실천들에서 포용되게 된 범위였다. 과학의 목표는 점점 더 그것들의 목표와 동일시되었고, 과학의 상황 처리 방식은 그것들의 방식과 동일시되었다. 한 가지 결과는, 수많은 과학적 탐구가 자체 목표에 초연한 진리 추구가 아니라 이윤과 권력이 포함된다고 가정하는 제도들에 합병되었는데, 그것은 확실히 도덕적 고양이 아니다.

 

자연철학과 수학 사이의 역사적 구별짓기의 대부분이 더 최근에 과학과 기술 사이의 구별짓기로 다시 나타나는데, 과학은 지식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기술은 권력과 통제를 목적으로 삼는다. 비교적 최근에―베버의 1917년 강연이 증거했듯이―이런 구별짓기는 단언의 문제였는데, 과학은 기술과의 융합에 의해 오해받고 타락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과학자들과 그들의 고용주들은 과학과 기술을 동일시하기 위해 열심히 작업하는데, 과학의 권위가 기술의 효용에 의해 뒷받침되기를 원할 뿐이다. 이것은 과학을 정상적인 시민적 감성 속에 접어 넣는 것에 대한 더 가시적인 표징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지식 탐구를 권력 추구를 본떠서 모형화할 때 여러분은 과학자와 성직자 사이 그리고 실질적으로 과학의 이념과 도덕적 고양이라는 관념 사이의 역사적 관계를 파괴한다.

 

그런 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이점이 있었다. 자연이 신의 창조물이고 자연 연구는 도덕적 교훈을 산출한다고 생각하는 베버의 "큰 어린이들"이 주변에 여전히 수백 만 명이 존재하지만, 이제 대학의 물리학과 화학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세계의 탈주술화는 교정 밖에서보다 연구 대학의 경내에서 더 그럴듯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과학은 당연히 여러분을 선하게 만들 수 없다는 점을 수용하는 것은 세계의 탈주술화와 무도덕적인 근대 과학의 거대한 성취를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실존주의자들과 더불어 이제 "성인들"은 의미와 도덕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들은 위―그리고 확실히 과학자들―로부터가 아니라 우리에게서 비롯될 수 있을 뿐이라고 인식한다. 도덕은 외주를 줄 수 없다.

 

* *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글을 쓰면서 오펜하이머는 과학자들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나 그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경고했다. 사실상 과학자들이 한 가지 독특하고 정합적이며 강력한 방법의 관리자였다면, 그런 관리 정신은, 기껏해야, 특히 그들의 지식의 범위에 관한 겸손을 비롯한 태도와 판단의 어떤 겸양에서 드러났다. "과학은 이성의 삶의 전부가 아니라, 그것의 일부이다"라고 오펜하이머는 적었다. 과학주의―과학적 방법을 모든 곳에 연장시킬 수 있고, 그래서 도덕, 가치, 미학 그리고 사회적 질서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은 엉성한 생각일 뿐이다.

 

오펜하이머가 경고한 과학주의는 역사가 있었다. 그것은 19세기 사회적 다윈주의와 도덕의 생물학으로의 공표된 환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은 바로 자연주의적 오류가 겨냥했던 그런 종류의 추리―생물학적 진화가 우리로 하여금 행하거나 느끼도록 만든 것의 견지에서 도덕적인 것이 구성될 수 있다는 관념―였다. 그래서 우리가 자손에게 특질들을 물려주기 위해 서로 전쟁을 벌이는 것이 자연적이라면, 한 가지 도덕적 문제는 해결되는데, 즉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협력하거나 친지 또는 친지가 아닌 사람들에게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자연적이라면, 그것 역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도덕적 본능 또는 성향은 자연적 현상으로 드러나며, 자연과학의 방법과 개념들로 다루기 쉽다. 이른바 진화윤리학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무엇이 도덕적인가?"라는 의문들에 대해 과학적 해답을 제공하려고 시도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이런 과학주의는 미래가 있었으며, 이제 그것은 실체적 현재가 되었다. 현대 미합중국 강단과 지식 출판에 있어서 과학주의, 그리고 특히 도덕적 문제를 과학적 문제로 재규정하는 행위가 소생했다. 도덕적 문제는 해결되기보다는 해소된다. 도덕적 문제는 한 가지 어법, 즉 불신당한 이원론의 유감스러운 현대적 생존으로 언급된다. 과학은 전통적인 도덕적 권위들이 발가벗고 있으며, 도덕적 문제로 간주되는 것은 과학자들의 자원으로 가장 잘―심지어 유일하게―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을 자체의 도덕적 역할로 떠맡거나, 또는 다시 떠맡는다. 이제 과학이 선한 것과 좋은 삶을 사는 방법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라고 주장된다. 그리고 과학이 철저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곧 그렇게 될 것이라고 여전히 확신해야 한다. 과학은 도덕적 상대주의의 문제들을 치유할 것이고, 그래서 부정한 입장들과 대조를 이루는 어떤 일단의 도덕적 입장들의 객관적 진리성을 밝힐 것이다. 신경과학자 샘 해리스(Sam Harris)는, 도덕은 "과학의 미발달 분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적고 있으며, 그리고 과학이 "인간의 가치들을 결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는 미래에 대한 추측에서 현재의 실재들에 관한, 조건부이지만, 확신에 찬 진술로 옮겨간다.

 

오늘날 교양인의 도덕적 및 영성적 가치들을 인도하는 세계관은 과학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세계관이다. 과학적 사실들이 독자적으로 가치들을 지시하지는 않더라도, 확실히 그것들은 가능한 것들로 둘러싸여 있다. 교회의 권위에서 사실성 문제에 관한 신뢰성을 박탈함으로써 과학적 사실들은 도덕의 문제에 있어서의 확실성에 대한 교회의 주장에 의혹을 품게 한다.

 

새롭게 확신에 찬 이런 과학주의에 따르면, 과학은 여러분을 선하게 만들 수 있는 문화의 유일한 부분인데, 과학이 다른 모든 것―종교, 전통적인 윤리적 규약, 공통 감각―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또는―역설을 자각하거나 자각하지 못한 채―과학은 그것들을 비도덕적인 것으로 낙인찍는데, 종교는 "만들어진 신(God delusion)"으로서 도덕적으로 잘못된 편견, 노예 상태 그리고 학살을 허가한다.

 

그런데 신(新)과학주의의 야망이 자기제한적일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자연이라는 미명 아래 말하는 사람들은 자연이 결코 한 가지 목소리로 말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직면해야 한다. 상이한 과학자들은 과학에서 상이한 도덕적 추론들을 이끌어낸다. 어떤 과학자들은 무자비하게 경쟁적인 것이 자연적이고 선하다고 결론지었고, 다른 과학자들은 협력하고 신뢰하는 것이 자연적이라고 간주하며, 다른 과학자들은 자연주의적 오류의 교훈을 포용하여 자연적인 것에서 도덕적인 것을 이끌어내는 기획에 반대한다. 그것이 1893년에 제시된 T. H. 헉슬리의 회의주의에 대한 근거였다.

 

도둑과 살인자는 자선가와 꼭 마찬가지로 자연(본성)을 따른다. 우주의 진화는 인간의 선한 성향과 악한 성향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가르쳐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체적으로 그것은 우리가 선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가 악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왜 바람직한지에 대해 이전보다 더 나은 이유를 제공할 수 없다.

 

신과학주의는 누구를 신뢰해야 것인가라는 해묵은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모든 근대 과학자와 꼭 마찬가지로, 신과학주의의 옹호자들은 신뢰성의 시장에서 자신들의 제품을 팔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여기서 신과학주의는, 과학이 여러분을 선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적들과 한 가지 중요한 감성을 공유한다. 자연을 세속화했고 후기 근대 과학의 직업적 환경을 공유하기 때문에 신과학주의의 옹호자들은 도덕적 우수성에 관해서도, 심지어 도덕적 특별함에 관해서도 그럴듯한 주장을 전혀 제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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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생한 과학주의는 존재와 당위 사이의 관계에 의해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효과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 그것들의 분리에 수반되는 불안감의 증상이다. 그래서 과학자들는 여느 사람만큼 도덕적일 뿐이라는 견해의 당연함에 대해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으며, 그리고 그것을 지불하는 사람들은 과학자들 자신이다. 과학자들은 자연의 성직자이며, 그들은 자연이라는 신의 책을 연구함으로써 도덕적으로 고양된다는 견해는 죽었을 것―베버가 말했듯이, 그것은 근대성이 의미하는 것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이다―이지만, 과학자들이 사심 없이 진리에 헌신하는지 여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그것은 과학적 전문성과 공공 정책을 둘러싼 현대의 긴장 관계들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이다.

 

과학자들의 초연함과 사심 없음이 은행가들의 그것만큼 신뢰받을 수 있을 뿐이라면, 과학적 결과는 금융 파생상품만큼 신뢰받을 수밖에 없으며, 과학은 금융업과 같은 방식으로 감시받아야 한다. 감시와 통제 체제는 근대적인 불신의 표식이다. 그런데 금융 체계와 마찬가지로 과학은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작동하며, 그래서 과학 행위와 금융 행위가 어느 정도의 규제를 받는 것에는 탁월한 의미가 존재하는 반면에, 감시가 신뢰에 대한 필요성을 어쨌든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 없다. 여러분이 과학자들이 신뢰할 만하다고 깨닫지 못한다면, 그들이 권력과 이윤의 하인들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지불해야 될 궁극적인 비용은 여러분 스스로 과학을 수행해야 할 것인데, 여러분의 발견 결과를 믿음직하게 하는 데 있어서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과학적 미덕에 대한 근대적 회의주의의 비용은 과학자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 의해 지불된다. 예전에 신중함과 정치적 행위의 권역들에만 속했던 복잡한 문제들이 이제는 점점 더 과학적 문제들로 간주되고 있다. 지구의 기후가 실제로 더워지고 있다면, 그리고 그 원인이 인간의 활동이라면, 탄소 배출을 제한하는 정책들은 당연히 정당화된다. C형 간염이 광범위한 간 손상을 초래하는 전염병학적 궤적을 따르다면, 신약의 높은 가격은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적인 존재-전문성의 성공 덕분에 그것은 당위-판단의 세계로 강력하게 진입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과학적 미덕이라는 관념을 폐기하는 것과 관련하여 그럴듯한 "당연한 사실"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학자들을 신뢰할 필요가 있지만, 과학자들에게 그들을 신뢰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