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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핼버슨: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젠더와 과학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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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17.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 VII: 젠더와 과학에 관하여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VII: on Gender and Science

 

―― 대니얼 핼버슨(Daniel Halverson)

 

"과학은 무성적이지 않은 듯 보일 것이다. 그는 남성이고 아버지이며 감염되어 있다." ― 버지니아 울프(Virgina Woolf)

 

"이것은 남성들과 다르게 과학을 수행하는 여성들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젠더 이데올로기가 변할 때 과학을 다르게 수행하는 모든 사람에 관한 것이다." ― 이블린 폭스 켈러(Evelyn Fox Keller)

 

처음에는 약간 어처구니 없는 듯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어쨌든 우리들 가운데 남성인 사람들)가 잠깐 동안 우리의 젠더에서 벗어나서 과학의 언어에 관해 성찰할 수 있다면, 과학은 기묘하게 성적이고 남성적인 언어가 많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어렵지 않다. 과학자들은 탐사를 위해 "널리 개방된(wide open)" 피험자들을 선택하고, "비옥한 영토(fertile territory)"를 "조사(probe)"하고, "어려운(hard)" 의문들을 제기하고, "꿰뚫는(penetrating)" 통찰에 이르며, "의미가 풍부한(pregnant with meaning)" 결론에 도달한다. 희망컨대, 그들의 논증들이 "강력(strong)"하다면, 그들은 자연을 "관장"(govern)하는 "법칙들(laws)"을 "노출(expose)"시킬 "지배적인(dominant)" 이론을 "세울(erect)" 것이다. 합리적인 관찰자가 과학은 "어머니 자연"에 정향된 어떤 종류의 오이디푸스적 강간 환상이 아닌지 의문을 가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젠더와 과학에 관한 연구를 선도한 미합중국 생물수학자이자 과학사학자인 이블린 폭스 켈러(1936 ― )에 따르면, 이런 언어는 우연한 것이 아니다. <<젠더와 과학에 관한 성찰(Reflections on Gender and Science)>>(1985)에서 켈러는, 놀라울 정도로 과학의 기원은 기묘하게 성별화된 언어로 물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남성적인 시간의 탄생(The Masculine Birth of Time)"(c. 1605)이라는 미완의 에세이를 적었고, "자연을 지배하기"에 관해 자주 언급하였으며, 그리고 "지식은 힘이다"라고 선언한 것으로 유명하다. 동일한 에세이에서 베이컨은 "솔직히 나는 여러분을 모든 자녀들을 데리고 있는 자연으로 인도하고, 그녀를 여러분에게 봉사하도록 속박하며, 그녀를 여러분의 노예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상은 거의 비전형적인 것이 아니었다. 수 세기 동안 과학에 관한 베이컨의 구상은 파라켈수스(Paracelsus)와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Cornelius Agrippa)의 연금술적 저작에서 비롯된 전적으로 상이한 다른 한 전통과 경쟁했다. 아그리파는 여성의 우수성을 솔직하게 찬양한 <<여성의 고귀함과 뛰어남에 관한 연설(Declamation on the Nobility and Preeminence of the Female Sex)>>이라는 책을 저술했으며, 파라켈수스는 자연을 남성적 원소들과 여성적 원소들의 조합으로 간주했고, 발견에 대한 적절한 은유로서 임신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제시했다. 베이컨적 프로그램만큼 열심히 추구되었더라면 아그리파와 파라켈수즈의 전통에서 어떤 종류의 과학이 출현했었을지 켈러는 궁금하게 여겼다.

 

자신의 실험실 경험으로부터 켈러는 남성 동료들이 이론화된 구조들을 지속적으로 정착시키지 못했음에도 남성적인 생물학 이론들(점균류의 성장에 대한 "주도자" 설명, 또는 세포 성장에 대한 "중앙 통제자" 모형)을 자주 고수했다고 역설했다. 다른 한편으로, 전일론적 상호작용들을 더 강조한, 바바라 매클린톡(Barbara McClintock)(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세포생물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 같은 여성 과학자들에 의해 제시된 설명들은 일상적으로 무시당했다. 젠더와 젠더가 연구에 미친 영향에 관한 문제들이 정면으로 다루어진다면, 과학 전체에 이익이 될 것이라고 켈러는 주장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관념들을 제안하는 사람들의 성질이 아니라 관념들의 성질이어야 한다.

 

<<본성과 양육이라는 신기루(The Mirage of a Space between Nature and Nurture)>>(2010)라는 책에서 켈러는, 명백히 영구적인 이 논쟁은 사실상 한편으로는 찰스 다윈(Charles Darwin)과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 같은 십구 세기 생물학자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와 칼 마르크스(Karl Marx) 같은 사회학자들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했다. 양쪽 모두 구별짓기에 대한 명확한 정치적 동기를 갖고 있었다. 다윈과 골턴은 제국주의적이고 보수적인 백만장자였는데, 그들은 사회적 개혁이 가난한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개혁가들을 논박하기 위해 형질들이 유전된다고 믿고 싶어했다. 콩트와 마르크스는 사람들을 얽어매고 있는 유일한 것은 구조적 착취로부터 수익을 챙기는 보수주의자들의 비타협적인 태도라는 가정에 근거하여 현존하는 정부의 폭력적인 전복에 헌신한 혁명가였다.

 

켈러에 따르면, 후성유전학과 PKU로 불리는 IQ 저하 유전 단백질 결핍에 대한 식이 요법 같은 최근의 발견들은 그 논쟁의 술어들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한다. 유전자는 환경과 독립적으로 작용할 수 없고 작용하지 않으며, 그리고 유전자와 독립적인 인간 환경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켈러는, 유전 가능성과 환경에 관한 많은 연구가 단일한 포괄적인 술어 아래 은폐될 수 있는 다수의 의미들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그런 연구들은 그것들이 실제로 논의하는 증거에 의거하여 너무나 많은 것을 가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그 논쟁은 이런 저런 식으로 본성과 양육 가운데 하나를 결정하거나, 또는 두 개의 대립적인 접근 방식들 사이에 종합을 찾아내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논쟁은 본질적으로 터무니없는 것으로 그냥 폐기되어야 한다.

 

이블린 폭스 켈러는 젠더와 과학에 관한 문제들에 관심이 있는 한 세대의 페미니즘 학자들 사이에서 선도자이다. 포트 휴런 선언(Port Huron Statement) 이후에 출현한 이 운동의 다른 선도자들 가운데 일부에는 페미니즘을 탈식민주의와 억압받는(또는 "하위의") 다양한 사회적 집단들과 관련시킨 샌드라 하딩(Sandra Harding, 1935 - ), 독특하게 여성적인 교수법의 타당성을 옹호한 로레인 코드(Lorraine Code, 1935 - ) 그리고 과학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판을 민주주의에 관한 도덕적 및 정치적 이론들과 통합한 엘리자베스 앤더슨(Elizabeth Anderson, 1959 - )이 포함된다. 페미니즘적 과학철학이 복잡하고 논쟁적인 분야이며, 어떤 변화가 바람직하거나 현실적으로 성취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런 학자들의 의견들이 자주 일치하지 않더라도, 일반적으로 그들은 과학이 일종의 구조적 원리로서 여성적 시각들을 폄하하지(그들은 지금까지 과학이 그랬다고 주장한다) 않도록 과학의 범위를 넓히는 것에 대한 신념을 공유한다. 인간 지식의 대의를 진전시키는 것과 관련하여 특별히 남성적인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 그것은 기여할 지성과 헌신적인 자세를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개방되어야 하는 활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