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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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핼버슨: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리바이어던과 공기 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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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29.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 VIII: 리바이어던과 공기 펌프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VIII: Leviathan and the Air Pump

 

―― 대니얼 핼버슨(Daniel Halverson)

 

1985에 출판된 <<리바이어던과 공기 펌프(Leviathan and the Air-Pump)>>라는 공저에서 스티븐 섀핀(Steven Shapin)과 사이먼 섀퍼(Simon Schaffer)는, 로버트 보일(Robert Boyle)과 토머스 홉스(Thomas Hobbs) 사이에서 진공의 본성, 실험적 방법의 기원 그리고 왕정복고 영국의 정치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이 밀접하게 얽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 주장을 가능한 한 간략히 서술하면, 그 나라는 내전(크롬웰, 찰스 1세, 청교도주의 등)의 발발에서 막 빠져나와었고 아무도 되돌아가기를 바라지 않았다. 혼돈을 방지하기 위해 정치체를 최선으로 조직하는 방법이 주요 관심사였는데, 그것은 직접적으로 절대주의에 관한 홉스의 저작으로 이어졌다.

 

보일에 따르면, 자연 철학(그리고 정치)에서 최선의 방법은 실험과 관찰이었다. 자유롭게 이르게 되는 자유로운 동의가 의견 차이에 대한 여지를 허용하고, 그래서 의견 차이를 포함하는 철학적 진리와 정치적 질서 둘 다를 보장할 것이다. 확대하면, 실험을 통해 입증될 수 없는 어떤 명제도 결코 철학적 명제가 아니고, 그래서 대답할 수 없는 명제이다. 그 방법은 귀납적이고 소거적이었는데, 그것의 목표는 진리를 확증하는 것이 아니라, 허위를 소거하는 것이었고, 이것은 실제로 발생하는 대로 실제 사건들을 관찰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방법에 대한 증명으로서 보일은, 내부에서 다양한 실험들이 수행될 수 있는 진공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장비로서의 공기 펌프를 제시했는데, 그것은 관찰의 혜택으로 철학자들로 하여금 공기, 진공, 불 등에 관해 추리할 수 있게 만들 것이었다.

 

홉스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관찰은 항상 다중의 설명을 허용하며, 그리고 엄밀한 정의들이 없다면 그것들 사이에 하나를 결정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추리 형식으로서 관찰은 연역을 켤코 대체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을 회피한다는 점에 있어서 보일은 틀렸는데, 보일이 진공, 공기 등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다면, 공기 펌프를 갖고서 행한 많은 실험들 가운데 어떤 것도 진공이 존재했는지 여부를 입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보일은 어떤 평가 기준도 규정하기 않았었고, 그래서 자신의 실험 결과에 대해 무엇이든 원하는 해석을 자유롭게 적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홉스는, 공기 펌프(당시에는 손으로 제작해야만 했던 취약하고 복잡한 장치)의 작동에 대한 정의가 그것이 보일의 실험 결과들을 재현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실험들은 순환 추리의 사례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의 내부에서 일어난 실험 결과들이 어떻게 원래 장치 또는 서로의 실험 결과들을 독립적으로 검증할 수 있겠는가? 그 장비를 조율하는 사람이 실험 결과를 제어한다고 홉스는 주장했다. 홉스의 경우에 이상적인 철학적 공동체는 이상적인 정치적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힘, 즉 연역적 이성의 힘의 지배를 받았다. 정치에 못지 않게 철학에서도 힘의 부재는 불가피하게 합의의 붕괴, 혼돈과 전쟁을 초래했다. 한 세대의 이데올로기적으로 추동된 전쟁이 끝난 후에 영국은 위험을 무릅쓸 수 없었을 것이다.

 

명백히 보일의 주장이 압도했지만, 저자들에 따르면 홉스의 비판은 여전히 적실하다. 그들의 후속 주장은, 이런(그리고 확대하면 다른) 일화들이 예증하듯이, 과학은 정치는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저작에는 파고들면 즐거울 것이 훨씬 많이 있지만, 그런 것들이 주요한 핵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