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가득찻잔

자유인 2007. 3. 22. 12:52

"추사 대표작 '명선'(茗禪)은 초의선사의 호"
[연합뉴스] 2007년 03월 04일(일) 오전 10:25   가 | 이메일| 프린트

정민 교수, 다산 제자의 시로써 증명
가짜설 종지부, 다산이 즐긴 차는 '떡차'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세한도(세한도)와 함께 추사(추사) 김정희(김정희. 1786-1856)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명선'(명선)이라는 서예 작품의 제목 '명선'은 다산(다산) 정약용(정약용. 1762-1836)과 교류가 남달랐던 조선후기 승려요 다성(다성)이라 일컫는 초의선사(초의선사. 1786-1866)에게 추사가 지어 선물한 호(호)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미술사ㆍ서예사 연구자들이 '명선'이라는 말을 '차를 마시며 선정에 들다'는 문장 그대로의 뜻으로 풀면서 차(茶=茗)와 선(禪)의 일치 정신을 높이 사서 추사가 초의선사에게 이런 글씨를 써서 주었다고 보았다.
하지만 한국 한문학 전공인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정민 교수는 다산이 전라도 강진 유배시절에 키운 제자 중 한 명인 황상(黃裳. 1788-1863?)이라는 사람의 글을 모은 문집 '치원유고'(梔園遺稿)에 수록된 시로 이런 사실을 증명했다.
정 교수는 최근 발간된 한국학 전문계간지 '문헌과 해석' 2007년 봄호에 기고한 '차를 청하는 글 : 다산의 걸명(乞茗) 시문'이라는 논문에서 다산이 차를 즐긴 인물임을 다각도로 조명하면서 황상이 초의 스님에게 보낸 '걸명시'(乞茗詩. 차를 요구하는 시)를 주목했다.
이 시에서 황상은 "명선(茗禪)이란 좋은 이름 학사(추사)께서 주시었고"라고 읊으면서, 이 구절을 스스로 부연하기를 "추사가 명선이란 호를 (초의선사에게) 주었다"고 명기를 했다.
정 교수는 "몇 해 전 위작 시비에 휘말렸던 추사의 '명선'이라는 작품의 이해에도 이 시는 결정적인 증언을 한다"면서 "이 '명선'이 다름 아닌 추사가 초의에게 준 호였음을 이 시가 밝히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명선이 초의의 호임이 지금에서야 밝혀진 이상 이 작품은 가짜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간송미술관 소장품인 이 '명선'은 현존하는 추사 글씨 작품 중 가장 크며(57.8 x 115.2㎝), '명선'이란 타이틀 글씨를 중심으로 그 옆에는 "초의가 자신이 만든 차를 부쳐왔는데 몽정차나 로아차에 못지 않으니 이를 써서 보답한다"는 잔 글씨로 쓴 구절이 발견된다.
미술사학자인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명선(명선)은 차선(차선)과 같은 말로서 결국은 차와 선의 일치를 칭송한 의미 정도로 보았다"면서 "명선이 추사가 초의에게 준 호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 교수는 이번 글에서 다산이 즐겼다는 '구증구포(九蒸九曝)의 차'는 떡잎 차가 아니라 차떡잎을 여러 번 찌고 말려 분말을 내어 반죽해 말린 차병(茶餠. 떡차)임을 강진 유배에 풀려난 지 10년이 더 지난 다산이 69세가 되던 1830년에 강진 백운동에 있던 이덕휘(李德輝)에게 보낸 걸명시(乞茗詩)를 통해 밝혀냈다.
이 편지에서 다산은 삼증삼쇄(三蒸三쇄<日+麗>), 즉, 세 번 찌고 세 번 말려 그것을 절구에 빻아 곱게 가루를 내서 돌샘에서 나는 물로 가루를 반죽해 진흙처럼 갠 다음, 이를 다시 작게 떼어 떡으로 굳혀 줄 것을 부탁했다. 삼증삼쇄는 구증구포의 공정을 줄인 것이므로 구증구포의 차 역시 '떡차'가 된다.

지금까지 '구증구포'라는 말을 한국 다도계에서는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린 떡잎을 다려낸 차' 정도로 푸는가 하면, 이를 이용한 차 제조법이 통용되기도 한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